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실학자이자 농정가이며 저술가인 풍석(楓石) 서유구 (徐有榘, 1764년~1845년)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정조지(鼎俎志)」에 총적(蔥炙)만드는 법이 나온다. 총적(蔥炙)은 한글로 파적을 말한다.
1934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낸 방신영 (方信榮, 1890년∼1977년)의 조카 이석만(李奭萬)이 발간한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에 '파초대'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고 파전여, 옴파전, 파지단, 파적, 옴파저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물론 조선왕조 궁중음식(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의 연구가이자 숙명여자대학교의 황혜성 (黃慧性, 1920년 ~ 2006년 )교수의 『한국음식(韓國飮食)』에도 파전 조리법은 나온다.
이 파전이 유명한 곳이 동래다. ‘파전 먹는 재미로 동래장 간다’는 말이 있다.
동래파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30년대 동래시장 동문 입구에 「진주관」이 문을 열면서부터 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파전은 예부터 경상도 지방에서 전해 온것으로 진주(晋州)를 으뜸으로 쳐왔으나 요즘은 동래(東萊)가 그 맥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 맥을 이어 준 분이 바로 진주강씨인 강매희씨다.
강매희씨가 동래시장에서 갈대발을 치고 노점에서 처음 개업한 후, 1960년대 2대 이윤선씨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으면서 동래구 복천동 343번지로 옮기고 제일식당이라는 상호를 붙였다.
2대 이윤선씨는 숯불에 달군 철판에 반죽한 멥쌀가루를 떠놓고 그위에 연한 미나리와 파를얹어 꼭꼭 다진후에 기장(機張)의 홍합과 석화(石花) 쇠고기를얹어 조금 익혀 다시 그위에 멥쌀가루반죽을 끼얹고 토종닭이 낳은 달걀을 뿌려 파전을 만들었다.
조선일보 최종호 부산주재기자는 ‘이 할머니가 40년동안 만들어온 파전의 맞은편 입구에 붙여놓은 19살때 찍었다는 미모의 사진과함께 단골손님들의 흥미를 돋우고있다.’고 기사를 썼다.
3대 김옥자씨는 시할머니가 파적을 구워 팔았던 동래장의 갈대발을 엮어 지은 노점에서 장사를 했다.
이 당시까지는 파전이 아니라 파적이었다. 1970년대 동래파전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북천동367~2번지로 이전하여 4대 김정희씨 까지 동래파전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동래할매파전이라는 상호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94번길 43-10에서 영업을 이어오고 가고 있다.
동래파전은 파산지인 밀양과 미나리산지인 언양이 가까이 있으며, 또 바다와 접하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게 들어 간다.
동래 파전의 주재료는 찹쌀가루와 멥쌀가루이고, 풍성한 해물이 들어가 일반 파전과는 다른 부산광역시 동래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동래 파전에는 쪽파·미나리 같은 채소류와 쇠고기·달걀의 육류, 그리고 대합·홍합·조갯살·굴·새우 등의 해산물이 들어가 ‘해물파전’이라고도 한다. 동래 파전의 특색은 파전을 굽다 마지막에 달걀을 풀어 익을 때 파와 해물의 향을 보존하기 위해 냄비 뚜껑을 덮는다. 파전은 간장이 아닌 초장에 찍어 먹는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