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억 의병장 추모비 제막식

영월읍 삼옥1리 인수뫼공원

김인규 기자 승인 2022.11.23 14:03 | 최종 수정 2022.11.23 14:16 의견 0

영월문화원(원장 엄흥용)은 11월 23일 오후 1시 영월읍 삼옥리에서 최명서 영월군수, 심재섭 군의장, 류종수 강원도문화원연합회장, 보훈단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영월의병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구국항쟁의 중심지이자 항일운동의 발자취가 배여 있는 정대억 의병의 출생지에서 ‘경천 정대억 의병장 추모비’ 제막식을 가졌다.

폭 2.5m, 높이 6m 규모로 건립된 창의비에는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투쟁하다 37세에 일제에 의해 처형당하고 순국을 한 정대억 의병장의 숭고한 뜻이 담겨져 있다.

특히 3개의 기단은 天. 地. 人 삼재사상을 근간으로 나와 너, 우리의 상관관계로 영월의 끊임없는 도약을 의미한다.

엄흥용 원장은 “항일의병의 발상지인 영월 의병의 역사와 발자취는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우리 고장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에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평생을 살다 간 정대억 의병장의 충절과 항일의병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영월군민의 뜻을 모아 선생의 출생지인 이곳 삼옥리에 이 빗돌을 세운다”고 전했다.

영월은 항일 의병항쟁의 중심지로 1895년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반포되자 의암(毅菴) 류인석(柳麟錫) 의병장은 영월 관아(官衙)의 문루(門樓)에 ‘복수보형(復讐保形)’의 깃발을 높이 걸고 ‘영월을미의병(寧越乙未義兵)’을 창의하였다. 이때 정대억 의병장도 24세 젊은 나이로 구국항쟁과 국난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1905년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 의병장은 주천에서 을사의병(乙巳義兵)을 일으켰다.

경천(敬天) 정대억(丁大億) 의병장은 1872년 11월 6일 영월 삼옥리에서 출생해 북면 연덕 오만이에서 성장했다. 본관은 나주(羅州)로 야은공(野隱公) 정사종(丁嗣宗)의 후손이다. 그는 장부다운 기질과 의협심이 강한 인물로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에서 ‘가선대부 행 용양위호군 겸 오위장(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兼五衛將)’인 부친 병교(炳敎)와 모(母) 파평 윤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선생께서는 1905년 영월 주천 을사의병인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 의진에서 참모종사(參謀從事)로 활동하였다. 이때 함께한 의병장으로는 엄성하, 엄기섭, 그리고 제천의 지규창, 지병언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의병대장 원용팔이 체포되어 옥사하고 의병 진영이 무너지자 그는 2년 동안 강원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적의 배후를 기습하는 게릴라식의 유격투쟁을 했으며, 일제의 감시로 고향인 영월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정대억 의병장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 등 일제침략이 가속화되자 또다시 항전에 나서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의 정미의병에 참여하였다. 이강년과 함께 작전을 펼쳐 주천면 판운리에서 왜병 36명을 무찔렀고, 충주 가흥에서도 12명을 사살하였다.

이후, 그는 영월 김삿갓면에 사는 김상태(金尙台) 의병장과 안성해(安成海)ㆍ백남규(白南奎)ㆍ변학기(邊鶴基)ㆍ성익현(成益顯)ㆍ정경태(鄭敬泰) 등과 충청도ㆍ강원도 일대와 안동 서벽(西壁) 전투에서 일본군을 맞아 크게 승리하였다. 이듬해 7월 이강년 의병장이 단양군 청풍의 작성(鵲城, 일명 까치성) 전투에서 체포될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민긍호ㆍ신돌석 의병대장과 연계하여 일제를 격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선생은 의병장으로 활약하던 중 왜군의 거센 저항에 못 이겨 1908년 6월에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선생은 왜군에게 의병대장이라고 대답하고 조금도 동요됨이 없었다. 기회를 엿보다 왜군 6~7명을 부상시키고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6월 4일 다시 체포되어 영월로 연행되었다. 6일 후인 6월 10일 일본 헌병대는 영월읍 오리정(五里亭, 오목)에서 영월군민들을 모아놓고 눈을 빼고 목을 베어 잔인(殘忍)하게 처형하니 선생은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영월군민들은 선생의 영혼을 위무(慰撫)하고 애국애족하는 높은 뜻을 빛내기 위해 1995년 8월 15일 영월 금강공원에 선생의 순국비(殉國碑)를 세우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영월문화원 엄흥용 원장이 수년간 영월지역 독립유공자 발굴과 의병 현창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대억 의병장의 후손을 찾아냈고, 선생의 국난회복 활동의 업적을 밝혀냄으로써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항일의병의 발상지인 영월 의병의 역사와 발자취는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우리 고장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에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평생을 살다 간 정대억 의병장의 충절과 항일의병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오늘 영월군민의 뜻을 모아 선생의 출생지인 이곳 삼옥리에 이 빗돌을 세운다.

2022년 11월 23일

영 월 문 화 원

세움 : 영 월 군 수 최 명 서

영월군의장 심 재 섭

영월문화원장 엄 흥 용

도움 : 나주정씨 영월종친회장 정 해 훈

정대억 의병장 증손 정 광 옥

빗돌 글 나명길, 빗돌 글씨 김태숙, 조각 박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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