3. "내가 갖고 있는 앤틱 값이 얼마나 되죠?”

'앤틱 값은 그때 그때 달라요'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8.09 17:20 | 최종 수정 2022.08.17 09:53 의견 0

미국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앤틱을 구하러 다니고 제법 그럴듯한 물건들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났음인지 가끔 지인들로부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골동품의 값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 질문을 종종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앤틱의 가격을 정확하게 매길만한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질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역사적 의미와 시세를 제 기준으로는 판단하지만 이는 단순히 저의 주관적 평가일 뿐입니다.
저에게 값을 물어보는 분들이야 제 태도가 심히 답답하거나 못마땅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기네 물건이 하찮게 여겨져서 우물우물하는 게 아니냐고 기분 나빠하는 이들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런 분들에게 명확하게 밝히고 싶습니다.
“앤틱에는 정확한 값이 없다”고 말입니다.

물론 미국에는 수만개의 앤틱 샵이 있고 그 곳에 전시돼 있는 물건들은 모두 값이 정해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앤틱 로드쇼’에서도 출품되는 골동품은 전문가들에 의해 값이 매겨집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면 “앤틱에는 정확한 값이 없다”고 한 제 말은 거짓이거나 식견 부족을 호도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아냥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주장에 굳이 반박하고 싶지도 않지만 “앤틱에는 정확한 값이 없다”는 제 주장을 거두어 들이고 싶은 생각 역시 추호도 없습니다.
같은 골동품이라도 샵에 따라 값이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저 역시도 몇 주 전에 산 물건이 얼마 뒤 다른 샵에서 훨씬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른 경험이 있습니다. 반대 상황에 맞닥드려 속쓰린 적도 물론 있었고요.

'앤틱 로드쇼'의 인기 감정사 레이 케노, 레슬리 케노 쌍둥이 형제

미국 ‘앤틱 로드쇼’에는 레이 케노, 레슬리 케노라는 쌍둥이 형제가 인기 감정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둘은 미남에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남에게 기분좋은 느낌을 주는 것까지 그렇게 많이 닮았습니다. 이들은 어떤 물건을 감정하고 값을 매길 때 비슷한 결론을 자주 내곤 합니다.

그러나 같은 것을 두고 가끔 둘의 평가가 하늘과 땅 만큼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심하게 싸우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요.
“앤틱에는 정확한 값이 없다”는 제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십니까.

전미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Antiques Roadshow'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값어치 결정>

앤틱, 특히 미국 앤틱 값이 일정하게 매겨지지 않는 것은 미국인들의 독특한 개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어떤 것을 소유하거나 판단할 때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거나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 여유가 생기면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렸을 적에 보면서 동경해왔던 이웃 옛날 집이 떠올라 똑같은 집을 짓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같으면 건축 기술자를 불러 하루라도 빨리 후딱 후딱 건축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동경했던 옛날 집에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면 그와 꼭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것이라도 구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가끔 앤틱 쇼에 가면 녹이 슬대로 슬어, 우리같으면 버려도 주워가지 않을 것같은 고물 철제 울타리가 비싼 값에 매겨져 있습니다.

곰팡이가 끼고 썩은 헌 문짝, 너덜너덜한 문고리, 심지어는 못까지도 녹슨 것을 찾아내어 옛날 집을 짓는데 사용합니다.

주말 고급 주택가를 지나칠 때 노부부들이 1900년대 초, 중반의 '앤틱 카'들을 몰고 다니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차들은 아무래도 차체에 틈새가 많이 생기고 온도 조절 기능이 떨어져 냉난방에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수 밖에요. 그런데도 이런 차를 모는 노부부의 표정은 흐뭇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자신이 어릴 적에 한번쯤 타보고 싶었던 ‘꿈의 차’를 이제야 몰게 됐다는 자부심도 엿보입니다.

