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구 7,500명의 소읍에서 열리는 앤틱 쇼

김인규 기자 승인 2024.03.18 15:17 의견 0

(24-1)글렌 릿지-뉴저지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앤틱쇼

*Glen Ridge Congregational Church에서 앤틱 쇼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표시판이 눈 속에 서있습니다*

보통 2월4, 5일 경에 뉴저지 Glen Ridge Congregational Church에서는 앤틱 쇼가 열립니다.

Glen Ridge는 특별한 배경을 가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뉴욕 뉴저지 한인들은 잘 모르는 조그마하고 평범한 마을에 불과합니다. 2010년 센서스에서 인구가 7,500여명으로 조사된, 한국으로 치면 면 단위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Tuxedo Park에서 살 때 이 쇼에 가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며칠전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눈이 많이 오면 이 작은 도시가 눈을 제대로 치우고 행사를 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차를 몰았습니다.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행사장인 교회 주변은 물론이고 작은 마을의 모든 차도는 거의 완벽하게 눈이 치워져있어 운전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작은 도시가 뉴저지에서 가장 최초로 앤틱 쇼를 개최해왔고 70회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도시가 이처럼 오랫동안 앤틱 쇼를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첫 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앤틱 쇼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이벤트 회사가 주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글렌 릿지 앤틱 쇼는 Women's Association, 우리로 치면 부녀회가 주최해왔습니다. 부녀회는 행사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뉴저지 타지역 저소득층을 돕는 등 많은 자선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부녀회는 쇼에 참가하는 앤틱 업자들로부터 받는 부스 분양금과 개인, 사업체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자선기금을 조성한다 합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기부금 액수가 너무 적다(?)는 점입니다.

도네이션하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액수를 정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앤틱 쇼를 후원토록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게 특징입니다.

후원 자격은 Angel, Benefactor, Friend, Sponsor 등 4가지로 나눠집니다. 150달러 이상을 후원하면 Angel 그야말로 ‘천사’가 되고, 100달러 이상을 내면 Benefactor 즉 ‘은인’이 됩니다. 50달러 이상을 도와주면 Friend ‘친구’가, 30달러 이상을 전하면 Sponsor ‘후원자’가 됩니다.

시니어(미국서는 일반적으로 65세 이상)들은 25달러만 내어도 스폰서 자격을 받습니다. 노인들에게는 5달러를 할인해주는 셈입니다.

시니어들은 직접 돈을 내지 않더라도 ‘부녀회 자선기금 모금 앤틱 쇼’에 기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입장객들에게 표를 팔거나(앤틱 쇼는 대부분 입장료가 있습니다) 입장객이 입고 온 코트를 보관해주면서 받은 팁(1인당 보통 1달러입니다)을 모아 전하는 것입니다.

Angel이 됐든 Benefactor가 됐든 간에 이들에게 주어지는 반대 급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단지 팜플렛에 이름만 올라갈 뿐입니다. 후원자들은 기부한 사실 자체만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같습니다.

*앤틱 쇼가 열리고 있는 Glen Ridge Congregational Church 안. 마을 규모에 비해 참가 샵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이같은 기부 문화는 우리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문화 행사를 할 경우 우리는 기업체 한 두 군데를 통해 거액을 후원받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후원을 부탁하는 쪽은 미안하고, 요청받는 쪽은 부담스러워할 게 당연한 이칩니다. 글렌 릿지 앤틱 쇼처럼 소액이지만 정성이 깃들인 기금을 가급적 많은 이들로부터 후원받는 기부문화가 활성화, 정착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렌 릿지 앤틱 쇼는 참가 앤틱 샵들이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은 36개에 달하며 먼 타주 업체도 끼어 있다는 사실 역시 놀라웠습니다.

물론 참가 앤틱 샵들은 소재지가 비교적 가까운 뉴저지 뉴욕이 대부분이지만 매릴랜드, 펜실베니아, 매사추세츠 등 제법 먼 타주에서 온 업체도 있습니다. 또한 1984년, 1992년부터 줄곧 이곳을 찾는 샵이 있다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보통 이 정도 인구의 마을에서 앤틱 쇼를 하게 되면 손님이 너무 적어 참가 업체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참가 앤틱 샵들은 이 기간 자기네 가게의 영업을 아예 접거나 대체 인력을 구해 장사를 해야 하므로 인건비가 추가로 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물건을 옮겨오고 팔고 남은 것들을 갖고 가야하는 비용도 만만찮습니다. 게다가 쇼가 열리는 기간 앞뒤를 포함해 며칠간 묵게 될 숙박비도 계산해야 합니다. 이외 여러 가지 생각지 못했던 비용까지 감안할 때 과연 참가 샵들이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아니 손해나 보는 게 아닐까하는 다소 주제넘는, 걱정스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다양하고 화려한 무늬를 프린트한 린넨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돌아보고 있는데 마침 집 사람이 한참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봐도 괜찮은 작품인 듯 했습니다. 노란 빛이 감도는 유리문을 가진 자그만 철제 보석함 두 개와 가장자리를 아주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한 타원형 목재 트레이를 두고 밀고 당기고 있었습니다.

