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마늘 노점상 3명 연쇄 실종된 기사

반나절 특종이었으나 경찰 간부 2명과 특별한 인연 맺는 계기

김인규 기자 승인 2023.12.18 14:11 | 최종 수정 2024.08.07 18:31 의견 0


반특종 기사 하나로 2명의 경찰 고위간부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왜 반특종기사라고 표현했냐면 특종 기사의 시효가 단 반나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반특종 기사로 맺은 경찰 간부와의 특별한 인연에 얽힌 얘기는 사적인 면이 다소 많이 포함돼있음을 밝히고 양해를 구합니다.

977년 7월 어느 날 출입처 가운데 하나인 용산경찰서 형사계에 들렀습니다. 형사계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처럼 시각을 180도 확보하면서 빛의 속도로 한번에 싹 훓어보았습니다. 이는 형사계 사무실이나 형사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돼있지나 않은지 감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이죠.

그날 형사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왼쪽 옆으로 제일 가장자리 벽 쪽 자리에 앉아있던 형사 한 명이 앞에 놓고 있던 서류를 자신의 책상 서랍으로 슬그머니 넣는 것을 순간적으로 캐치했습니다.

성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므로 편의상 김 형사라고 하겠습니다. 김 형사는 서류를 서랍속으로 감추는 동작이 빠를 경우 기자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판단, 나름대로 아주 천천히 최대한 자연스럽게 서랍을 열고 서류를 치우더군요.

순간 속으로 생각했죠. “아 뭔가 비밀리에 수사하는 게 있구나”

그러나 바로 김 형사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은 바보 기자죠. 김 형사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형사계 당직 데스크에게 특별한 사건은 없는지 물어본 뒤 사무실에 있던 다른 형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도 김 형사의 태도를 무심한 척 관찰했습니다.

“그래 오늘은 일단 그냥 가자. 내일쯤 허를 찔러야지”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용산서 형사계에 갔더니 김 형사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다가가서 말했죠.

“그 껀 어떻게 해결 기미가 보입니까. 아니면 실마리라도 잡았어요?”하고 물었죠. 물론 나는 김 형사가 숨겼던 사건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넘겨짚기로 반응을 떠본 것입니다.

김 형사는 내가 그런 식으로 넘겨짚자 정말로 내가 어떤 특정 사건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지레 짐작한 것같았습니다.

“김 기자, 나 정말 골치 아프네. 장사하던 아줌마가 3사람씩이나 실종됐는데도 도무지 단서를 찾을 수 없으니 말이야”

귀가 번쩍 뜨입디다. 보통 사건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애써 흥분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이미 특정 사건을 잘 알고 있지만 아직 기사를 쓰지 않았고 사건 수사가 어느정도 진척이 이루어져 경찰이 곤란하지 않을 시점에 기사를 내보낼 작정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좀더 구체적으로 사건을 파악하기 시작했죠.

사건인 즉슨. 용산 중앙시장에서 마늘 노점상을 하는 49세 P모 아주머니가 1977년 6월 30일 형사를 자칭한 30~40대 남자 2명에게 끌려갔고, 이보다 일주일 뒤인 7월6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역시 마늘 노점상을 하는 K모(50), S모(47)씨 등 2명이 역시 같은 남자들에 의해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끌려간 지 보름이 지났지만 귀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 담당 김 형사는 아주머니 노점상들이 어떤 혐의를 받고 실제로 경찰관들에게 연행돼 갔을 수도 있다고 보고 인근 마포 경찰서는 물론이고 서울 시내 모든 경찰서에 신원 확인을 의뢰했지만 전혀 알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겁니다.

원한 혹은 인근 불량배 소행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이 아주머니들 주변을 수사하고 있으나 전혀 단서가 없어 본인도 미치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 바로 취재해 기사를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타사에서도 취재할 수 있고 그럴 경우 특종을 놓치게 된다는 생각에 구체적인 자료를 나에게 달라고 김 형사에게 얘기했죠.

