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뼈에 대한 기록은 조선 중기 대학자였던 사계(沙溪) 김장생(1548∼1631)의『사계전서(沙溪全書)』제2권 ‘가례집람도설(家禮輯覽圖說)’ ‘豕牲右胖圖(돈생우반도)돼지를 희생으로 쓸 경우의 반의 그림’에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에 이르기를, “돼지를 희생으로 쓸 경우에는 오른쪽 반(胖)을 올리는데 항문 부위인 비(髀)는 올리지 않으며, 앞다리의 어깨 부분인 견(肩), 넓적다리 부분인 비(臂), 정강이 부분인 노(臑), 뒷다리의 넓적다리 부분인 전(膞), 정강이 부분인 각(骼)과 등뼈의 앞부분인 정척(正脊) 하나, 중간 부분인 정척(脡脊) 하나, 아랫부분인 횡척(橫脊) 하나 및 갈빗대의 뒤쪽 부분인 단협(短脅) 하나, 중간 부분인 정협(正脅) 하나, 앞쪽 부분인 대협(代脅) 하나를 쓴다. 등뼈와 갈빗대는 모두 두 뼈로 되어 있다.[升豕右胖髀不升肩臂臑膞骼正脊一脡脊一橫脊一短脅一正脅一代脅一皆二骨]”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승(升)은 올린다는 뜻인 상(上)과 같다. 오른쪽의 반(胖)을 올리는 것은, 주(周)나라에서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비(髀)를 올리지 않는 것은 항문 부위여서 천하기 때문이다. 등뼈인 척(脊)과 갈비뼈인 협(脅)은 뼈가 많은데, 여섯 덩이는 각각 두 개의 뼈를 취하여 나란히 하는데, 이는 많은 것을 귀하게 여겨서이다.” 하였다.‘라고 나온다. 돼지의 뼈를 부위별로 자세히 설명했을 뿐만아니라 제례에 희생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으로 제상에 올려졌던 돼지뼈를 제례 후 다양하게 조리해 먹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돼지뼈를 이용한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돼지갈비찜도 있겠지만 감자탕도 있다.
감자탕은 돼지 등뼈와 감자, 우거지, 갈은 들깨, 깻잎, 붉은 고추, 파, 마늘 등을 넣어 맵고 진하게 끓여 걸죽하고 얼큰한 맛이 나는 한국의 국물 요리이다.
감자탕을 뼈다귀감자탕, 뼈다귀해장국, 돼지등뼈우거지탕 이라고도 부른다.
감자탕 유래는 인터넷 상 설(設)로 이어질 뿐 문헌적 근거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1960~70년대 서울에는 4개의 도살장이 있었는데, 성동구 마장동, 영등포구 독산동 성북구 미아리 서대문 응암동에 있었으며, 특히 영등포구나 서대문 응암동 도살장 주변에 돼지뼈탕이나 감자탕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만 감자탕의 식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고 비싸지 않은 돼지등뼈와 감자를 주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시기에 서민들 음식으로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돼지 등뼈를 감자라고 하여 감자탕이라는 이름을 갖게되었다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설이 있으나 양돈 협회와 육가공 종사자 모두 '돼지에는 감자라는 부위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감자뼈'설은 감자탕집에서 떠돌던 민간 어원이 마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인 것처럼 둔갑한 사례가 확실해 보인다.
감자뼈설이 퍼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으로 2000년대 초반에 네이버가 급부상하던 무렵 네이버 메인에 지식iN에 올라온 베스트 답변에 감자탕의 어원에 관해 돼지 등뼈를 감자라고 불러 감자탕이다라는 내용의 답변이 있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감자는 돼지 등뼈를 일컫는 말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근거없는 설들은 지금도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