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매직 랜턴(Magic Lantern), 나를 홀리다.

김인규 기자 승인 2024.08.11 10:52 의견 0
왕복 511.5km를 달려 구한 매직랜턴의 몸체와 슬라이드 필름

뉴욕에서 시카고로 온 몇달 뒤 뉴욕 앤틱 중간 도매상 ‘꽁지 머리와 타이스’ 부부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이보다 앞서 저에게 ‘가슴 떨리는’ 정보를 전해온 뒤 제가 확인해야 할 사항을 되물어 본 이메일에 대해서는 정작 답을 보내오지 않아 내 속을 태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 그들이 제게 보내온 이메일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김, 잃어버렸던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 소식전한다. 매직랜턴(Magic Lantern, 1)이라고 들어봤는지?. 당신은 특히 프로젝터(영사기)를 좋아하니 프로젝터의 시조인 매직랜턴에도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겠지. 얼마전 앤틱 쇼에서 만난 타주 출신 앤틱 업자가 자신이 매직랜턴을 갖고 있다 하더라. 매직랜턴이 있는 그 사람 앤틱 숍은 시카고에서 조금 떨어진 링컨(Lincoln)의 어디 어디라 하더라”

매직랜턴, 프로젝터의 조상이라니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가장 초창기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터를 수집했지만 매직랜턴은 한 번도 듣거나 본 적이 없기에 메일을 받고 난 뒤 주말이 엄청 기다려졌습니다. 그의 이메일을 받자 마자 “당신이 알려준 앤틱 샵이 주말에도 확실하게 문을 여는지? 만약 모른다면 그곳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골 앤틱 샵은 주말에 문을 닫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이 가게가 혹 문을 열지 않아 헛걸음만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되물었던 것입니다.

<매직랜턴 구하러, 왕복 511.5km의 장정에>

그가 이메일에서 “그 앤틱 샵은 시카고에서 꽤 떨어져 있다더라”고 했지만 지도 등을 통해 찾아보았더니 링컨까지는 155마일이나 되는 거리였습니다. 왕복 310마일, km로는 511.5.

헛걸음을 각오하고 다녀오기에는 너무 먼거리여서 주말 휴무 여부의 답이 올 때까지 더 기다려 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좀이 쑤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꽁지 머리와 타이스’란 야릇한 별명을 가진 부부를 소개해야 할 듯하네요. 이들 부부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이들을 지칭할 땐 외모를 빗대 이런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당시 40대 후반의 남편은 항상 긴 머리를 뒤로 한 줄로 묶었기에 ‘꽁지 머리’라 칭했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부인은 날씨가 추우나 더우나 몸에 딱 붙는 타이스 바지를 입어 ‘타이스’라 불렀습니다.

처음 한동안 저는 이들 부부를 별로 좋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가게나 뉴욕 인근 앤틱 쇼장에서 만나면 저를 지나치게 정중하게 대하는 바람에 좀 오해를 했습니다. 저와 대화할 때는 항상 말 끝에 극존칭 ‘써(Sir. 2)’를 붙이곤 했습니다. 처음엔 저는 이같은 말투가 저를 놀리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나면 중세 시대 기사들이 귀부인들에게 하는 방식(오른쪽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고 왼손은 허리 뒤로 돌림과 동시에 오른 손을 앞으로 접으며 인사하는 자세)으로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이 행동 역시 저는 앤틱을 구하러 다니는 유일한 소수계인 저를 존중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조롱하는 것으로 알고 기분이 영 좋질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남편은 190cm, 여자는 180cm에 육박하는 엄청난 덩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서 수 년간 만나보면서 이들의 인간됨과 진실성을 알게 되면서 처음의 편견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매직 랜턴에 삽입해서 화면으로 보여주게 되는 슬라이드 필름. 유리에 칼라로 그려져 있다.

<꽁지 머리, 타이스 부부와의 거래에 신뢰가 생기고>

이들 부부 역시 제가 선호하는 품목을 알고 난 뒤에는 해당 아이팀은 가급적 저에게 넘기려 노력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토요일 앤틱 쇼장의 그들 부스에 갔다가 100년 가까이 된 나무 스키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들 부부가 저에게 정중하게 대우해주는 건 고맙지만 ‘거래는 거래’라는 나름의 원칙을 가졌기에 그 스키 값을 상당히 많이 깎아 제시했습니다. 꽁지 머리 사장은 나의 오퍼를 예상했다는 듯 한동안 껄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지금은 그 가격으로 못 파니 내일 파장 무렵에 다시 한번 와보시오. 그때까지 이것이 팔리지 않으면 가게로 되가져가는 대신 당신한테 주겠소”하고 말합디다. 사실 다음날 별로 기대하질 않고 부스에 다시 들렀더니 제가 제시한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싸게 부른 사람이 있었지만 그에게 넘기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는 겁니다. 저는 그가 나에게 생색을 내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지금도 믿습니다.

