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바다인 지형적 특성과 뚜렷한 사계절로 다양한 식재료를 보유한 우리나라야말로 식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구이 문화로 시작한 서양음식과 달리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부터 토기 사용으로 습열 조리가 가능한 증숙(蒸熟) 문화로 안정된 반상문화를 가지고 있다.

반상문화에서 반갱(飯羹)과 찌개는 한식(韓食)만이 같는 독특한 식문화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찌개문화의 역사 변천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려무신집권기 문신이었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년)가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제5권 시문(詩文)에 “臛臇不辭欹(학전불사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학(臛)’은 고깃국 또는 곰국을 말하는 것이고 ‘전(臇)’은 지짐이 또는 지짐을 말한다.

그렇다면 전(臇)’이라 불리는 ‘지짐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예전에 어른들은 고기를 사오면 “지저 먹는다.”는 말을 했다. 지저 먹는다는 말은 오늘날 찌개를 끓여 먹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전(臇)’은 국물음식을 뜻하는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소운거사(嘯雲居士)로 불리던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전부(臇鳧)’가 나오는데, 이 는 오리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낸 요리연구가 방신영 (方信榮, 1890년 ∼ 1977년)『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 ‘무지짐이, 우거지지짐이, 암치지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 재야학자였던 위관(韋觀) 이용기(李用基 1870~1934)의『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지짐이를 한자어 ‘전(臇)’이라 병기하고, 그릇째 접시에 받쳐 소반에 놓고 먹는 것은 ‘찌개’, 큰 냄비 등에 끓여 보시기에 떠서 먹는 것은 ‘지짐이’라고 하여 두 음식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정조(正祖)의 자궁(慈宮)이신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1735-1815)의 회갑연을 기록한『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조치(助致)’라는 찌개 종류가 처음 나온다.

이 ‘조치(助致)’ 역시 궁중에서 부르는 찌개 종류라 할 것이다.

이 ‘조치(助致)’는 1800년대 말 작자 미상의 한글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쳔엽좃치, 골좃치, 생선좃치’가 소개되어 있고, 한국 최초의 한식다과전문점 호원당(好圓堂) 설립자인 요리연구가 조자호(趙慈鎬 1912~1976)선생이 1939년에 편찬한 전통요리책『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에도‘조기조치, 계란조치, 명란조치… ’등 조치류(助致類)가 나온다.

13세 때 덕수궁 소주방 궁녀로 입궁하여 고종, 순종, 윤비를 모셨던 한희순(韓熙順: 1889-1971)상궁과 황혜성(黃慧性: 1920-2006), 이혜경(李惠卿)이 저술한『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에 ‘감정’이라는 음식이 처음 등장한다.

‘감정'은 고추장찌개를 달리 이르는 궁중의 말로 실은 찌개와 조림의 중간쯤으로 바특하게 끓인 찌개를 뜻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한국요리백과사전』에서는 민가에서 지짐이라고 불리는 음식을 궁중에서 감정이라 하며, 국과 찌개의 중간 쯤 되는 음식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틀린 설명이다.

‘지짐이’는 우리말로 표현 한 것이고 한문으로‘전(臇)’이라 표현 했을 뿐 조선후기 이전 사대부들이 자주 거론한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도 해먹었던 음식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짐이’‘전(臇)’ ‘조치(助致)’ ‘감정’모두 찌개류로 궁중은 물론 반가에서 해 먹던 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찌개는 근대적인 국물음식 용어라 할 것이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