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의 가장 큰 원인은 오른쪽 어깨 수술 후유증 탓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른쪽 회전근개가 몹시 아프다며 종합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를 만난 것은 2016년 7월 중순. 전화로 예약을 한 지 거의 두 달 만이었다. 그 전문의는 시카고에서도 수술 잘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는 타지역 의사들도 수술 기법을 배우러 온다고 할 정도였다.
더더욱 한인 의사라는 사실이 더욱 반가웠다.
예약한 날짜에 그 전문의를 만났더니 “회전근개가 찢어졌다”며 “스몰 서저리(간단한 수술)로 된다”고 자신했다.
평판이 자자한 전문의가 스몰 서저리라고 하므로 아내와 나는 간단한 수술만 마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로 알았다.
그런데 수술 후 첫 진료부터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술은 마쳤지만 계속 어깨가 아프므로 이 진통이 얼마나 갈지 또 어떻게 해야할지 등 물어볼 의문점이 꽤나 많았다.
그러나 수술 후 첫 진료날(팔로업 미팅) 오전 11시 병원에 도착했으나 예약이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는 수술의나 병원측의 실수인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병원도 다소 당황했는지 당일 12시45분에 수술의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재약속 시간에 진료실로 갔더니 수술의는 나오질 않고 여자 의료진(레지던트 등 의사인지 수술전문 간호사인지 알 수가 없었다)이 수술 부위에 염증이 있는 것같다며 바르는 통증 완화 연고 볼타렌을 처방해주는 동시에 물리치료(피지컬 테라피)를 받으라고 했다.
볼타렌을 매일 바르고 일주일에 두 차례씩 물리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이후 한달에 한번 꼴로 수술의를 만나면 양손을 뻗게 하고 아래 위, 좌우로 눌러 힘이 어느정도 있는지 측정하는 걸로 진료를 마쳤다.
수술 후 진료가 6개월 정도 지난 뒤 수술의를 다시 만났더니 오늘 진료가 마지막이라며 앞으로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의사 지시대로 통증약을 바르고 물리 치료를 해도 통증은 개선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번 의사를 만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의 위로와 희망을 느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 진료고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니 무척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당사자인 아내는 상당한 실망과 충격을 받았다.
아내는 “아직도 여전히 아픈데......”라며 진료를 계속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황급히 꺼냈다.
그러나 의사의 말은 너무나 야멸찼다. “7세 소녀가 되기를 바랬느냐”고. 그리고는 진료를 끝내고 나가버렸다.
너무나 의외의 무례한 말과 반응에 우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그날부로 진료가 끝났지만 다음에 혹 또다시 이 의사에게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내는 몇 달 동안 통증을 참으면서 호전되기를 기다렸으나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자 재수술을 받기로 했다. 역시 수술 잘한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중국인 의사를 만나 재수술을 받았다.
첫 번째 수술 이후처럼 물리 치료도 받고 통증약까지 겸비했지만 아픔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때로는 극심한 통증이 찾아오면 자다가도 호흡이 가빠지고 혈압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맥박이 110, 혈압은 170, 180까지 올라 응급실에 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두번 맥박과 혈압이 높아지더니 얼마 뒤부터는 특히 고혈압이 지속돼 어쩔 수 없이 고혈압 약을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보니 통증으로 인한 괴로움이 다른 신체로까지 악영향을 주는 것같았다. 심장이나 신장, 신경 부위까지 이상이 오는듯하다며 괴로워하기에 관련 진료과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나와 아내는 미국 의료 시스팀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형편없는 것인지를 수시로 실감할 수 있었다.
우선 일반의가 아닌 전문의를 만나려면 우리가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주치의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알아낸 전화로 전화를 하면 빨라야 한 달, 때로는 3개월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한국도 특정 명의를 만나려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서는 한국처럼 그렇게 우뚝한 명의가 아니라 일반적인 전문의를 만나는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문의를 만나 MRI 등 전문 검사를 받는 것도 최소 열흘에서 한달을 기다려야 했다. 검사 후에는 또 그 전문의에게 전화해 약속 날짜를 잡아야 했다. 그것이 또 한달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내가 가진 보험이 후져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내는 65세가 넘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메디케어 뿐 아니라 사보험인 '서플리먼트 플랜'까지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의사도 만날 수 있었고 그나마 진료에 이르는 과정이 빠른 편이었다.
만약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 보험만 갖고 있었다면 실제 진료에 이르는 과정은 이보다 몇배 느렸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의료 제도는 환자를 위한, 환자를 살리기 위한 시스팀이 아니라 보험회사, 병원, 의사들의 이익과 편의에만 집중돼 있다.
