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다래농원’ 농장주 김재숙씨와의 인터뷰는 몇차례 연기와 조정으로 2주 이상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실현됐다. 보통 이런 취재는 2~3일이면 면담을 마친 뒤 기사까지 완성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서로가 몇차례 약속을 재조정하는 바람에 만남이 예상외로 늦어진 것이었다.
이같은 상황이면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약간 짜증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김재숙씨와는 일정을 조정, 재조정하면서도 짜증스럽다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전화를 처음 받을 때나 끝날 때나 언제나 하이톤의 말소리가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 탓이었다. 농장주인 김재숙씨와 ‘남편이지만 일꾼’인 김성수씨를 만나 얘기를 나누어 본 결과 김재숙씨와의 통화가 왜 그렇게 상쾌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시골 생활을 너무 싫어했지만 지금은 도시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대화자에게 귀농 생활에 대한 만족감과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옮아주기 때문이었다.
김재숙씨는 귀농 당시 한달 평균 수익이 100만원이면 족하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지금은 이보다 20만원이 많은 120만원에 이른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귀농해서 이 정도 수입밖에 얻지 못하나”하고 실망스런 평가를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재숙씨는 현재의 수익도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앞으로는 몇배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는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보람과 수익을 훨씬 높일 수 있는 미래가 앞에 펼쳐져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귀농하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건강까지 덤으로 얻었다. 김재숙씨는 우울증과 알러지를, 남편 김성수씨는 대장질환을 말끔히 고쳤다.
‘기대는 작게, 만족은 크게’라는 신조로 유쾌, 상쾌, 통쾌하게 사는 여장부 농장주와 ‘기꺼이 일꾼 남편이 되어준’ 부부의 귀농 역사를 들어본다.
-원래 귀농에 관심이 많았나.
*나는 원래 시골 생활을 아주 싫어했다. 당연히 귀농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영월로 귀농하게 되었는지.
*나보다 두 살 위로 마산이 고향인 남편(김성수 60세)이 마산서 교정직 공무원 생활을 하다 안양 교도소로 옮아 왔다. 그러다 엉뚱하게 10년전 갑자기 귀농을 준비해야겠다며 영월 교도소로 자원해왔다. 남편은 30년전 영월에 수석을 채취하러 다녀온 이후 이곳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갑작스레 영월로 온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양에서 친정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며 아들 둘을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당시 영월읍에서 자취하던 남편을 가끔 보러는 왔을 뿐 영월, 더욱이 이곳으로 귀농은 생각조차 않았다. 그러다 2012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45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매일같이 부모님을 생각하고 울자 친정 큰 오빠가 “너는 부모님들에게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잊어버리고 김 서방 곁으로 가라”고 강력히 권했다. 아들 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해 영월에 오게 되었다.
-그럼 바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지.
*아니다. 우선 남편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판단,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영월군 중동면 북실길 129-1의 양지바른 언덕에 있는 흙집을 발견했다. 허물어질 정도로 낡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집 가까이 가봤더니 배수로 옆으로 자란 산딸기와 오디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여기에 반해 흙집과 딸린 땅 600평을 먼저 사고 조금 있다 650평을 추가 구입했다.
-어떤 농사를 지었는지.
*첫 해에 마산에 계시는 시어머님이 오미자, 땅콩, 고구마, 감자, 강낭콩, 오디, 도라지, 더덕, 파 씨 등을 보내주셔서 심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게다가 서투른 농사일 후유증으로 관절에 이상이 생겨 한참 고생했다.
-그럼 현재의 다래 농원은 어떻게 시작했나.
*우선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고 판단, 영월농업기술센터에 등록했다. 당시 기술센터는 여섯 농가를 선정, 멘토를 붙여주기로 했으나 나는 7등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선정됐던 여섯 농가 가운데 한 분이 포기하는 바람에 내가 대신 들어가게 됐다. 당시 나의 멘토는 현재 우리 농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다래 전문 ‘샘말 농원’ 곽미옥 언니였다. 언니는 6개월간 나에게 다래에 관한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지금도 언니와는 많은 것을 상의한다.
-다래란 어떤 과일인가.
*한국의 서양 키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종 다래는 키위보다 훨씬 맛도 좋고 영양성분도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키위가 건강 과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토종 다래는 이보다 훨씬 뛰어나다. 키위는 칼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만 먹을 수 있지만 토종 다래는 대추처럼 껍질째 먹을 수 있다. 말하자면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영양 건강 덩어리 과일이라 보면 된다.
꿈꾸는 다래농원에서 제조, 판매하고 있는 다래 가공품.
