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전후 28-노무현 대통령의 뉴욕 방문

김인규 기자 승인 2021.08.16 19:12 | 최종 수정 2021.08.16 19:46 의견 0

2003년 뉴욕 한인사회에서 가장 주목을 끈 사건은 바로 이라크전 참전 용사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옐로 리본 달기 캠페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당시 뉴욕 한인사회에서 이에 못지않게 큰 관심을 모은 사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뉴욕 방문이었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대통령은 꽤 많았다. 그러나 미국을 방문한 역대 한국 대통령들 가운데 뉴욕을 찾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한국 대통령의 미국 방문지는 백악관이나 의회가 있는 워싱턴이 대부분이었고 미주 한인들과 만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는 LA가 대표적이었다. 뚜렷한 미국 행정기구가 없는 뉴욕은 한국 대통령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5월11일 오전(한국 시간 12일 오후. 이하 한국시간) 뉴욕에 도착한 뒤 동포간담회와 수행 경제인 만찬을 시작으로 방미 일정에 들어갔다.

방문 일정으로 노 대통령은 뉴욕 증권거래소를 찾아 증권거래 개시를 알리는 오프닝 벨을 눌렀다.

이어 루빈 미국 전 재무장관 등 뉴욕 금융계 주요 인사들과 오찬을 하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노 대통령은 14일 미 상공회의소와 한미 재계회의가 공동주최하는 오찬에서 한미 경제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링컨 기념관도 관람했다.

방미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15일 정상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스노 재무장관,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도 만났다.

정상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윤영관 외교부 장관과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 측에서 라이스 안보보좌관과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당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을 수행하는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상대로 뉴욕 한국일보의 위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뉴욕 한국일보는 뉴욕에서 가장 연조가 오래된 신문일 뿐아니라 부수 및 영향력 면에서 가장 우뚝했었다. 당시 상대지와의 경쟁에서도 솔직히 한참 우위에 있었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뉴욕을 방문하는 정치, 경제, 행정, 문화 등 각 분야 인사들은 체류 초기 얼마동안은 뉴욕 한국일보의 위상이나 한인사회에서 점하는 영향력 등에 대해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국에서 한국일보는 한때 4대 일간지라던 예전의 위상에서 한참 추락해 존재가 뚜렷하지 못할 때였다. 이런 이유로 뉴욕 한국일보는 상대지에 한참 뒤처지는 것으로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을 때였다.

언론사 기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바로 자존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다른 직업군에 비해 수입 면에서 앞서지 못해 생활이 풍성하지 않더라도 ‘없어도 있는 척’하고, 기사나 취재 대상 혹은 어떤 현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도 ‘몰라도 아는 척’하고, 때로는 낙종을 해 의기소침해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하는, 즉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에 가장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에서 뉴욕을 방문한 주요 인사들이 대화 중에 은연 중 뉴욕 한국일보를 서울 한국일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 저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았다.

이런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뉴욕 방문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물론 수행하는 각계 한국 VIP들에게 뉴욕 한국일보의 진면목이랄까 위상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방법을 찾다가 뉴욕 한국일보 발행 및 배포 시기를 대폭 앞당겨 뉴욕을 방문한 노 대통령 일행에게 바로 전달하기로 비밀 작전을 세웠다.

당시 뉴욕 한국일보나 상대지는 하루 종일 취재, 작성한 기사를 그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인쇄해 다음날 오전 안에 배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상태대로 발행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뉴욕 도착 기사가 실린 뉴욕 한국일보 신문은 방문 이틀째 아침에야 인쇄, 대통령 일행들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상대지 역시 같은 시간대에 신문을 인쇄, 뉴욕 한국일보와 함께 노 대통령을 비롯한 방문단에게 전달될 것이었다.