의료 시스팀 자체가 환자를 ‘을 중의 을’ 혹은 장기판 ‘졸’로 규정하기에 환자를 대하는 일부 의사들의 태도는 거만하고 무도하기 짝이 없다.
앞서 얘기한 정형외과 전문의의 ‘7세 소녀’ 발언과 수준이 같은 무례한 취급을 또다른 병원에서 당하기도 했다.
아내는 매사를 철저히 파악하고 따지는 성격이었다. 왠만한 것은 대충 넘어가질 않고 의문점이 있으면 묻고 묻는 성격이었다. 한번은 한국인 내과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은 뒤 몇가지 질문을 하자 이 의사는 “그런 걸 알고 싶으면 직접 병원을 차리시든가”라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무례하면서도 예상외의 반응에 우리는 당황해 별다른 대응도 못하고 진료실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미국에서도 랭킹 상위인 C종합병원 외국인 신경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예약했더니 3개월 뒤에 오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그에 상응하는 평판을 가진 N종합병원 신경과 전문의로부터 먼저 진료를 받았다.
나중 처음 예약했던 C병원 신경과 의사를 만났더니 “N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받지 왜 내한테 왔냐”고 퉁명스럽게 핀잔을 주어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이 의사와는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하므로 아첨이라도 해 기분을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한인 의사들에게 물어봤더니 당신이 최고 중의 최고라서 해서 예약을 했다. 그런데 3개월을 기다리라 해서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잠깐 다른 의사를 만났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의사들의 무책임하고 무례한 대응에 아주 강하게 항의하지 못했는지 참 통탄스럽고 바보같았다는 자책이 든다. 두고두고 후회되는 부분이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 아내는 집 근처 S종합병원 응급실을 세 차례나 찾았다. 그것도 새벽 시간대였다. 역시 혈압과 맥박이 너무 올라 응급실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몇 시간을 응급실에 눕혀놓고 간호사만 들락날락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혈압과 맥박이 어느 정도 내려가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게 반복됐다.
응급의들이 나름대로 문제를 파악하고 관련 전문의나 전문과로 이송(트랜스퍼)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병원비는 또 얼마나 비싼지 한국 사람들은 제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당한 어처구니 없는 바가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을 하나 들어보자.
처음 시카고에 온 지 얼마 뒤 아내가 밤에 역시 S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마지막으로 가슴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리곤 엑스레이를 판독할 의사가 없으니 하룻밤 입원을 하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와 아침을 무얼 먹을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동도 있다고 했다.
토스트나 계란 프라이보다는 얼큰한 우동이 댕겨 두 그릇을 시켰다. 조금 있다 갖고 들어온 우동은 한인 마트에서 파는 즉석 우동이었다. 포장된 비닐 봉지를 찢고 뜨거운 물에 내용물을 넣은 싸구려 우동이었다.
나는 자기네가 엑스레이 판독 의사가 없어 하루 입원하라고 한만치 입원비는 청구하지 않거나 청구하더라도 아주 저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나에게 날아온 청구서는 진료비, 검사비는 물론 입원비까지 포함해 3,500달러가 기재돼있었다.
더구나 기막힌 것은 우동값이 150달러였다. 당시 무보헙이었다면 그나마 이해가 가겠는데 그런대로 괜찮은 보험을 갖고 있었음에도 이같은 터무니없는 병원비가 청구된 것이었다.
물론 병원측에 항의하고 나서 2,000달러 정도로 깎았지만 이는 S병원에만 해당되는 바가지가 아니다. 대부분 미국 병원들의 일반적 행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문제가 발생하자 미국 의료시스팀에 대한 문제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의료보험은 모두 개인이 알아서 들어야 하는 사보험 체제다 보니 보험회사, 병원, 의사 등은 자기네 편의와 돈벌이에만 신경쓸 뿐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감시 감독해야 할 공적 견제장치 즉 정부의 개입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코로나19 사태는 과연 미국 의료 시스팀을 바꾸는 계기가 될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료의 주체들인 보험회사, 병원, 의사들로서는 자기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제도가 없는데 왜 시스팀을 바꾸려 하겠는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 역시 보험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했던 ‘오바마 케어’는 그나마 환자들을 위한 진일보한 의료보험제도라고 본다. 특히 보험이 없어 항상 불안해하는 저소득층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의료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바마 케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제도를 보완 발전시켜 나가기 보다는 점차 무력화해 사멸 단계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갓 뎀 아메리칸 닥터, 갓 뎀 아메리칸 의료 시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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