저도 옆에서 거든 결과 샵 주인이나 우리 모두가 만족할만한 선에서 가격이 결정돼 이들을 구입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난 뒤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인구가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개최하는 앤틱 쇼에 참가해도 손해를 보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물건을 판 여자 주인은 자신은 몇 년째 이 쇼에 참가하는데 “나쁘지 않았다”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멀지 않은 뉴욕에 샵이 있다고 하더군요.

먼 타주에서 참가한 샵들은 어떤 것같으냐고 질문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결코 손해는 보지 않는 것 같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앤틱을 사랑하는 DNA를 가졌다. 행사 기간에 모든 주민들이 한번씩은 다녀가는 것같다. 인구에 비해 구매층이 아주 두터워 제법 많은 물건을 팔기에 타주에서 온 분들도 만족스러워 하는 것같더라”고 대답을 합디다.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수준있는 쇼를 마음껏 즐긴 뒤 흐뭇한 마음으로 교회를 빠져나왔습니다.

*미국인들의 엉뚱함, 기발함이라고 할까요. 오랫동안 사용했던 애완견의 목걸이 가죽줄을 판매 당시의 광고, 애완견 사진과 함께 엮어서 앤틱 쇼에 출품했습니다*

(21-2)교회 건너편에 있는 한국전 참전 전사자 묘비

그러나 주차해놓은 차로 가려다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사이에 둔 길 건너편에 조그만 묘비가 있고 그기에 지역 출신 ‘한국전 참전 전사자’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인구가 7,500명일진데 한국 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당시의 글렌 릿지에는 과연 몇 명이 살고 있었을까요. 모르긴해도 7,500명보다 훨씬 적은 숫자가 거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얼마되지 않는 전체 인구, 그 가운데서도 한국전에 참전했던 젊은이는 많지는 않았겠지요.

당시 어느 집 아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는지는 모든 주민들이 익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전사자 소식을 듣게 되면 누구나 피붙이를 잃은 것같은 슬픔을 공유했을 것입니다.

비록 6.25의 비극이 일어난지 61년이 지났지만 글렌 릿지라는 소읍에는 전사자의 묘비로 인해 한국 전쟁이 여전히 일상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턱시도 파크 인근에 위치한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Highway 표시판.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는 문구는 이 도로를 이용하는 미국인뿐아니라 우리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더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3)Korean War-우리에겐 잊혀진 전쟁, 그러나 미국인들에겐 현존하는 역사

제가 한때 살았던 Tuxedo Park라는 곳은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뉴욕 뉴저지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이런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인이면 우드베리 아울렛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압니다. 우드베리 아울렛은 I-87에서 16번 출구로 빠져나갑니다. 턱시도 파크는 이보다 한 출구 전인 15-A로 빠져나와 몇 마일 가면 닿는 마을입니다.

제가 왜 턱시도 파크를 거론하느냐 하면 이 근처에서도 6.25와 관련된 기념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턱시도 파크 역에 차를 주차해놓고 맨하탄행 뉴저지 트랜짓을 타고 가다보면 창 밖으로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Highway'라고 쓰여진 도로 표시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과는 연결 고리가 있을 것같지 않은 한 시골에서 이같은 도로명을 만났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같은 도로 이름이 붙여지는 것은 6.25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 도로에나 무작정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Highway’라고 명명하지는 않았을 터니까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지 모르나 ‘한국전 참전 용사 고속도로’는 저에게 순간적으로 반가움을 선사했다가 곧바로 슬픔과 부끄러움을 안겨 주더군요.

현재,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6.25는 솔직히 잊혀진 전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나 않은지요. 6.25의 비극, 참전 용사들의 삶, 전사자의 유족 등에 대해 우리는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아닙니까. 더욱이 당시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물질적, 인도적 도움을 과연 고마워하고 있는지 아니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6.25 참전 전사자들의 묘비’, ‘한국전 참전용사 고속도로’.

이같은 기념물들은 이 도시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하겠지요. 이들 도시에 살고 있는 비록 얼마되지 않는 미국인들이라도 6.25로 인해 가졌던 한국에 대한 아릿한 정과 인연이 실망과 분노로 바뀌지 않아야 할 텐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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