김 형사는 당연히 안된다고 펄쩍 뛰더군요. 지금 기사가 나가면 경찰이 무능하다는 사회적 질타는 물론이고 다른 언론사의 항의 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 마음속의 악마를 불러왔습니다. 즉 상대를 설득, 아니 억지 겁주기 작전을 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시간을 끌다 그 분들이 변을 당하거나 하면 어떡 할거요. 그 잘못은 몽땅 김 형사가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지금 기사가 나간 뒤 약간 고초를 겪는 게 낫지 나중에 최악의 상황에 혼자 피를 볼 텐데. 잘 생각해봐요. 대신 내가 김 형사가 절대 곤란하지 않도록 기사를 잘 다듬을께. 그런건 우리가 전문아니요”

그럴듯한 말로 설득하자 김 형사도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지 인적사항과 3명의 얼굴 사진까지 내놓았습니다. 얼론 회사에 들어가서 기사를 작성, 사회부 데스크에 넘겼죠.

이 기사는 “3여상인 연쇄 실종” “1주일새 자칭형사 두 명에 연행돼“라는 제목으로 7월20일자 한국일보 사회면 중간 톱 기사로 나갔습니다.

당연히 타사 기자들에겐 비상이 걸렸고 용산 경찰서는 물론이고 서울 시경도 난리가 났습니다. 이처럼 미스터리 강력 사건이 일어났는데 사건 발생 20일이 지나도록 해결은커녕 단서도 잡지 못했냐는 질책과 비난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난리, 즉 한국일보 특종 기사의 수명은 오전 한 나절에 그쳤습니다.

이들 세 여 노점상들은 서울 성동경찰서에 구속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한국일보에 난 기사를 본 성동서 형사 즉, 이들을 연행해갔던 형사가 이를 보고 아무래도 낯이 익은 것같아 확인해보니 자기네가 구속시킨 여 노점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죠.

성동서는 어쩔 수 없이 실종 여상인들은 자기네 구치소에 있다는 사실을 시경에 보고하고 시경은 용산서에 이를 알려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은 일단은 전모가 밝혀진 셈이지요.

알고 봤더니 여 노점상들이 연행될 당시는 서울 시경 산하 각 경찰서에 절도범 ‘일제 단속’ 기간, 이를 경찰들과 기자들은 ‘후리가리’란 일본말을 씁니다. 후리가리 기간에 성동서 형사 2명이 이들 노점상들이 상습적으로 마늘을 훔쳐서 팔아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을 연행해간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이처럼 경찰서간 관할 구역을 뛰어넘는 수사나 연행은 하지 않지만 소위 후리가리 기간 중에는 먼저 잡는 경찰이 임자이기에 성동서 형사들이 용산서 관내에서 절도 용의자들을 검거 연행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특히 이들 노점상들은 조서를 받을 때 본명을 숨기고 가짜 이름을 댔습니다. 이들은 또 초범이어서 전과자 명단에도 없었기에 용산서가 성동서로 보낸 신상 조회에서도 비껴갈 수 있었던 거죠.

한국일보에 여 상인 실종 기사가 나가고 이런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저는 혹시 진전된 수사 상황이 있는지 등 후속 기사를 쓰기 위해 용산서에서 배계수 수사과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 시경으로부터 성동서에 그들이 잡혀있다는 사실을 함께 듣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이런 종류의 기사면 계속 속보 꺼리를 이어가면서 특종의 희열을 한동안 맛볼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말이 드러나는 순간 발생 기사와 관련한 속보 기사는 더 이상 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솔직히 김이 새더군요.