이같은 방식으로는 뉴욕 한국일보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없다고 보았기에 기사 마감 및 인쇄를 대폭 앞당겨 대통령 일행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뉴욕 도착 하루 전 편집국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나의 계획을 설명했다. 방문 당일 뉴욕 한국일보 지면은 1면 톱기사 자리만 남기고 사전에 제작해놓고 노 대통령이 뉴욕 존 에프 케네디 도착하면 사진과 함께 기사를 게재, 바로 인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취재 및 사진 기자, 취재 차량 ‘운전 기자’(운전 기사가 아닌 당일 임시 운전해야 할 기자. 서울과 달리 회사 소속 취재 차량이 없으므로 모든 기자들은 자신의 차를 운전해 다니며 취재를 해야 했다)를 특별 선정했다. 만약 취재 및 사진 기자가 취재를 마친 뒤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복귀하다 사고라도 나게 되면 낭패를 보게 되므로 ‘운전 기자’까지 결정해놓은 것이었다.

이들은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가서 대통령 내외가 기내 밖을 나서며 손을 흔드는 장면만 사진 위주 취재를 하고 바로 회사로 돌아오게 했다. 이같은 계획은 편집국 기자들만 알게 하고 외부에는 절대 비밀로 하고 진행했다.

D데이 오전, 이같은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됐다. 공항 취재 기자들이 회사로 복귀, 사진 및 현장 분위기 기사를 넘기자 마자 이를 위해 비워두었던 지면 공간이 채워졌다. 이미 인쇄가 끝난 B,C.D 섹션에 이어 A섹션 톱 기사가 채워지면서 뉴욕 한국일보 전체 지면이 완성된 것이었다.

이를 회사 인쇄공장에 넘겨 바로 신문을 찍기 시작했다. 불과 몇분 뒤 뉴욕 한국일보 전체 지면 120페이지가 인쇄돼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전용기 문을 열고 나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진과 기사가 실린 뉴욕 한국일보는 바로 취재 기자들에 의해 뉴욕 동포 간담회가 열리는 호텔로 향했다.

뉴욕 한국일보가 호텔에 도착, 행사장 입구와 엘리베이터 앞에 쌓아놓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포 간담회가 끝이 났다. 호텔 행사장 문이 열리고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먼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앞에 놓여있던 뉴욕 한국일보를 발견하고 직접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당신의 뉴욕 공항 도착 순간 모습이 1면 톱 기사와 사진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대통령은 상당히 놀라했다고 당시 호텔에 갔던 취재 기자들은 전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은 “우리가 온 것이 벌써 신문에 나왔구먼”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뉴욕 한국일보를 집어들자 나머지 수행원들도 바로 뒤를 이었고 모두들 발빠른 뉴욕 한국일보의 보도 행태에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상대지의 워싱턴 특파원은 “우리 신문은 언제 배달되느냐”며 무척 당황해했다는 말를 전해 들었다.

상대지는 평소때처럼 대통령의 뉴욕 방문 다음날 신문을 발행했다.

후일 당시 대통령의 수행단에 포함됐던 몇몇 인사들은 뉴욕 한국일보의 이같은 발빠른 대처에 “전성기 시절 서울 한국일보의 저력이 아직도 뉴욕 등 미주 지역에서 남아있음을 실감했다”고 전해오기도 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 내외의 뉴욕 방문은 뉴욕 한인사회에 예상치 못했던 현상을 몰아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뉴욕을 포함해 미국 전역의 한인 커뮤니티는 대체로 이념적으로는 보수, 우익 성향이 강하다. 흔히 한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보수, 우익과 진보, 좌파 성향으로 나눠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미주 한인들은 한국의 진보, 좌파 성향 지역 출신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보수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는 자신들이 한국을 떠나올 당시와 현재의 좌파, 진보가 차이가 나는데다 몇십년 전의 좌파, 진보 성향은 현재의 좌파, 진보보다는 보수쪽으로 편입될 요소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보수화하는 경향을 띄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진보, 좌파의 대명사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적인 뉴욕 한인사회에서 환영받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통령 부부가 워싱턴이나 LA가 아닌 뉴욕을 찾았다는 사실과 동포 간담회를 통해, 또한 한인 언론을 통해 한인사회에 덕담을 건넨 뒤에는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뉴욕 한인들의 지지도는 많아야 20~30%였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여론조사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고 평소 한인들의 대화나 평가 등을 통해 이같은 수치를 추정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뉴욕 방문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뉴욕 한인들의 평가는 급격히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아마도 50% 이상으로 지지도가 올라갔을 것으로 판단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뉴욕 방문 사실은 대통령의 존재, 대통령의 대민 활동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웅변으로 알려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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