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를 추방 직전에서 구한 뒤 한 숨 돌리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추방 대상자를 도와달라는 요청이 뉴욕 한국일보에 도달했다.
추방 대상자로 결정된 뒤 수용소에 위탁돼있던 사람이 추방 결정이 취소돼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된 케이스는 모든 소수계 커뮤니티 통틀어 A군과 B씨 뿐이었다.
그만큼 불법체류자의 추방 취소는 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사례였다.
그러나 뉴욕 한국일보가 그 어렵다는 추방 취소 결정을 이끌어 낸 사실은 대단한 화제가 되어 널리 퍼져나간 것같았다.
이번에는 미국인 남편이 한국인 부인 C씨가 추방 대상자가 되어 현재 수용소에 있으며 곧 한국으로 추방되게 됐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C씨는 최근 한국 방문을 마친 뒤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으로 들어오던 중 전과 기록이 조회돼 뉴욕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바로 수용소로 이첩됐다는 것이었다.
C씨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진 영주권자였다. 또한 수년간 몇 차례나 한국 등 해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그간 입국 과정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미 당국은 9.11 이후 일시 체류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영주권자까지 전산화한 자료로 범죄 기록 등을 파악, 미국 입국 여부를 결정했다.
결국 C씨는 전산화로 새로 작성된 리스트에 의해 간과할 수 없는 범죄 기록이 드러나 비록 영주권자라도 입국 거부와 함께 추방 대상자로 결정된 것이었다.
문제가 된 C씨의 전과는 말하자면 일종의 풍속사범이었다.
아내로부터 추방 대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인 남편은 미 이민국에 항의했다.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로 C씨를 사랑해 합법적으로 결혼했다며 아내는 영주권자로 곧 시민권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밝히며 즉각 석방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이민 당국은 남편의 항의에 꿈쩍도 않고 C씨가 곧 추방될 거라는 점만 강조했다.
남편은 바로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 C씨를 구제하는 방법이 없는지를 문의했으나 변호사는 추방 대상자 경우 재심 요청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포기하라고 충고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주변으로부터 뉴욕 한국일보가 이미 2명의 한국인 추방 대상자를 구제해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었다.
나는 이미 미국 이민국으로부터 2명을 구제받도록 했기에 또다시 추방대상자를 살려달라고 요구하기가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고 미안하게도 여겨졌다.
하지만 미국인 남편이 부인을 꼭 추방 대상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진지하면서도 절절한 표정과 마음을 읽고 크게 감동받았다.
우리는 먼저 부인이 추방 대상이 된 죄의 종류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결혼 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아내가 과거 무슨 죄로 처벌을 받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가 내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비록 아내가 저지른 죄가 중하다 할지라도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시점부터의 아내를 사랑했고 결혼했다. 분명히 말해 나는 과거의 아내가 어떤 실수를 했든, 어떤 사람이었든 상관하지 않는다. 아내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한 이후부터의 그녀가 진실한 나의 사랑이다. 제발 우리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짓듯이 마지막 말을 했다. “내가 현재 가장 사랑하는 이는 지금 수용소에 있는 현재의 아내다. 미국 정부가 내 아내에게 미국에 살 자격이 없다고 추방한다면 나는 이런 조국을 존중하거나 사랑할 수가 없다. 아내가 추방된다면 나도 바로 미국을 떠나겠다“고 결연하게 말했다.
웬만한 남편이라면 자신의 아내가 과거 과실이나 경범죄가 아닌 일종의 비도덕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알고 난 이후의 아내, 아내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재삼재사 강조했다. 그의 말과 의지를 확인한 순간, C씨도 반드시 구제해야겠다는 투지가 일었다. 대신 A군과 B씨 때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앞서의 두 사건과 마찬가지로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구제 서명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C씨의 주변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이 일등병으로 미 육군에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딸에게 어머니를 도울 수 있도록 딸의 상관이 일종의 탄원서를 작성, 이민 당국에 전달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전했다. 딸도 우리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이민 당국에 호소문을 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뒤 딸의 직속 상관인 미 육군 하사가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말을 들었고 그 탄원서를 뉴욕 한국일보 지면에 전면 게재했다.
오래된 사실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의 직속 상관으로서 ***가 현재 처한 불행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까해서 서한을 보낸다.
중략
***는 미 합중국에 아주 충성스런 현역 군인으로서 모범적으로 복무하고 있다.
나는 ***의 어머니가 계속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살아가게 돼 ***가 더욱 우리의 조국에 애국할 수 있는 기회를 관계 당국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딸의 상관이 편지를 쓴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가 조금은 실망했다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최소한 고참 위관급이나 영관급 장교가 탄원서를 써보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탄원서 작성자가 육군 하사였기에 이민 당국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비록 계급이 높지는 않았지만 ***의 직속 상관인 육군 하사의 탄원서는 효과를 발휘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 및 정서 차이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경우 특정인의 영향력은 사회적 지위 고하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국은 C씨 딸 상관의 케이스처럼 실질적인 직책에 따라 영향력이 결정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얼마 뒤 이민 당국 고위 관계자로부터 신용일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현재 뉴욕 한국일보가 벌이고 있는 C씨 구제 캠페인을 잘 보고 있다. C씨가 추방될 경우 자신도 미국을 떠나겠다는 남편의 결연한 의지는 물론이고 C씨 딸의 부대 직속 상관이 우리에게 보내온 탄원서도 감명깊게 읽었다. 특히 뉴욕 한국일보의 한국인 추방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건데 추방이 결정된 이민자가 취소 통보를 받고 미국에 살고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 어떤 소수계 커뮤니티에도 없다. 오로지 한국 커뮤니티가 유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뉴욕 한국일보의 노력과 성과에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제는 더이상 이같은 예외조치를 허용할 수가 없다.
C씨를 구제해줄테니 앞으로는 더 이상 이같은 캠페인을 벌이지 않도록 해달라. 재차 강조하건데 더 이상 캠페인을 전개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C씨를 세 번째로 구제해주겠다”는 통보였다.
나는 신 기자를 비롯한 편집국 기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이민국의 최후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이민국의 약속대로 C씨는 미국인 남편 품으로 돌아갔고 그 남편으로부터 “우리의 사랑이 지속될수 있도록 도와준 뉴욕 한국일보에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는 진정어린 감사 인사를 들었다.
불행중 다행인지 모르나 A, B, C씨 케이스 이후 추방 조치를 받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온 경우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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