하여튼 뉴욕 생활 6년간 그들 부부와 그런대로 괜찮은 관계는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시카고로 옮아 가야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떠나야할 날을 얼마 앞두고 우연히 만난 이들 부부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예상외로 섭섭해하며 송별 저녁을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뉴욕 베이사이드의 프랜시스 루이스(Francis Louis) 길에 있는 '긴좌'라는 스시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긴좌는 한국인 사장이 직접 스시맨을 하는 조그만 식당이지만 맛이 좋고 스시 크기가 보통 일식집의 두배 가까이 돼 입큰 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긴좌에 대한 간접 광고가 결코 아닙니다. 지금도 그곳에서 영업을 하는지 모르나 혹 뉴욕에 가실 일이 있으면 한번 들러 보십시오. 아! 긴좌 스시 먹고 싶네요)

이들 부부는 헤어질 때 “당신은 아주 좋은 고객이었다. 당신이 선호하는 물건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런 것 가운데 특이한 게 나오면 알려주겠다”며 인사를 합디다. 당시는 이 말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카고로 옮아온지 몇 달뒤 매직 랜턴 정보를 알려주었으니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놀랄 수 밖에요.

영상만 보여주는 8mm와 달리 16mm 영사기는 음향도 제공한다.

<내가 영사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분석해보니...>

링컨의 앤틱 샵이 토요일 문을 연다는 보장도 없었고 날씨도 흐렸지만 어느 토요일 오전 저는 제 차에 올랐습니다. 도무지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 날은 영사기의 시조새 격인 매직 랜턴을 구하러 나서는 길이지만

저도 제가 왜 그렇게 영사기에 ‘환장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오래된 것은 좋아하지만 신문물에는 영 약한 저는 당시만 해도 네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을 때라 지도를 봐가며 편도 155마일의 링컨 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왜 이렇게 영사기에 미치는지를 스스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론상으로 155마일이면 승용차로 2시간 거리지만 중간에 길을 놓치고 묻고 하는 바람에 4시간이나 소요됐습니다. 그 시간 내내 제 자신을 분석한 결과, 어릴 적부터 가졌던 영사기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지금 봐도 그 분석은 맞는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본 영사기의 추억>

저희가 자랄 당시 영화는 너무나 신기한 볼거리였습니다. 영화관에 가는 것은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죠. 입장료가 비싸고 싸고를 떠나 극장은 먼나라 공간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가끔 가다 정부 기관이 문화사업 차원에서 학교 운동장이나 큰 공터를 빌려 상영하는 공보 영화가 유일한 시청각 앤터테인먼트였습니다.

이외 순회 영화 상영업자들이 유료로 틀어주는 영화가 그나마 만만하게 접근하고 볼 수 있는 매체였습니다. 순회 영화 상영업자들은 유료로 영화를 틀다 보니 개천 등 트여진 공지에자리를 잡는 정부 영화와는 달리 주로 학교 운동장을 빌려 상영했습니다. 그래야지만 입장료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살았던 대구 삼덕동 근처에서는 주로 인근 동덕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많이 상영했습니다.

동덕 초등학교에서는 영화 상영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행사가 잦았습니다. 당시는 모두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큰 가마솥에다 납작 보리쌀과 분유를 넣고 끓인 죽을 주변 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던 ‘배급’ 활동도 종종 있었습니다.

요즘 웬만한 세대들은 전혀 알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라 당시 순회 유료 영화 상영 때는 현금 외에도 쌀이나 보리쌀을 받고 입장을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동네를 찾은 순회 업자들은 낮부터 샌드위치맨을 동원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영화 홍보를 하곤 했습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산적의 딸’, ‘산적의 딸’. 부모를 따르자니 님이 울고 임을 따르자니 부모를 배신해야 하고. 자 오늘 저녁 상영할 '산적의의 딸' 입장료는 어른 **환, 애들 **환. 쌀도 받습니다. 보리쌀도 받습니다.” 뭐 이런 구성진 멘트를 해가며 몇 바퀴 돌면 그때부터 동네는 전체가 열에 들뜹니다.

