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한동안 뉴요커들은 후속 테러와 화생방 공격 공포에 떨어야 했다. 시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뉴욕을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는지 망설이곤 했다.
화생방 테러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뉴욕의 한인 마켓 한양마트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방독면 판매에 적극 나선 사실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양마트는 시중에서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는 방독면을 2001년 10월4일부터 판매했다. 한양마트는 방독면이 슈퍼마켓 취급 품목으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생화학 테러에 대비해 방독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한국에서 1차로 1,000개의 방독면을 직수입했다.
이를 개당 35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2,000개를 추가로 주문했다.
후속 테러에 대한 공포가 줄지 않고 이처럼 확산됨에 따라 뉴요커들 가운데는 직장을 버리고 타지로 떠나거나 자녀들만이라도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처럼 뉴욕에서의 후속 테러 위험성이 대두되자 뉴욕을 대표하는 건물이자 자본주의 경제의 상징물인 엠파이어 스태이트 빌딩에 입주해있던 각종 사무실들이 앞다투어 빠져나갔다.
이 바람에 공실률이 급증, 한때 엠파이어 스태이트 빌딩은 매물로 나와 말도 안되는 가격인 7,000만달러에서 호가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엠파이어 빌딩은 자본주의 건물의 상징이므로 후속 테러가 자행된다면 제일 첫 번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추측으로 인해 새로운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후속 테러에 대한 만연한 공포를 잠재운 것은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었다.
그는 “허깨비처럼 부푼 공포에 떨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뉴욕 시민들에게 정상 생활에 복귀할 것을 기회가 날 때마다 호소했다.
그는 수시로 테러 참사 현장을 찾아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는 소방관, 경찰관 등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뉴욕 시민들에게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신념에 찬 태도에 뉴욕 시민들은 점차 안정을 되찾고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이보다 앞서 시장 취임 직후 뉴욕을 환골탈퇴시킨 정치 행정가로 칭송받았다. 그전까지 뉴욕은 범죄의 도시로 낙인찍혀 있었다.
뉴욕 뒷골목은 물론이고 지하철에서는 대낮 운행 중에도 강간 범죄가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뉴욕 사람들은 저녁은 물론이고 낮 시간에도 지하철 타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줄리아니는 지하철에 사복 경찰관들을 대거 투입, 지하철 범죄를 소탕했다. 특히 지하철에 투입된 사복 경찰관들은 평범한 옷 차림으로 민간인처럼 보이지만 가끔 휴대하고 있는 총기 등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조금씩 노출하고 다녔다.
이는 범죄자들이 객차 안 어딘가에는 민간인처럼 보이는 경찰관이 항상 근무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 범죄 발생을 억제할 수 있었다.
이어 도시 곳곳에 경찰 병력을 대거 투입, 역시 길거리 범죄 발생도 대폭 감소시켰다. 이로 인해 그는 ‘뉴욕을 바꾼 시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줄리아니 시장은 시민들로부터 평소 존경을 받아왔기에 후속 테러에 대처하고 있는 그의 언행 하나 하나가 뉴요커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았다.
이같은 줄리아니 시장의 자신감 넘치는 테도를 본 뉴욕 시민들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신뢰와 자신감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뉴욕은 물론 미 전역에서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던 줄리아니는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현재 추한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20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소송을 주도하는가 하면 여배우를 상대로 한 성추행 의혹, 무분별한 상업 활동 등 상식 이하의 언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줄리아니는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뉴욕변호사협회에서 제명됐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축출당했다.
줄리아니의 이같은 몰락은 본인은 물론 한동안 그를 존경해왔던 미국민들 모두에게도 불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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