여기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대략 두 종류로 나눠지는 '앤틱 카'의 가격은 저도 언뜻 이해하기 힘듭니다. 차체 등 외양은 물론이고 엔진, 라디에이터 등도 모두 '오리지널 고물' 차가 외양은 오리지널이나 메카닉 부품은 차체 크기와 모양에 맞는 현대 것으로 교체한 것에 비해 훨씬 비싼 이유를요.
나 같으면 가끔가다 길에서 멈춰설 것같은 100% 골동품 차보다는 오히려 고장이 잘 나지 않으면서 보기에 특이한 50% 앤틱카를 몰텐데 말이지요. 미국인들은 ‘골동품 차는 당연히 내장 기관도 골동품이어야 한다’는, 어떤 면에서 다소 답답하게 보이는 원칙을 갖고 있기에 이같은 현상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앤틱에는 정확한 값이 없다’거나 ‘어떤 사물에 대한 평가는 절대 평가로 한다’고 정의한, 가장 대표적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높이 62, 폭 67인치 동 제품 풍향계가 584만달러>

지난 2006년 10월6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경매소 임직원들까지 경악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높이 62인치, 폭 67인치 크기로, 화살을 겨누고 있는 동제품 인디언 추장 풍향계(Weathervane)가 584만 달러에 낙찰됐기 때문입니다. 584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도대체 얼맙니까. 60억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죠. 풍향계라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물건입니다. 그기에 특별한 기계 장치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만드는데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지요.

Indian Chief Weathervane

그렇다고 이 풍향계가 헨리 무어같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조각가의 작품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수공예품과 기계공업 중간 형태로 오래전 어느 무명의 미국 민속공예사가 만든 것에 불과했으니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이 인디언 추장이 주목을 받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포드 자동차 창업주 헨리 포드의 증손녀가 숨진 2005년까지 미시간 주 그로스 포인트 소재 그녀의 집 지붕에서 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소더비 경매소 평가사 등은 “종래의 풍향계와는 달리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점이 눈에 띈다”, “조각품의 자태가 아름다우며 아메리카 원주민으로서의 자부심도 깃들여져 있다”, “현대 작품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되어온 미국 민속품의 가격이 제대로 반영된 것이다”고 열을 올렸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풍향계로는 보기 드물게 대형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만한 값이 매겨질 만하다는 생각은 들질 않았습니다.

이 풍향계를 낙찰받은 이는 세계적 의류회사 랄프 로렌의 대표 제리 로렌이었습니다. 로렌은 첫 비딩을 400만 달러부터 시작해 결국 7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인디언 추장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풍향계의 값이 이처럼 치솟게 된 것은 로렌 대표가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아내와 아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가장으로서의 위엄과 체면’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쨌거나 인디언 추장의 몸값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뛰는 바람에 다른 풍향계 역시도 엄청나게 귀하신 몸이 됐습니다. 근 1년 사이에 값이 3배나 뛰었습니다. 다음해 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풍향계가 108만 달러에, 8월에는 ‘1882년도 증기 기관차’ 풍향계가 126만1,000 달러에 각각 팔렸습니다.
이처럼 고가에 팔린 풍향계는 보통의 것에 비해 확실히 다른 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가격은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물과 세월에 찌든 나무 물오리가 35만4천 달러>

디코이(Decoy) 역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앤틱입니다. 디코이란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한 유인용 동물/모형/미끼 등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호수나 강 등에 띄워 놓고 야생 오리 떼를 유인하기 위해 만든 나무 오리를 말합니다.
지금도 겨울이면 디코이를 이용한 물새 사냥꾼들이 강이나 호수로 몰려가곤 합니다. 디코이는 예전에는 개인들이 직접 깎아 만들거나 솜씨좋은 이웃으로부터 선물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것을 주로 사서 써왔습니다.

오리모형 decoy

나무 물오리 제작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회사는 매이슨 디코이 팩토리(The Mason Decoy Factory)입니다. 이 회사는 1900년대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매년 수천마리의 나무 오리를 만들었습니다. 물새 사냥꾼들은 이를 대략 1달러씩에 구입했답니다. 물론 당시 1달러는 지금의 1달러와는 가치가 달랐겠지만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매이슨사에서 만든 나무 숫 오리 한 마리가 2000년에 35만4,000달러에 경매됐습니다. 공장에서 제작된 것으로는 최고가입니다. 대량 제작한 것이 아닌, 개인이 만든 디코이는 이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습니다.

