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12-한달음에 달려가 만난 그녀

김인규 기자 승인 2021.08.05 15:38 | 최종 수정 2021.08.08 23:57 의견 0

아버지는 다음날 그녀 집으로 가보라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하룻만에 냉큼 나서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정말 초인적 의지로 하루를 더 집에 묵은 뒤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기쁨에 벌렁벌렁하는 가슴과 허둥대는 발걸음으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경산 고산 그녀의 집에 도착했더니 그녀 어머니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자취집에서처럼 환한 얼굴로 마중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감기 몸살인지 열이 펄펄 나서 방안에 눕었네”

부리나케 그녀의 방에 들어갔더니 불과 며칠 사이 핼쓱하게 반쪽이 된 얼굴에서 진땀만 흘리고 있었다. 그 사이 극도의 긴장과 우리집의 반응 등이 걱정돼 몸살로 발전한 것같았다.

마침 커피를 타들고 들어오신 그녀의 어머니를 곁에 앉게 하고 우리 부모님의 결정 사항을 말씀드렸다. 반응은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먼저 나왔다.

”아이구 반가워라. 우리는 자네 어머님이 얘네 집에서 두 사람 결혼을 허락한다고 하신 말씀이 자네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했는데......더구나 약혼식까지 말씀하신 것을 보면 두 사람 사이를 정말 인정하고 결혼까지 하라고 승낙하신 것이구만”

그녀 집에 들어섰을 때 그녀 어머니가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인 이유를 그제서야 짐작하게 됐다.

그녀도 “정말이라예?”라며 희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남들 다하는 결혼임에도 겨우 승낙받은 사실에 그렇게 반가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기쁘면서도 너무나 안쓰럽게 여겨졌다.

그녀는 청송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긴장과 걱정이 섞이면서 진이 빠진 채 자리에 몸져 누웠었다고 했다. 그녀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어머니의 결혼 승낙이 단순히 아들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한 유인책에 불과하고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으로 짐작했다는 것이었다.

청송에서 돌아온지 이틀이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없자 그녀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다 한때 접었던 수녀의 길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던 중이었다 했다.

부모님들은 처음 결혼을 반대하던 때와는 달리 약혼식을 빨리 치르자고 그녀 집에 통보했다. 얼마 뒤 양가 친인척과 우리 두 사람의 아주 가까운 친구만 참석한 가운데 한 한정식집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옅은 보라색 한복에 올림머리를 하고 평소 하지 않던 화장까지 정성스레 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예뻤다. 눈을 내리깔고 음식도 최소한의 양만 집어 조그만 입안에서 오물오물 먹는 등 조신한 태도는 천생 여자였다.

약혼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부모님과 누나 동생들도 길거리 지나다니던 모습만 보다 오늘 가까이서 보니 한결 인상이 좋아 보였다고 칭찬했다.

“집안 좋고, 인물도 이쁘고, 조신하고 나무랄데가 없는데......”

“어허 이 사람이! 이제 우리집 귀신이 되었는데 그런 말은 이제 그만 합시다”

부모님 두 분이 나누는 대화로 보건데 약혼식 당시의 모습이 그녀에 대한 평가를 한결 좋게 만든 것같았다.

약혼을 하고 나니 오히려 그녀와 보내는 시간에 눈치가 보였다. 교사이므로 주말에만 대구에 올 수 있었기에 토, 일요일 우리가 만나기는 해도 예전처럼 밤 12시에 맞춰 귀가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에게 잘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으로 복학하기까지는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내가 바라는 신문기자가 꼭 되어야 한다고 매번 다짐하곤 했다. 그리고 2년 후 졸업하기 전까지 신문사에 입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결혼을 허락해준 부모님들에게 보답하고 떳떳할 수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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