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은 "나무 의자 빼고는 다 먹는다" 다고 한다. 좋게 말해서 중국 요리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과장해 표현한 속담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인들이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많은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단백질섭취를 위해 다양한 곤충튀김도 먹는다. 물론 이는 중국 뿐 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도 곤충은 즐겨 먹기는 한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이 모기눈알과 개미알젓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게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중국 오령(五嶺) 이남에서는 개미알[螘卵]을 먹는데, 그것은 아마 옛날의 지해(蚳醢)이리라.”라고 했다.
그렇지만 개미알젓은 아정(雅亭)이『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언급하기 그 이전에도 우리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 중기 학자 윤휴(尹鑴, 1617~1680) 문집인 『백호전서(白湖全書)』에 개미 알로 만든 젓갈인 지해(蚳醢)가 나오는데, 지(蚳)는 왕개미 알이고, 이 왕개미 알로 담은 젓갈이 지해(蚳醢)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은『성호사설(星湖僿說)』제4권 만물문(萬物門) 곤충가식(昆虫可食)에서‘ 개미알로 만든 젓[蚳醢]이 있는데, 지(蚳)란 것은 개미알[蚍蜉子]이다. 그리고 『주례(周禮)』에도, “연향[饋食]하는 그릇에 조개[蜃]ㆍ개미알[蚳]ㆍ메뚜기새끼[蝝]로 만든 반찬을 담아 놓았다.” 하였는데, 연(蝝)이란 것은 메뚜기새끼[蝗子]이고, 지(蚳)란 것은 개미집 속에 흰 좁쌀처럼 생긴 알이다. 이 개미 알은 잘아서 모으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역시『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개미알젓 즉 지해(蚳醢)를 언급했다.
이 개미알젓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8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국어(國語)』⌜노어(魯語)⌟ 상(上) 46.‘리혁단선공고이기지(里革斷宣公罟而棄之)’ 역주(譯註)에 “이는 蚳는 개미 알로, 젓을 담는다.”라고 최초로 등장한다.
즉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조실록(仁祖實錄)』36권, 인조 16년(1638년) 5월 10일 1번 째 기사
‘이에 앞서 연신(筵臣 : 경연(經筵)에 관계하던 벼슬아치)이 아뢰기를,
"근래 제향에 쓰는 사슴 육장과 토끼 육장 등이 모두 정결하지 못하여 악취가 많이 나서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주례(周禮)』를 상고해 보니, 제사에 쓰는 육장에는 방합[蠯]·고둥[蠃]·개미알[蚳] 등이 있다고 했는데, 주석에 씹조개[蚌蛤]·소라고둥[螺蚧]이라 했으니 바로 오늘날의 생합(生蛤)·소라(小螺)·백하(白蝦) 등입니다. 『예기(禮記)』에 ‘곤충의 기이한 것과 초목의 열매는 음양(陰陽)의 뜻을 갖추는 것이다.’ 했으니, 지금 고례에 따라 생합·소라·백하 등의 육장을 대신 써서 악취가 나는 사슴 육장과 토끼 육장을 없애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렇듯 개미알[蚳]이나 개미알젓[蚳醢]이 문헌에 자주 등장하고 심지어 임금 앞 경연에서 까지 등장하지만 우리의 식성에는 맞지 않았는지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학자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한수재집(寒水齋集)』에 보면 “『예기(禮記)』에 임금의 제물(祭物) 및 식물(食物) 중에 조범(蜩𧍙) 범혜(范醯)라는 것이 있는데, 조범은 매미와 벌이고 지혜(蚳醯)는 개미로 담근 식초입니다. 성왕(聖王)의 법에 어류(魚類) 중에 송사리[鯤鮞]의 사용을 금하고 충류(蟲類) 중에 개미[蚳蝝]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런 물건들이 반드시 주방(廚房)에 오르지 않을 것인데, 내칙(內則)과 제통(祭統)에 모두 실려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모두 성인의 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라고 했다. 즉『예기(禮記)』를 중요시 했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성정과 식성에 맞지 않은 곤충 등은 식용을 하지 않았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