1890년 매사추세츠주의 로스롭 홈즈(Lothrop Holmes)란 이가 깎고 색칠한 비오리 한 마리가 85만6,000달러에 팔렸죠.

디코이는 야생 오리들이 자기네 동료라고 착각하게 할 만큼 실물에 가깝게 제작됩니다. 크기도 그렇고 색깔도 아주 사실적으로 말입니다. 특히 고가에 팔린 디코이들은 그 상태가 아주 양호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 수백년을 물속에서 떠다닌 만큼 부식되거나 손상된 부분도 많은 디코이는 대략 수천 달러에 팔립니다. 앤틱 샵에 가면 물 속 대신 진열장 한 곳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디코이를 종종 만납니다. 그 가격을 보면 “이 사람들이 잘못해 ‘0’ 하나를 더 붙였나?”하고 놀랄만큼 몸값이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같은 거액을 주고 이런 것들을 구입하겠습니까. 결국 미국 앤틱 값은 특수한, 어떤 의미에서 심하게 왜곡된 형태의 수요와 공급 현상이 빚어진 결과물이라 봅니다. 과연 주인을 잘 만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 할 수 있습니다.
584만 달러에 팔린 ‘인디언 추장 풍향계’는 이를 사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면 과연 어느 정도로 값이 추락했을까요. 반대로 랄프 로렌사 대표보다 더 큰 애착을 가진 거부가 경매에 참가했더라면 그 값은 수직 상승했을 게 자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앤틱은 그에 대한 애정이나 자신만의 주관적 가치를 우선으로 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남들이 비싸게 본다면 기분 좋은 일이고 자신이 내심 매긴 가격보다 한참 싸게 평가하더라도 ‘무식한 소치’로 치부해버릴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내 자식은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처럼 말이지요.

앤틱 값에 달관한 사람처럼 말은 하지만 사실 저도 속물인지라 ‘아주 싸게 사서 엄청 비싸게 팔릴 수 있는 앤틱’에 곁눈질하지 않는 것은 아니랍니다.
한번은 미국에 다니러온 아들 녀석을 데리고 일가족이 뉴욕에서 한겨울 스모키 마운틴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마침 눈도 많이 온 탓인지 산 도로가 군데군데 폐쇄되는 바람에 여행 자체는 썩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오가는 도중, 사람들이 떠나버린 마을, 버려진 주유소, 우체국 등이 흡사 영화속 한 장면 속을 거니는 것같은 스산한, 그러나 오래 기억에 남을 풍경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주유소에는 초창기 기계식 주유기, 계산기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커먼 기계만 보면 가끔 돌아버리는' 저의 머리가 그때 또다시 돌기 시작하더군요. 기계식 주유기 등이 제 눈에는 얼마나 멋지게 보였던지 일대를 돌아다니며 주유소 주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해 아쉽게 차를 돌렸습니다. “버려지다시피 한 만큼 아주 싸게 살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물건이 될텐데”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 장면이 눈에 밟힙니다.

인디언 추장 풍향계가 고가에 팔렸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한동안 뉴욕에서 가급적 먼거리에 있는 앤틱 샵을 일부러 찾아 다녔습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시골 앤틱 샵에서 혹 괜찮은 웨더배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음흉하고 얍삽한' 생각에서 말이죠.
35만4,000달러짜리 나무 숫 오리는 한 노신사가 아내의 생일 선물로 구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는 뉴욕 인근 호수 어느 갈대밭에서 방황하고 있을 데코이 몇 마리만 잡아도 괜찮을꺼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곤 했습니다.

참 속물적 근성이죠.

그러나 골동품 자체만을 사랑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이처럼 저같은 속물도 앤틱을 좋아할 자격은 있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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