영사기에서 재현되는 1940년대 미국의 퍼레이드 모습.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은 못되더라도

입장료를 마련하지 못한 우리들은 당시만해도 동덕 초등학교 담장이던 철조망 사이를 벌려 몰래 숨어들곤 했습니다. 이 바람에 영화 상영이 끝나면 동덕 초등학교 철조망은 사이가 벌어지거나 끊어지는 등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힘겹게 숨어들어간 노천 영화관에서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스크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립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아니라 필름이 워낙 낡아 비가 내리는 것처럼 스크린에 세로로 수많은 줄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번뜩 번뜩 비치는 겁니다. 또한 수시로 ‘위이잉’ 소리를 냄과 동시에 스크린에 검은 구름이 튀어나오다 상영이 중단되기도 합니다. 필름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도처에서 휘파람이 터져나오고 시간이 좀 지나도록 재개되지 않으면 “입장료 내놔라”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영영 중단되거나 그래서 입장료를 반환하는 불상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지금도 당시의 광경을 떠올리면 영화의 내용보다도 영사기에 대한 추억이 더 생생합니다. 운동장 적당한 곳에 마련한 조그만 단상 위의 크지 않은 영사기에서 퍼져나가는 불빛과 릴이 돌아가면서 내는 소음은 참으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릴의 소음이 아름답다는 표현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지극히 주관적 느낌이지 객관적인 평가는 아닙니다.

특히 영사기 불빛 속에서 떠도는 먼지의 운무에 넋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원통형처럼 넓어지며 펴져나가는 환한 불빛 속에서 보통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가끔가다 짓궂은 동네 청년이 영사기 불빛 앞에 손가락으로 묘한 형상을 만들어 스크린에 비치게 할 때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은 야유, 처녀들의 키득거리는 웃음도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것 자체가 흥겹고 즐거운 이벤트로 여겨지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재능있는 인물이었다면 이탈리아의 명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처럼 영화감독이나 영화인이 되었겠지요. 비록 영화 자체보다는 영사기에 대한 신비로움에 빠진만큼 시네마 천국 주인공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화계와 관련한 직업을 가졌어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러나 워낙 변변찮은 인간이다 보니 영화계에 몸담기 보다는 저도 모르게 영사기와 필름을 수집하는 것으로 옛날의 환상을 충족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도상으로는 155마일이었지만 실제 제 차의 계기로는 180마일 가까운 링컨의 한 시골 앤틱 샵을 가면서 제가 영사기에 탐닉하는 이유를 분석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매직 랜턴 소유 앤틱 샵 주인, 강적 중의 강적>

시카고를 출발할 때 잔뜩 흐렸던 하늘은 앤틱 샵에 도착할 무렵 눈과 비가 섞이는 진눈깨비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샵에서는 키가 아주 자그마하면서도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웬지 조짐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정말 잘못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했습니다.

저의 앤틱 구입 역사상 가장 빡센 강적을 만난 것입니다. 사장 할아버지는 자신이 제시한 가격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앤틱 거래에서 제가 단 10센트도 깎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그곳에서 구입한 매직 랜턴은 전기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램프를 이용한 초창기 환등기 형태였으며 화려한 색깔로 그린 유리 슬라이드가 약 40매에 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전혀 예상치 않게도 1800년대말에 찍은 희귀한 유리 필름 3장을 아울러 구한 것은 거의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강행군을 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매직 랜턴; 강한 불빛을 그림, 사진 등에 비추어 그 반사 빛을 렌즈에 의해 확대, 영사하는 기계. 현대 슬라이드 영사기의 선조라 할 수 있습니다. 전기식 매직 랜턴은 1850년대 이후 등장했으며 이전에는 가스 램프 등을 이용했습니다.

2. 써(Sir); 미국에서는 남자들과의 대화에서 ‘써’ 혹은 ‘예스 써’라는 극존칭을 쓰게되면 상대방이 아주 좋아하며 그만큼 자신도 예우를 받게 됩니다. 공식적으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우스개삼아 참고로 들어보십시오. 차를 몰고가다 경찰관에게 단속당했을 때 처음부터 “써”나 “예스 써”를 붙이면 딱지의 벌금 액수가 줄어들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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