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한국인은 울지 않았다" 빅토리호 기관사가 기억한 흥남철수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6.24 09:34 | 최종 수정 2022.06.24 18:20 의견 0

"배에서 죽은 아이들 바다로 던져져"

"참혹한 전쟁 중에도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울지 않았다."

72년 전 한국전쟁 중 펼쳐진 흥남철수작전에 맨 마지막으로 투입된 미국 화물선의 생존 기관사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다부진 모습을 잊지 못한다.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3등 기관사로 흥남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멀 스미스(94)씨는 최근 뉴욕주 자택에서 한국전쟁유업재단 한종우 이사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6월22일 유업재단에 따르면 스미스씨는 당시 항해사 벌리 스미스(플로리다)씨와 함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유일한 생존자다.

멀 스미스씨가 기관사로 일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22일 흥남철수작전에 193번째 선박으로 투입됐다. 당초 군 병력과 무기 등 군수품을 싣고 철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피난민이 몰려들자 배에 실려 있던 25만t의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1만4천 명의 피란민을 대피시키는 사상 최대의 구출작전으로 임무가 바뀌었다.

12월22일 피란민을 실은 빅토리호는 23일 흥남을 출발, 이틀간의 항해 끝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화물선에 1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태우고 항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식량과 물은 48명의 선원이 먹을 분량밖에 없었고, 피란민들은 불빛도 난방도 없는 선창 내 3층 갑판의 나무판자 위에 무릎을 세워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했다고 스미스씨는 설명했다. 화장실이 없어 양동이 몇 개로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철수 과정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적지 않았다. 스미스씨는 "많은 이들이 배에서 죽었다. 특히 죽은 아이들 다수는 부모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졌다"고 말했다.

특히 흥남에서 출항하기 직전 배에 탄 어린 소녀가 사망하자 아버지가 아이를 바닷가에 묻어주기 위해 배에서 내리는 일도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배는 한 시간 후 출발했으나 아버지가 다시 탑승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스미스씨는 당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사람들이 유럽인들처럼 미국에 사는 친척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적었다.

<캐나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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