그런데 저보다 더 김이 새고 난감해하던 사람은 바로 용산서 배계수 수사과장이었습니다. 언론 속성상 발생기사를 쓴 한국일보가 틀림없이 공조 수사 미흡, 초등 수사 부실 등등 소위 용산서를 힐난하는, 소위 ‘조지는’ 기사가 나갈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배계수 과장은 경정 진급 예정자로 당시 용산서 수사과장 직무 대리였으며 며칠 뒤 정식 경정이 되어 성남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가기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3명의 여자 노점상 실종과 관련해 후속 수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면 용산서 수사과장이 어떤 문책을 당할지, 최악의 경우 진급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한동안 입맛만 다시고 있던 배 과장이 입을 뗍디다.

“김 기자, 이번 사건에 우리가 잘못한 거는 없잖아?.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시경과 치안본부에도 신상 조회 했는데 이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경찰서 잘못 아니야?”

말하자면 후속 기사를 쓰더라도 용산서가 잘못한 것은 별로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 달라는 간곡하면서도 은근한 부탁인 셈이었습니다.

사실 배 과장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언론 속성으로 볼 때 공조 수사 미흡, 보름 동안 허탕친 수사력 등을 거론하며 용산서까지 싸잡아 비난할 기사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배계수 과장에 대해 인간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남형 얼굴에다 소탈하고 씩씩한데다 솔직한 성품이어서 참 괜찮은 경찰관이라고 평소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승진에 이어 영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는 그가 만약 내가 쓸 후속 기사로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속보를 쓰러 회사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알아서 잘 마무리할게요”란 말을 하고 수사과장실을 나왔습니다.

다음날 속보로 나온 기사가 이것입니다.

사회면 3번째 톱으로 세로 4단 기사로 “이웃 경찰서에 구속된 절도 피의자, 실종수사 허탕 보름. 마늘 여노점상인 연쇄 잠적사건......보도되자 소재 밝혀져”

사실 이 기사 내용을 보면 용산서를 비난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은 사실 없습니다. 오히려 용산서는 서울 시내 경찰서는 물론이고 치안본부를 통해 전국 경찰서에 수배했으며 가족들이 가져온 사진 등으로 수배 전단까지 만들어 연행 장소 주변에 뿌렸다는 사실, 인근 불량배 조직 등도 연행해 범행하지 않았는지 수사했다는 등 오히려 용산서가 노력을 많이 했다는 칭찬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날 배 과장을 만났더니 “김 기자, 속보 기사 잘 봤어요. 우리 경찰서 입장을 고려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정확하게 기사 써주어 정말 고맙소. 내 잊지 않으리다”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했습니다.

배계수 과장이 성남서로 떠나기 전 며칠전 배 과장과 저는 수사과장실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사과장실로 얼굴이 하얗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귀공자 스타일의 사복차림이 들어옵디다.

그 사람을 보고 배 과장이 “아 오셨네. 두 사람 인사하십시오. 이쪽은 한국일보 김 기자, 이쪽은 이팔호 공관경비대장”이라고 소개를 시켜주었습니다.

공관경비대는 용산서 관내에는 외국 공관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데 이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 대장을 얘기하는 겁니다.

배계수 과장은 자신의 후임이 되는 이팔호 경비대장과 저를 특별히 소개시켜주기 위해 이같은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배 과장은 이팔호 대장에게 “김 기자는 의리남”이라며 “김 기자를 남달리 생각하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이팔호 대장은 “이번에 여자 노점상 실종 기사 썼던 기자군요”라며 나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경찰관 특히 경찰 간부들은 소위 특종 기사를 쓴 기자에게 두가지 상반된 관점을 갖고 있다고 저는 봅다.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는 사안을 단독 보도한 기자에게 적대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심에 근거한 일종의 외경심이랄까 하는 감정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상인 실종 기사 및 속보로 인해 배계수 과장과는 인간적 호감을 갖게 됐고 배 과장의 소개로 특별히 인사를 하게된 이팔호 과장과도 특별한 앎의 시작으로 인해 기자와 경찰이라는 공적 관계를 뛰어넘는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인연이 되어 배계수 과장과 이팔호 과장과는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또다른 좋은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라떼기자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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