-다래 농원에서 남편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편은 계속 공무원 생활을 하다 3년전 명예 퇴직한 이후 농장일를 거들고 있다. 다래에 대한 전문성이나 농장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는 남편이 나보다 한참 뒤쳐져 있다. 이런 이유로 내가 농장주고 대표고 남편은 아직까지 일꾼에 불과하다(웃음).
(실제로 농장에 도착했을 때 김재숙씨는 점심 후 설거지를 하느라 2층 살림집에 있었고 기자를 먼저 맞은 이는 남편 김성수씨였다. 간단한 안부를 나누고 질문에 들어가려 하자 남편은 “나보다는 집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시지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농장에 관한한 전문가이자 보스는 부인임을 남편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귀농 자금은 얼마나 들었는지.
*약 6,000만원으로 기억한다. 이 가운데 영월 농협에서 1,050만원을, 남편이 직장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았고 나머지는 우리 스스로 마련했다.
-현재 수익은 어느정도인지.
*처음 귀농할 때 매달 평균 약 100만원만 벌면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전부터는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다래를 나누어주고 남은 것만 판매하고도 수익이 120만원 가량 되었다. 이것만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익이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래 농사를 짓는 노하우를 더 터득하면 소출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대를 거는 것은 생과일로 파는 것외에 가공해 판매, 유통기간을 늘이고 품목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우리는 생과일 외에 분말, 잼, 환 등 가공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특히 우리 부부를 보기 위해 영월에 오곤했던 큰 아들 역시 영월에 반해 이곳 공무원이 되면서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 즉 생과일은 물론이고 다양한 가공품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네이버, 쿠팡 등에 온라인 판매길을 열어주고 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수익이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다래 나무는 몇 주며 재배 면적을 더 늘일 계획이 있는지.
*현재 120주다. 그러나 우리는 재배 숫자를 늘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단위당 생산량을 늘이고 품질을 양호하게 하고 가공품을 다양화하는 방법만 택할 작정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다래 농사의 장단점을 얘기하자면.
*다래 농사는 벼와 보리 등 계절 농사에 비해 연중 일을 해야 한다. 봄에는 퇴비를 듬뿍 주어야 하고 가을에는 수확한다. 겨울에는 다래 나무 가지를 잘라주는가 하면 가공품을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나 소위 ‘허리가 휠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다래 농사는 맛 뿐만아니라 건강에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건강을 되찾게 해준다는 점에서 언제나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
-‘꿈꾸는 다래 농원’의 다래를 자랑한다면.
*우리는 화학 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퇴비는 물론이고 봄마다 수피를 30톤씩 뿌려 땅 힘을 북돋우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심한 알러지로 인해 비염과 재채기를 달고 살았으나 나도 모르게 이런 증상이 없어졌다. 남편은 장이 좋질 않아 특히 변비가 심했지만 이제는 말끔히 나았다. 단순히 섭취하는 다래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의 맑은 공기와 농사로 인한 적당한 운동 때문인지는 모르나 이런 증상들이 말끔히 나아 너무 좋다. 그러나 다래가 난치병에 가장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우리는 본다. 괜히 우리 다래를 PR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다른 농원의 다래 역시 이처럼 건강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리라 본다.
-앞으로 더 꿀 꿈은 어떤 게 있는지.
*다래 칩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건강한 다래를 손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칩을 제조, 판매하려 한다. 칩은 ‘아침이 편안한 우리 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학교 급식용으로도 홍보, 어린이들에게 맛과 건강을 선물하고 싶다.
-현재 우리가 앉아있는 집은 흙집이 아닌데......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 집은 몇 년전 주거와 가공공장 용도로 지은 공간이고 초창기 한동안 우리가 살았던 흙집은 저기 보이는 것(흙벽은 물론이고 외양을 말끔하게 수리하고 약간 떨어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이다. 현재 저 집은 예비 귀농인들이 한동안 살아볼 수 있도록 저가로 임대해주고 있다.
-예비 귀농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 개인적 생각으로는 귀농할 때는 도시에 있는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 갖고 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시에 있는 집은 가급적 그대로 두고 현실적으로 염출할 수 있는 돈만 갖고 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만에 하나 귀농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맞지 않고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하라는 의미다.
-귀농 희망자들이 여러 가지 질문이나 의견을 듣고자 하면 도와줄 수 있는지.
*얼마든지 환영한다. 우리 이메일은 tojong1214@naver.com이다. 일단 이메일로 연락하고 난 뒤 전화로 보다 상세한 의견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농장주 김재숙씨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일꾼’ 김성수씨는 대화에 일체 참견하지 않고 가끔가다 고개만 끄덕일 뿐 시종 경청만 했다. 그러나 두 부부의 눈길에는 인터뷰 내내 미소, 동감, 애정, 신뢰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귀농 생활에 대한 만족과 행복감도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듯했다)
김인규 기자 kik04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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