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미역은 산지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있는데, 잎이 넓적한 미역을 동해안 지역에서는 ‘펄미역’이라 하고 서해안 지역에서는 ‘떡미역’이라 한다. 물살이 세고 수심이 얕아서 햇볕을 많이 받고, 미역바위에 포자가 촘촘히 붙어서 줄기 위주로 자라면 ‘쫄쫄이미역’ 또는 ‘가새미역’이라 한다.
영조실록(英祖實錄)90권, 영조 33년(1757년) 7월 16일자에 ‘혼전(魂殿)에 공진(供進)하는 채소나 과일을 줄이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채소와 과일의 공물(貢物)은 그 폐단이 가장 크다. 해곽(海藿) 만 하여도 종류는 한 가지이지마는 명칭이 다섯 가지나 되어 분곽(粉藿)·조곽(早藿)·곽이(藿耳)·사곽(絲藿)·감곽(甘藿) 등의 구별이 있는데, 그것을 품종대로 다 각각 올리니 민폐가 매우 크다. 사곽·곽이 두 종류는 특별히 감하게 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해곽(海藿)은 미역을 뜻한다.
그런데, 나는 철에 따라 미역의 이름이 다른데, 올 미역을 ‘풋미역’ 또는 조곽(早藿), 여름에 나는 제철 미역을 감곽(甘藿)이라고 했다. 미역 형태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장곽(長藿)보다 짧게 채를 지어 말린 미역으로 길이 70cm, 넓이 7cm가량의 빛이 검고 품질이 좋은 미역을 새초미역 즉 중곽(中藿), 실 같은 형태의 가닥미역을 실미역 즉 사곽(絲藿), 줄기가 길고 잎이 가늘며 살이 꽉 찬 단단한 미역을 동해안에서는 ‘쫄쫄이 미역’, 서해안지역에서는‘가새미역’이라 하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천주교인인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 유배지에서 저술한 수산 박물지인『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해대(海帶)’와 ‘가해대(假海帶)’로 구분했다.
‘해대(海帶)’는 ‘해산한 여성의 여러 병을 치료하는 데 이를 뛰어넘는 약이 없다’고 했다. 그 ‘해대(海帶)’가 바로 ‘가새미역’이다.
줄기가 짧고 , 잎이 넓은 ‘넙미역’또는 장곽(長藿)이라 하는데, 이는 하품으로 분류한다.
미역귀는 곽이(藿耳)라고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1780년부터 죽기 몇 년 전까지 20여 년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망기이자 일기인『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에서 미역을 해조(海藻)라 하면서 ‘당(唐)나라 진장기(陳藏器, 678~757)는 “신라에서는 바닷가 어민들이 허리에 줄을 매고 잠수하여 채취한다. 5월 이후로는 사람을 해치는 거대한 물고기가 다녀서 채취할 수 없다.” 하였는데, 지금 미역[藿]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미역국 해조갱(海藻羹)은 산후에 반드시 처방으로 써야 한다. 부인이 해산할 달이 되면 우선 이것부터 마련해 두었다가 해산을 하고 나서 국을 끓여 쌀밥을 말아 계속 이어서 먹는데 청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신라 때부터 미역을 따 산후조리용 음식으로 국을 끓여 먹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世宗實錄⌟세종 29년(1447) 9월 23일 예조 참의(禮曹參議) 이선제(李先齊)가 왕에게 상서하기를 “미역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으로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곳곳에 다 있사온데, 제주(濟州)에서 나는 것이 더욱 많아서, 토민(土民)이 쌓아 놓고 부자가 되며, 장삿배가 왕래하면서 매매하는 것이 모두 이것이옵니다.”라고 하였다.
미역은 고문헌에 해채(海菜), 자채(紫菜), 조곽(早藿), 분곽(粉藿), 사곽(絲藿), 감곽(甘藿), 경태(鯨胎) 등 다양하게 불리어져 왔으며, 산모의 산후 회복에 특히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나온다.
⌜영조실록(英祖實錄)⌟영조 33년 정축(1757) 7월 16일자에 보면 ‘ 해곽(海藿)만 하여도 종류는 한 가지이지마는 명칭이 다섯 가지나 되어 분곽(粉藿)ㆍ조곽(早藿)ㆍ곽이(藿耳)ㆍ사곽(絲藿)ㆍ감곽(甘藿) 등의 구별이 있는데, 그것을 품종대로 다 각각 올리니 민폐가 매우 크다. 사곽(絲藿)ㆍ곽이(藿耳) 두 종류는 특별히 감하게 하라.’
여기서 곽이(藿耳)는 미역귀를 말하고 사곽(絲藿)은 실 같은 형태의 가닥미역을 말하는데, 이 사곽(絲藿)은『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등을 보면 미역 중에도 궁중의 제찬(祭饌)이나 제수(祭需)용으로 쓰여 질 정도로 최상급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미역으로도 불리는 사곽(絲藿)은 가늘고 부드러워 냉국이나 가볍게 끓이는 미역국용으로 적합하다.
그런데, 이 사곽(絲藿)은 황해도(黃海道)와 경상도(慶尙道) 두 지역에서만 나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실멱[絲藿]이 황해도(黃海道) 장련현(長連縣)의 남쪽 바닷가에서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주로 황해도(黃海道) 해주목(海州牧), 풍천도호부(豐川都護府), 옹진현(甕津縣), 은율현(殷栗縣), 강령현(康翎縣), 장연현(長淵縣)에서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조 재위시 홍문관(弘文館)에서 각 지역의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황해도(黃海道)는 물론 경상도(慶尙道) 곤양군(昆陽郡 : 지금의 사천시), 웅천현(熊川縣 : 지금의 창원 진해구),
최성환(崔瑆煥 1813~1891)과 김정호(金正浩 1804~1866 추정)가 1853년 이후 편찬한『여도비지(輿圖備志)』에는 하동부(河東府), 곤양군(昆陽郡) 등에 사곽(絲藿)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김정호(金正浩)의『대동지지(大東地志)』와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이 제작한『여재촬요(輿載撮要)』에도 황해도(黃海道) 토산(土産)으로 사곽(絲藿)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곽(絲藿)이 황해도(黃海道)외에도 부산 기장이나 전라도 지방에서도 생산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