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전후 20-중범죄 한인 청년 추방 취소 이끌어낸 '기적'

김인규 기자 승인 2021.08.15 15:35 | 최종 수정 2021.08.15 15:58 의견 0

소셜 번호 전산화에 따라 범죄 사실이 드러나 추방이라는 충격을 받은 첫 번째 사례는 20대 초반의 A군이었다.

A군은 9.11 발생 몇 년 전 플러싱 노던블러바드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다 같은 한인 여자 친구를 희롱하던 중국계 갱단과 시비가 붙었다. 그러나 숫적으로 한참 불리한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은 물론이고 여자 친구까지 상당히 험한 일을 당할 위기에 몰리게 됐다.

어쩔 수 없이 A군은 여자 친구와 함께 도주, 자신의 차를 몰고 사건 현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갱단은 A군의 차를 가로막았고 A군은 이들을 피해가며 운전하려다 이 가운데 한 명을 차로 치게 되었다.

A군과 여자 친구는 갱단원이 땅에 넘어진 것은 알았지만 가벼운 부상 정도만 입었을 것으로 짐작, 그대로 차를 몰고 달아났다.

그러나 참으로 불운하게도 그 갱단원은 의외로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있다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A군은 얼마 뒤 수사에 나선 경찰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으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약 3년간의 형무소 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A군은 과거를 잊고 못다 마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충격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같았으면 A군은 실형을 살았기 때문에 비록 전과 기록은 갖고 있지만 별다른 장애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민 당국은 전산화한 이민자 및 범죄자 리스트를 점검하다 중형을 선고받았던 비시민권자인 A군을 발견하고 추방 대상자로 지목했다.

예년같았으면 이민 당국이 모르고 넘어갔거나 추방까지 연결시키지 않았을 사안임에도 9.11 이후 작성된 범죄자 전산화 자료로 인해 A군은 추방 대상자로 찍힌 것이었다.

출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A군은 한국으로 추방된다는 통보를 받게 됐다.

A군은 물론 A군 부모들에게도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A군은 한국말도 잘하지 못할 뿐아니라 한국에는 친구나 친척도 없어 만약 추방되면 한국에서 외톨이로 지낼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함께 한국으로 나가서 그를 보살필 상황도 아니었다.

이같은 딱한 사정은 뉴욕 한국일보의 취재망에 포착됐다. 당시까지 A군은 물론이고 A군 부모조차 당황한 상태에서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뉴욕 한국일보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을 때였다.

뉴욕 한국일보 이정은 기자가 이같은 딱한 사정을 전해듣고 나에게 보고를 해왔다. 우리는 A군 케이스를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그는 비록 과실치사죄를 지었지만 이는 우연히 일으킨 단순 실수였고 사건 전에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

뉴욕 한국일보는 A군의 추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하고 가장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우선 A군과 A군 부모들을 만나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상세히 취재하고 한국으로의 추방은 A군 뿐 아니라 모든 가족을 나락에 떨어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기사로 내보냈다.

동시에 뉴욕 한인들을 대상으로 A군이 가족과 함께 뉴욕에서 살아가게 하자는 탄원 서명에 들어갔다.

뉴욕 한국일보 관련 기사를 본 한인들은 앞다투어 ’A군 추방 반대 캠페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상황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단 한가지 사안, 즉 한인 중 누군가가 단순 과실이나 서류미비 등으로 추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도울 수 있으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도와주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A군은 당시 청소년을 갓 벗어났기에 뉴욕 한인들은 그가 자신들의 아들, 조카, 동생처럼 여겨져 탄원 서명에 너나없이 동참했다.

미국 이민당국은 각종 기관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조직으로 유명하다. 이는 자신들의 업무가 소수 민족들의 체류 신분 문제와 관계가 있고 미국민들의 일자리를 침해하는 경우와 연결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뉴욕 한국일보가 진행하고 있는 A군에 대한 추방 철회 서명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자 나름대로 부담을 느낀 듯했다.

미국은 법과 원칙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지만 국민의 여론에도 눈과 귀를 열고 이를 수렴하는 남다른 장점도 갖고 있다.

서명자 숫자가 한창 늘어나던 어느날 미 이민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A군은 중죄를 저질렀지만 뉴욕 한인사회가 한마음이 되어 그와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을 고려, 그의 추방 결정을 취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런 통보를 들었을 땐 솔직히 쉽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의지를 갖고 벌인 일이지만 이렇게 빨리 이민국이 예외적으로 추방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 있다 A군 부모들도 이민국으로부터 추방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이는 순전히 뉴욕 한국일보의 도움 덕분이라는 감사 전화를 해옴에 따라 확실한 결론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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