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만 예쁘게 피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을 낭화(浪花)라고 한다.
신영애 시인의 ‘헛꽃’에 대한 해설을 차용해 본다.
‘산수국은 자잘한 참꽃 수백송이가 모여 한 송이가 된다. 꽃이 잘아 곤충을 유인하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가장자리에 눈에 띄는 헛꽃을 피운다. ‘헛꽃’은 말 그대로 ‘헛것’이다. 긴 겨울을 보내며 얼고 녹으면 잎맥만 남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 낭화(浪花)이기 때문이다. 일생 참꽃을 위해 헛꽃으로 살다 간다. “참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그러나 낭화(浪花) 중에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난(蘭)이 아닌가 한다. 예쁘게 꽃은 피워도 난실(蘭實) 즉 그 열매는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절에도 스님들이 즐기는 낭화(浪花)라고 하는 올이 굵고 넓적하게 썬 칼국수가 있다.
국수와 칼국수를 승소(僧笑)와 낭화(浪花)라고 하는 스님들의 깊은 뜻을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언 듯 짐작이 갈 것 같다.
낭화(浪花)는 수제비의 일종으로 밀가루를 반죽하여 보통 국수보다 풀잎같이 얇게 밀어 귀가 나게 썰어 삶아서 건져내어 장국에 말고 고명을 얹은 음식이다.
절에서 밀가루 반죽을 목판 위에서 밀대로 밀어서 펼 때 생기는 굴곡이 마치 바다에 이는 파도에 연상하면서 부쳐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칼국수가 끓으며 물결이 부딪쳐 생기는 물방울과 거품이 마치 한 송이 예쁜 꽃 같다 하여 낭화(浪花)라고 했다.
절에서 낭화를 할 때는 흔히 버섯을 들기름이나 콩기름에 볶아서 삶은 국물에 칼국수를 끓이고, 버섯은 건져서 채 썰어 고명으로 얹으며 애호박을 채 썰어 볶아서 고명으로 함께 얹기도 한다. 버섯은 대개가 송이나 표고버섯이다.
선방(禪房)에서는 이 낭화(浪花)가 유일한 별식이라 할 음식이다.
특별한 별식(別食)이 없는 절에서는 이 낭화(浪花)나 승소(僧笑)가 유일한 별식이었다.
맛에 집착하지 않고 소식(小食)에 익숙한 스님들도 칼국수나 국수는 과식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별미인지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해서 승소(僧笑)라는 별칭으로 불리어 지게 된 것이다. 국수는 떡과 두부와 함께 ‘삼소(三笑)’라고도 하였다.
1800년대 말 저자미상의 요리책『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밀가루를 반죽하여 풀잎 같이 밀어서 탕에 넣는 고명 같이 귀나게 썰어 삶아 건져서 장국에 만다.
쇠고기는 다지고, 표고·석이버섯·파를 모두 채 쳐서, 고기에 합하여 양념하여 볶아 위에 얹고, 달걀 채와 후춧가루를 뿌린다.’라고 나온다.
조선 중종 22년(1527)에 최세진(崔世珍: 1468~1542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박탁(餺飥)’이란 말을 ‘나화 박(餺)’, ‘나화 탁(飥)’이라 하였는데, 요즘 한자 사전은 ‘수제비 박(餺)’, ‘수제비 탁(飥)’이라고 하니 나화가 곧 수제비를 뜻한다.
나화가 낭화로 음운변화가 된 것이 아닌가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국수는 원래 반죽을 손으로 눌러서 풀잎처럼 만들었다는 수인병(手引餠)이었고, 그 후에 반죽을 누르면서 늘여서 만드는 박탁(餺飥)이 되었다가 칼로 얇게 밀어서 써는 칼국수가 된 것이다.
현재의 칼국수 조리법은 1934년 방신영(方信榮, 1890년∼1977)의 조카 이석만(李奭萬)이 펴낸『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에서 처음 볼 수 있는데 '밀가루에 소금을 조금 뿌려 물에 반죽하여 오랫동안 주무르고 쳐서 반죽을 극히 되게 한 뒤에 방망이로 얇게 밀어서 잘게 썰어서 끓는 물에 삶아 내어 냉수에 헹구어서 물을 다 빼서 버리고 그릇에 담는다. 그런 뒤에 맑은장국을 끓여서 붓고 국수장국에 얹는 고명을 얹는다' 고 하였다. 이 책에서의 칼국수는 오늘날과 같이 밀가루를 쓰고 있으나 제물국수 형태가 아니라 씻김국수형태인 국수를 찬물에 헹구어 국수장국을 만들어 붓는 것이 특이하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