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三伏) 때면 1 년 중 날씨가 가장 더워지기 때문에 흔히 '삼복더위'라는 말로도 알려져 있다.
요즘 날씨가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워도 너무 덥다.
초복(初伏)은 하지 다음 제3경일, 중복(中伏)은 제4경일, 말복 (末伏)은 입추 후 제1경일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경일(庚日)'은 60갑자 중에서 천간(天干) 에 '경(庚)' 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
복(伏)자는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가을철 금(金)의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의 더운 기운이 강렬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屈伏]는 의미로,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하여 굴복시켰다는 뜻이다. 곧 오행에서 여름은 불[火]에 속하고, 가을은 쇠[金]에 속하는데, “여름 불기운에 가을의 쇠 기운이 세 번 굴복한다.”라는 뜻으로 복종한다는 뜻의 복(伏)자를 써서 삼복이라 하였다.
천간(天干: 십간) 중 경일을 복날로 삼은 까닭은, 경(庚)은 속성상 약하고 오행으로 볼 때 금(金)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금은 사계절 중 가을이기 때문에 금의 기운이 내장되어 있는 경일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라는 뜻이다.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報恩) 처자(處子)가 울겠다.’라는 말이 있는데, 대추농사는 벼농사와는 달라서 여름철에 비가 많이 내리면 발육이 좋지 않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버려 수확이 준다. 특히 삼복 때 내리는 비는 작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해서 꺼렸다. 이처럼 날씨가 변수로 작용해서 경제작물로 기대를 걸었던 대추가 흉작이 들면, 그만큼 농가 수익이 줄어들어 혼인을 앞둔 처녀들에게는 혼사 밑천이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초복날 소나기는 한 고방의 구슬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초복 무렵은 벼의 성장이 진행되기 시작하는 계절이므로 비가 적당하게 내려야 벼가 충분히 자라는 데 좋다.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서면서 대지와 공기는 점차 뜨거워지고 이러한 기운은 논밭 작물과 과일이 성장하는데 주요한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런데 일년 중에서 가장 무더운 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이 되면, 강한 햇빛이 너무 지나쳐서 대지의 수분이 증발하여 논이 메마르기 쉽다. 따라서 초복 때가 되면 심한 가뭄이 들기도 한다. 이런 때에 잠깐 내리는 소나기라도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고, 더욱이 벼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므로 농부들에게는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삼복 기간에는 더위가 심하기 때문에 몸의 기운이 쉽게 약해지고, 따라서 입술에 붙은 가벼운 밥알도 무겁게 느껴질 만큼 사소한 일조차도 힘들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피곤해진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잠시 더위를 잊고 하루를 청유(淸遊)하거나 탁족(濯足)을 하고, 더위로 인하여 손상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보신(補身)음식을 찾게 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의미에서 높은 관리들에게 쇠고기와 얼음을 하사하였다.
복달임은 주로 허해진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보양식을 먹음으로써 더위를 물리치는데, 임금님은 물론 사대부나 양반가에서는 여름에‘민어 맑은탕’으로 복달임을 했다. 그리고 일반 서민들은 귀한 쇠고기 대신 개고기를 끓여 먹었으며, 복날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이나 수박, 참외를 먹었다. 1800년대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이 1843년에 편찬한『세시풍요歲時風謠』에 복날의 풍경을 이렇게 읊었다.
“참외 쟁반에다가 맑은 얼음을 수정같이 쪼개 놓으니, 냉연한 한 기운이 삼복을 제어한다.
푸줏간에는 염소와 양 잡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라고 했다.
2027년 2월 7일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거나 도살, 유통, 판매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된다.
시원한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거나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물리쳤는데, 이를 복달임 또는 복놀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요즘은 개고기 대신 염소탕집이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삼복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피서의 술자리를 하삭음(河朔飮)이라 하는데, 이는 후한말에 유송(劉松)이 원소(袁紹)의 아들들과 하삭(河朔)에서 삼복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술을 마신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