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접어들면서 요즘 마트나 시장에 가면 둥그런 수박이 눈길을 끌면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잘 익은 수박을 반으로 자르면 쩍! 소리가 나며 달콤한 빨갛게 익은 속살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조선 정조 2년 (1778) 윤6월2일에 설익은 수박을 아뢰지 않고 잘못 봉진한 도설리 중관(都薛里中官) 김경우가 엄하게 추고(推考 : 심문)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일성록(日省錄)』

수박은 익지 않으면 비려서 맛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정조는 “절서(節序)가 아직 이른데 이미 천헌(薦獻)하였다는 이유로 날마다 봉진(封進)하게 되면 점퇴(點退)하는 즈음에 공인(貢人)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주원(廚院)이 봉입(捧入)하는 수박을 며칠만 미루어서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봉입하라고 분부하라.” 하였다.

그런데, 고려 때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먹었던 수박은 속살이 하얀색이었나 보다.

“ 季夏今將盡(계하금장진)마지막 여름이 이제 다해 가니
西瓜已可嘗(서과이가상)수박을 이미 먹을 때가 되었도다
龍喉游近甸(용후유근전)승제 아들은 근교를 유람하고
鶴髮在高堂(학발재고당)늙은 아비는 높은 집에 있었더니
瓣白氷爲質(판백빙위질)하얀 속살은 얼음처럼 시원하고
皮靑玉有光(피청옥유광)푸른 껍질은 빛나는 옥 같구려
甘泉流入肺(감천유입폐)달고 시원한 물이 폐에 스며드니
身世自淸涼(신세자청량)신세가 절로 맑고도 서늘하구나”

수박의 한얀 속살이 얼음처럼 시원하다고 했다. “味似甘泉色雪華(미사감천색설화)맛은 단 샘물 같고 빛깔은 눈꽃 같구나”라고도 했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성소(惺所) 허균(許筠, 1569~1618년)은 서과(西瓜) 즉 수박은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1244~1291)가 처음 개성에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홍다구의 조부 홍대순(洪大純)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원나라에 투항했고, 그의 아버지 홍복원(洪福源) 역시 대몽항쟁기에 고려 변방의 관리로 있다가 몽골군이 침입하자 투항하여 몽골의 고려침입에 적극 협력했고, 홍다구는 원나라에서 태여나 귀화하여 고려를 공격하는데, 가담한 3대에 걸친 매국노 집안이다.

이 홍다구가 수박을 처음 심은 곳이 개성이며, 이 수박이 세월이 흘러 전국으로 퍼졌다.

수박에 대한 다양한 속담이 있는데, “수박 겉 핥기”“수박은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라는 말과 함께 북한에서는“능라도 수박같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수박은 얼마나 단지하는 당도로 맛을 갸름하는데, 이 속담은 맛없는 음식을 표현할 때 쓴다.

능라도는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 위치한 섬으로 장마철이 되면 섬 전체가 물에 잠긴다.

수박이 물에 잠기면 수분을 너무 많이 빨아들여 수박이 달지 않고 맛이 없다.

수박은 ‘서과(西瓜)’라고 불렀다. 서쪽에서 온 오이 혹은 참외라는 뜻이다. 서쪽은, 중국을 중심으로 셈한 것이다. 오늘날 우루무치 일대와 그 서쪽, 서역을 가리킨다.

조선중기의 시인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 1579~1651년)는 수박을 두고

“異種出西域 何年入我東(이종출서역 하년입아동)

서역에서 나온 특이한 품종 어느 때 우리 동방에 들어왔나

綠衣天色近 圓體佛頭同(녹의천색근 원체불두동)

푸른 껍질은 하늘빛에 가깝고 둥근 형체는 부처 머리와 같아라

削外瓊瑤白 刳中琥珀紅(삭외경요백 고중호박홍)

껍질 벗기면 옥처럼 하얗고 속을 가르면 호박빛으로 붉구나

呑來甘似蜜 嬴得滌煩胸(탄래감사밀 영득척번흉)

삼키면 달기가 꿀과 같아서 답답한 가슴 시원히 씻을 수 있네”

수박의 전래에 대해서는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말이 믿을 만하다. “수박은 원나라 초기 이미 중국 절강성 등에 있었다. 송나라 말기의 기록에도 서과가 나타난다. 송나라 사람 호교(胡嶠)가 ‘함로기(陷虜記)’에서 ‘우루무치(회흘)에서 서과 종자를 구했다’고 했으니 송나라 때 서과는 천하에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는 경기의 석산(石山)과 호남의 무등산, 평안도의 능라도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씨가 검은색이다”『임하필기(林下筆記)』라고 했다.

수박은 귀하게 사용되었다. 여름철 종묘에 천신하는 물품으로 앵두, 보리, 수박, 참외 등이 등장한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여름철에는 각별히 수박을 지급했다. 조선 후기 문신 윤기(尹愭1741∼1826)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초복에는 개고기 한 접시, 중복에는 참외 두 개, 말복에는 수박 한 개를 준다’고 했다.『무명자집(無名子集)』

당뇨로 고생하는 이들도 수박을 귀하게 여기며 먹었다.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10년 묵은 소갈병이 수박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낫는 듯하다. 약재보다 수박이 오히려 낫다’고 했다. 『사가시집(四佳詩集)』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