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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희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년)의 유명한 시다.

그는 자신의 호를 따 시문집 등을 엮은 『약천집(藥泉集)』이 있는데, 이 책에 유자로 만드는 전복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복김치를 알게 된 유래와 그 만드는 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曾聞叔父竄珍島時(증문숙부찬진도시)일찍이 들으니 숙부께서 진도로 유배

가셨을 때

細切柚子皮(세절유자피)유자 껍질을 잘게 썰어서

合梨實鰒魚爲葅(합리실복어위저)배와 전복과 합하여 김치를 담았는데,

風味超然(풍미초연)풍미가 뛰어나서

非煙火中人所可食者云(비연화중인소가식자운)연화 가운데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余亦效而爲之(여역효이위지)나도 이것을 본받아 김치를 만들고는

停箸有感(정저유감)젓가락을 멈추고 감회를 썼다.”

약천(藥泉)선생은 진도(珍島)로 유배를 간 숙부(叔父)는 현종 때의 문신 의졸(宜拙) 남이성(南二星, 1625~1683)이다. 그는 1674년(현종 15) 대사간을 지내던 시절에,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상복 착용 문제로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의졸(宜拙)선생은 노론의 송시열(宋時烈), 김수항(金壽恒)을 변호하는 상소문(上疏文)을 올렸다가 진도에 유배되어 3년을 살았다.

이 유배기간 진도에서 생산되는 유자와 전복에다 배를 넣어 김치를 담아 먹었고, 이를 조카인 약천(藥泉)에게 알려져 직접 담아 먹으며 쓴 글이다.

전복김치는 조선 숙종 때 문신이었던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증보하여 1766년에 펴낸 유중림(柳重臨, 1705∼1771년)이『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등장하고. 이후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농정가(農政家), 저술가였던 서유구 (徐有榘, 1764년~1845년)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정조지(鼎俎志)」와 1809년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 1759-1824)『규합총서(閨合叢書), 1892년(고종28년) 숙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가 쓴『음식방문니라』, 1921년 요리연구가였던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이 저술한『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1946『조선음식 만드는 법』등 옛 고조리서는 물론 근대 조리서에 등장한다.

1984년에 편찬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펴낸『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향토음식편」에서는 경상도와 제주도 지역에서 전복김치를 만들어 먹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8년에 편찬된 농업과학기술원에서 펴낸『한국의 전통향토음식』에서도 경상남도 지역의 전복김치가 소개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전복김치도 재료나 방법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경상도 지역의 경우 전복을 주머니처럼 만들지 않고 저며서 만두피처럼 넓게 편 다음 유자와 배를 넣고 밀쌈처럼 말아 꼬치로 꽂아 만들고, 제주도 지역에서는 전남처럼 전복을 얇게 저민 다음 유자·배 등과 섞어서 담고 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