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9.11 테러 이전만 해도 뉴욕 플러싱 지역 한인사회의 정치적 힘은 한국 커뮤니티가 다소 앞서거나 중국 커뮤니티와 비등했다.
당시 민주당 시의원 예비선거에 나온 한인 테렌스 박 후보는 대만계 존 리우 후보를 연륜과 경험, 선거 자금 등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9월11일 오전 6시부터 진행되던 투표가 테러 사태로 중단되는 바람에 당시까지 앞서가던 테렌스 박은 추후 열린 투표에서 낙선했다. 대신 존 리우가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이후 존 리우는 중국인들이 급증하는데 힘입어 3선에 성공했고 뉴욕시의 넘버 3인 감사원장,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이후 한인사회는 존 리우의 정치망 속에 갇히고 말았다. 존 리우는 각종 한인사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얼굴을 내미는가 하면 ‘한인들의 친구’라는 말로 한인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닥아왔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쇼맨쉽에 가까웠을 뿐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은 은근히 견제했다는 평을 듣는다. 플러싱 지역 선거에 유력 한인 후보가 출마하자 이념적으로 논란이 많은 측근 한인을 내세워 한인사회내에 갈등을 일으키고 표가 갈리도록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뉴욕 한인사회가 이처럼 존 리우의 정치적 식민지로 전락한데는 전적으로 한인들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미 주류 정치인들이나, 타 커뮤니티 인사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자신과 중국계 커뮤니티의 이익이 무엇보다 우선인 존 리우가 ‘한인들의 친구’라는 립 서비스를 넘어선 정치적 영토를 한인사회에 선물해 줄 이유는 없다는 게 상식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위 뉴욕 한인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반성과 노선 수정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뉴욕 한인사회는 존 리우의 정치망 속에 갇힌 것은 물론이고 또다른 세력을 활용, 독자적으로 정치력을 신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대목이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 당선자의 2013년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빚어졌다. 당시 한인사회는 철저히 중국계 정치인 등 중국 커뮤니티의 도우미 역할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뉴욕시 109대 시장이 되는 빌 드블라지오 당선자는 23년만에 민주당 당적을 가진 시장으로 2014년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드블라지오는 민주당 소속에다 친서민 친소수계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기에 한인사회도 그와 소통하고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헛꿈에 불과했다.
이는 드블라지오의 선거본부에 한인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인사회는 당시 캠페인 도중 드블라지오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를 열흘여 앞두고 중국계인 그레이스 맹 연방 하원의원이 한중커뮤니티를 위해 비공개 간담회를 주선했을 때 중국계는 약 60명이 참석했으나 한인들은 10여명에 불과했다. 이는 드블라지오에게 한인사회는 중국계 커뮤니티에 종속돼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으로 판단됐다.
결국 한인사회가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중국 커뮤니티에 끌려다녔기에 한인사회가 자초한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한인사회는 드블라지오 당선자가 2009년 뉴욕시 공익옹호관에 출마했을 때 좋은 인연을 맺을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해 9월 뉴욕 추석대잔치에 드블라지오 후보가 직접 방문,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한인사회는 감사원장에 출마한 존 리우를 미는데만 몰두했을 뿐 그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잘못은 2014년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도 이어졌다. 존 리우가 뉴욕시장에 출마하자 한인사회의 선거 후원금과 지원 인력은 거의 모두 존 리우 캠프에 쏟아졌다.
2013년 여름 중위권의 드블라지오가 선두로 부상했지만 한인사회는 그를 무시했고 드블라지오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 단독 후보가 되고도 ‘소 닭보듯’ 했다.
이를 두고 뜻있는 한인들은 한인사회가 이제부터라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차세대 한인 정치인들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오로지 한인 정치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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