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양의 유리 문명과 동양의 도자기 문화1

유리병, 도자기에 비해 생산 및?유통에서 단연 우위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8.15 14:48 | 최종 수정 2022.08.17 09:56 의견 0

앤틱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게 식기류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3요소 의, 식, 주 관련 물건 가운데 앤틱으로 남아 있을 소지가 가장 큰 것이 바로 먹고 마시는데 필요한 그릇입니다. 의 즉 옷은 특별한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한 그 내구성에서 몇 백년을 이어오기가 힘듭니다.

주거와 관련된 물건들도 많이 있지만 그릇류에는 훨씬 뒤집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권은 예전부터 도자기를 주로 써왔고 서양인들은 유리 그릇을 생활화해 왔습니다. 음식물을 보관, 운반하는 똑같은 기능을 가진 유리와 도자기지만 재질의 차이로 인해 동서양인들에게 미친 영향이나 삶의 방향은 엄청나게 큰 편차를 빚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서구 사회와 동양의 전반적 사회 발달 과정은 유리와 도자기의 특성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여 집니다. 즉 미국을 비롯한 서양은 물질적, 실용적 문명을 발달시키는데 주력해왔고 동양은 관념적, 명분적 문화를 가꾸어 온 측면이 크다는 겁니다.

서구의 물질 문명은 상품의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의 패턴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음식물을 담는 용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생산, 유통, 소비의 대량화를 숙성시킨 매개체는 바로 유리입니다. 우선 유리병이나 유리 그릇은 대량으로 제조, 생산하기가 도자기에 비해 굉장히 수월하고 빠릅니다.

서양인들은 액화 흑요석을 기다란 쇠 파이프에 묻혀 입으로 불거나 틀에 부어 유리 병, 그릇을 간편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반면 동양인들은 힘든 과정을 거쳐야 용기를 제조할 수 있었지요.

우선 일정한 양의 점토를 물레에 얹고 돌려가며 형태를 만들어야 했고 이를 수시간 불에 굽는, 복잡하고 오랜 공정 과정을 필요로 했습니다.
도자기는 또 음식물을 넣고 밀봉하는데 별로 완벽하지도 효율적이도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요즘도 중국 고급 도자기 술병조차 내용물을 흘러내리게 할 정도이니 예전에야 오죽했겠습니까. 유리병은 그런 면에서 도자기에 비해 훨씬 유리했습니다.

처음에는 두꺼운 종이에서, 코르크, 철사 꺽쇠를 이용한 마개 등을 거쳐 크라운형태의 양철 캡 등으로 밀봉 형태가 변해왔습니다.

<크라운캡은 용기로서의 유리병 유통에 혁명일으킴>

특히 1892년 2월12일 미국 특허를 받은 유리병 마개인 크라운 캡은 내용물을 전혀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실용성으로 인해 유통계에 가히 혁명을 몰아왔습니다. 크라운 캡이란 우리가 흔히 ‘깡기리’라 부르는 오프너로 따는 병뚜껑을 말합니다.

크라운 캡은 병 입구를 감싸안는 왕관형태 요철 즉 이빨이 24개였습니다. 이빨 숫자가 이보다 적으면 병안에 든 액체가 흘러내리고 이보다 많으면 따기가 힘들었던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든 유리병 마개 크라운 캡은 한동안 전 세계를 휨쓸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수학자와 기술자들의 합동 연구로 1960년 21개의 이빨을 가진 크라운 캡을 고안, 특허를 냈습니다. 이빨 즉 왕관의 요철이 3개 차로 줄자 미국 크라운 캡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독일제가 세계를 주름잡았습니다.

크라운 캡 주물과 제조 기계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줄어들고 봉인할 때는 물론이고 뚜껑을 열 때 한층 쉬워지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크라운 캡을 기점으로 해서 유리병의 마개는 다양하게 발전을 이룹니다.

‘풀오프 캡’(맥주 캔에 붙어있는 따개 손잡이), 오프너 없이 손으로 돌려서 딸 수 있는 ‘트위스트 오프’ 등으로 이어집니다. 앞으로 마개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흥미꺼립니다.

이같은 완벽하고 편리한 밀폐 기술로 말미암아 유리병은 내용물의 대량 생산, 유통, 소비에 한층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코카콜라 등 기호 음료, 양념용 소스, 위장약 등 각종 치료제, 샴푸 등 위생용품의 대량 생산, 유통, 소비를 촉진시켜 이들 제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삶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졌다고 봅니다. 미국인들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평균 수명이 올라간 것 역시 유리병이 기여한 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제 혼자만의 짐작일 뿐입니다.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동종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학자들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도 해봅니다.

한 중 일을 중심으로 한 도자기 용기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유리병에 비해 훨씬 예술적이고 심미안적 가치가 크다는 정도가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자기의 장점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실 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유리는 다양한 문명 발달에도 기여>

제가 이 글의 제목으로 ‘유리 문명과 도자기 문화’라고 쓴 이유를 간단하게 풀어보고 싶습니다. ‘유리 문명’이면 그 대칭어가 ‘도자기 문명’이라 해야 맞고 ‘도자기 문화’라면 ‘유리 문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양은 유리로 인해 과학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안경, 개인용 및 천체 관측용 망원경, 현미경, 플라스코를 비롯한 각종 실험 기구 등은 유리가 인류의 문명 발달에 얼마나 크게 기여해왔는지를 잘 알려주는 품목입니다. 전구를 비롯한 조명기구, 유리, 거울, 각종 스포츠 용품 등은 개인의 삶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유리는 앞으로도 더많은 효용성을 우리에게 선사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반면 동양은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예술과 독특한 사상을 꽃피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은 유리 문명이고 동양은 도자기 문화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단순한 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신 분들은 열받지 마십시요. ‘김인규의 제 멋대로 분석’이라 여기시고 개의치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앤틱 이벤트 장소에서 ‘유리 문명과 도자기 문화’를 떠올릴 때마다 20세기 미국의 국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곤 합니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한 갈래 길을 택한 결과,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한 그의 시 말입니다.
물론 대 시인의 ‘가지 않은 길’은 한 인간의 인생 행로에 대한 회한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만 동양이 택한 ‘도자기 문화’의 길은 우연한 선택이었음에도 ‘유리 문명’에 비해 문명사적으로 ‘이상적인 만남은 아닌 것같다’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을 무조건 동경하거나 찬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연히 동양 비하론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릇류 전문 앤틱 이벤트를 다닐 때마다 서양인들의 적극성, 무한대의 발전 지향적 노력에는 늘 감탄하고 부러워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동양인들은 출발은 앞섰을지 모르나 이를 지속적으로 또한 다양하게 발전시키지 못하고 현실에 만족해버리는 안일함을 보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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