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2일 열리는 미국 지역선거에 뉴욕 시장 출마자는 400명을 훨씬 넘기고 있다. 2013년 뉴욕시장 선거에서 ‘무명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됐던 빌 드블라시오 현 시장이 3연임 제한 규정에 걸려 출마하지 못함에 따라 군소 후보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뉴욕시장 선거는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한때 선두를 달리던 대만계 후보 앤드루 양(45)이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계 뉴욕 시장으로 탄생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또한 한인 후보 아트 장이 선전에 이어 뉴욕시장 당선이라는 의외의 대박을 거둘지 여부도 비록 희미하게 나마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앤드루 양은 6월22일 뉴욕 시장 후보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현장 투표 조기 결과 4위를 차지하자 패배를 인정하고 경선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앤드루 양은 한때 뉴욕 시장직에 도전했다 실패한 존 리우 현 뉴욕주 상원의원처럼 대만계로 뉴욕시 유권자 842명을 대상으로 2021년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8%의 지지를 받았다. 2위인 에릭 애덤스 브루클린보로장(17%), 3위 스콧 스트링거 뉴욕시감사원장(13%)보다 10% 포인트 이상 앞선 적이 있었다.
앤드루 양은 지난번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경선에 뛰어들었다 중도 하차했지만 이를 계기로 지명도를 얻었다.
그는 경선 당시 모든 미국인에게 매달 1,000달러씩 지급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모든 이를 위한 보험’과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라는 캠페인 구호로 인기를 끌어 초반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히람 펑과 팻시 밍크에 이은 세번째 동양인 대통령 후보였으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로는 첫번째 아시안 후보이기도 했다.
그는 뉴욕주 스키넥터디에서 대만계 미국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어머니는 브라운대에서 통계학석사 학위를 받고 화가가 되었다.
앤드루 양은 컬럼비아대에서 법무 박사를 받고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뒤 데이비스 폴크 & 워드웰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주로 벤처 기업에 취업하거나 스카웃 받아 근무, 때로는 성공을 때로는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마틴 포드의 저서 ‘로봇의 등장: 기술과 최저고용 미래의 위협’을 읽은 후, 최저임금의 지지자가 되었다.
뉴욕에서 아내 애블린 및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미국 개혁교회 신자이나, 종교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 후 주변으로부터 인종차별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이때 자기보다 약한 대상 등을 보면서 자존감을 유지하곤 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이같은 어릴 때의 아픈 기억이 대선 출마, 뉴욕 시장 도전 등 정치적인 길에 들어선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한인 아트 장(한국명 장철희)씨는 2020년 12월 중순, 2021년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 뉴욕 한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뉴욕시 선거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아트 장씨가 2021년 치러지는 뉴욕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후보 등록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장씨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티핑 포인트 파트너스’(Tipping Point Partners)를 창업했으며 지난 2009~2017년 뉴욕시 선거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뉴욕시선관위 산하 유권자지원위원회장 등을 역임했고, 온라인 선거 정보관리 프로그램인 ‘NYC Votes‘를 개발했다.
장씨는 “뉴욕시는 전 세계가 원하는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도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진정한 리더를 필요로 한다. 나의 경험과 비전으로 뉴요커들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인 이민자의 아들로서 지난 35년 간 뉴욕에 거주하면서 인종차별 등의 아픔을 이겨내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며 “이제는 인종과 성별 등의 차별을 받지 않고 서로를 더 잘 포용하고 이해하는 뉴욕시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주요 공약은 일자리 확대와 대중교통 시설 지원 확충, 공공 보육혜택과 양질의 공공 교육 확대, 서민 아파트 확대, 예술 문화 사업 지원 등이다.
아트 장은 흑인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뉴욕 시장 출마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JP모건 체이스의 국제법률부서 매니징 디렉터로, 잘 나가던 금융인이었지만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충격을 받고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한창이던 2020년 여름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한인사회나 한인 2세인 자신이 이 정도나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덕이라고 판단, “흑인 사회를 돕고 인종 간 평등을 이루기 위해” 뉴욕 시장직 도전에 나섰다고 밝힌 것이다.
흑인 차별 분위기와 정책이 극성을 부리던 1963년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출생, 자라나면서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했다.
아트 장 역시 앤드루 양처럼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 차별에 대한 반감 및 개혁 의지가 정치로 뛰어들게 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아트 장은 JP모건에서 일하기 전, 뉴욕을 기반으로 한 유명 벤처투자자였다. 뉴욕시의 지원을 받는 벤처그룹에 직접 투자하거나, 투자자를 연결해줬다.
20대 때에는 뉴욕시에서 근무했고, MBA 학위를 따고 투자은행에서 일하다 독립, 2000년대 초반의 닷컴 열풍 때 큰 성공을 거뒀다.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도 장씨가 뉴욕 정관계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췄다고 판단, 그의 출마 선언을 보도했다. 그는 뉴욕 정가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뉴욕시 선거자금감독위원으로 9년간 재직했다. 아시아계로는 처음이었다.
한편 한동안 가장 강력한 뉴욕 시장 후보였던 한국계 코리 존슨(38) 뉴욕시의장은 뉴욕시장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존슨 시의장은 2020년 9월24일 성명 통해 “결정하기 어려웠지만 출마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며 “이 어려운 시기에 뉴욕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고, 뉴욕시장 선거 출마는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존슨 시의장은 정신건강 문제로 출마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우울증과 불안증세에 시달렸다. 우울증과 함께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2020년 8월 중순께 어머니로부터 “아직 젊고 정치적으로 미래가 있으니 지금은 우선 건강을 챙기라”는 조언을 들은 뒤 불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2013년 한인 건축가 이해진씨도 뉴욕 시장 도전을 천명했지만 추천서명서 미달로 후보자격이 취소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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