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11-'최후의 만찬' 끝낸 우리를 찾아온 어머니

김인규 기자 승인 2021.08.05 15:16 | 최종 수정 2021.08.08 23:56 의견 0

그녀는 곧 저녁 상을 차려 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그녀는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다 발휘해 저녁을 마련했겠지만 마음은 한없이 허둥대고 공허했을 것이다. 나역시도 그녀가 나름대로 정성껏 만든 저녁이 제대로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수저만 놀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저녁을 마친 잠시 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 나를 부를 사람이 없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있는데 또다시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내 고등학교 동창 친구 윤재곤군의 목소리였다. 이 친구가 여기는 어떻게 왔지 하며 방문을 여는 순간 윤재곤군과 그 뒤에 서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가 윤재곤군에게 내가 가출, 자신에게 와있다며 우리집에 이를 알려 나를 데려가라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윤재곤군의 여자 친구와 고교 및 대학 동창으로 친한 사이인데다 평소 우리 네 사람이 가끔 만났기에 나의 가출 사건을 우선 윤재곤군에게 알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윤재곤군과 함께 찬바람이 생생 도는 얼굴로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새파란 얼굴과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 방문에 나 자신도 적잖이 당황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한숨만 쉬던 어머니는 정말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너희 둘 결혼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보니 더 이상 반대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일단 결혼을 허락하마. 대신 인규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난 뒤에라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이 참고 갈 수 있겠느냐?”

나는 어머니의 예상외 반응에 깜짝 놀라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그러지요. 결혼은 학교 졸업하고 취직한 뒤 하겠습니다”고 즉시 대답했다.

그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머니 발언에 잠시 어리둥절한 듯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왜 대답을 못해. 그때까지 못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다시 한번 어머니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결혼을 허락하신다면 그 시기가 언제가 됐든 기다리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 네 사람은 대구행 시외버스를 탔다. 그녀도 마침 주말인데다 이 혼란스런 상황을 자기 혼자 자취방에서 감내할 수가 없어 경산 고산 집으로 향한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은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내 가출 사실을 알고 오빠이자 형을 다시는 못볼 줄 알고 겁나고 슬퍼서 엄청 울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사무실에 나가시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불과 사흘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나의 가출은 우리 집에 큰 파장을 몰고 왔던 것이다.

나는 “죄송합니다”며 큰 절을 하고 아버지 앞에 꿇어 앉았다. 아버지는 “네가 가출까지 할 정도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어머니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너는 우리집 장남이고 기둥이다. 그애는 맏며느리다. 우리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나서 내가 복학하러 서울로 가기 전에 양가 친척들만 모시고 약혼식을 하도록 하자고 말씀하셨다.

내가 예상했었던, 바라던 결과보다 더 나은, 더 신속한 사태 진전에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시라도 빨리 이같은 반가운 소식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어 속이 탔다.

내 마음을 눈치채셨든지 아버지는 “오늘은 피곤할테니 네 방에 가서 좀 쉬고 내일 그집에 가서 우리 뜻을 전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것같았다. 무엇을 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티나게 행동한다면 부모님들께 죄송할 것같다는 생각도 들어 방안을 조용히 걸어다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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