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8일 열린 뉴저지주 에디슨시 시장 선거에서 준 최(당시 34세. 한국명 최준희)가 당선, 미 본토 첫 한인 시장이 됐다.
최 당선자는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이 도시의 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초엔 낙승을 예상했으나 막상 선관위 전자 투표 결과, 최 후보는 총 1만2,828표로, 1만2,521표를 획득한 무소속 빌 스테파니 후보를 307표 차이로 누르고 힘겹게 승리했다.
그의 임기는 2006년 1월부터 4년간이었다.
준 최는 에디슨시의 명문 JP스티븐스 고교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컬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회계법인인 언스트영의 워싱턴 사무소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빌 브래들리(뉴저지 주) 전 상원의원 진영에 합류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1971년 서울서 태어나 3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다. 최상영(65ㆍ육사 17기)씨와 홍정자(62)씨는 20여년 간 세탁소를 운영하며 아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뒷바라지했다.
2004년 하와이에서 한인 2세인 해리 김씨가 시장에 재선됐지만 미국 본토에서 한인 출신 직선 시장의 탄생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이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 시에서 시장을 한 적이 있지만 직선이 아닌 순번제였다.
에디슨시는 뉴저지주에서 5번째로 큰 도시로 백인 60%, 아시아계 35%로 구성돼있으며 한국인은 약 3,000명이 살고 있었다. 연간 예산은 1억 달러이며 공무원은 약 1,700명이었다.
당초 타운 이름은 래리턴 타운십이었으나 생전 발명왕 토마스 알바 에디슨이 살았던 점을 자랑하기 위해 1954년 주민 투표를 거쳐 에디슨으로 바꿨다.
준 최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우주공학을 전공했으나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판단, 진로를 바꾸었다.
이후 연방정부 예산관리국 조사관, 뉴저지주 학업성취도 측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당초 뉴저지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다 에디슨 시장 선거로 방향을 틀었다.
준 최가 에디슨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본선보다는 2005년 6월 열린 민주당 예비선거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이었다. 에디슨시는 민주당의 텃밭이므로 민주당 본선 후보로 결정되는 것이 바로 당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당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준 최의 상대는 현직 시장이던 조지 스파도르. 그는 시장직을 12년간 지켜오며 에디슨을 스파도르 공화국으로 만든 상태였다.
에디슨시의 정치 분석가는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스파도르의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준 최는 예상을 깨고 현직 시장 스파도르 후보를 1,028표 차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준 최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의외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 공약 및 전략,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2개월 앞서 한 라디오 방송이 인종차별 발언을 함에 따라 빚어진 역풍이 준 최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예비선거가 한창 열기를 더하던 2005년 4월 뉴저지주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인 ‘저지 가이스’의 백인 진행자가 생방송에서 “아시아 소수인종이 미국 선거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미국인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한국계 준 최를 겨냥한 말이었다. 진행자가 곧 사과에 나서 인종차별적 발언 파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당시 선거 상황을 연일 점검하고 있던 뉴욕 한국일보가 이같은 사실을 바로 파악했다.
뉴욕 한국일보는 ‘저지 가이스’의 인종 차별 발언을 집중 보도, 비판하며 이슈화했다. 또한 이 문제를 가급적 장기적으로 끌고 가야 준 최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 가급적 다양한 형태의 관련 기사를 연일 게재했다.
특히 에디슨시의 여론 지도층을 상대로 인종 차별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복합적 의도가 내포된 취재를 계속했다. 비록 소수계 언론사의 질문 취재지만 인종차별 발언을 드러내놓고 옹호하거나 인정할 인사는 없었다.
뉴욕 한국일보가 이같은 취재를 계속하자 원래 선거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한인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투표권을 가진 한인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이들은 세탁소 등 대민 접촉이 많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기에 타민족 고객을 상대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준 최도 인종 차별 발언을 이슈화하고 현직 스파도르 시장과 그를 둘러싼 에디슨시 민주당 기득권 세력들을 인종주의자로 몰아붙였다. 그 결과 전국의 아시아계 인권 활동가들이 에디슨 시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뉴욕 타임스, 유에스에이 투데이 같은 유력 일간지도 이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중부 뉴저지 유력 일간지 ‘스타레저’도 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미디어의 관심이 쏠리자 준 최는 에디슨시 집권 세력들의 부패와 무능을 조목조목 따지며 선거에 관심이 적었던 무 지지층 유권자들을 선거판으로 끌어들였다.
한인 다음으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행동한 소수계는 의외로 인도인들이었다. 인도계가 왜 이렇게 발빠르게 스파도르를 등지고 준 최에게 닥아선지는 아직도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한인과 같은 소수계다보니 인종 차별 발언에 분노, 준 최 지지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인도계에 이어 중국계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백인들의 표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백인 유권자들은 여전히 스파도르 당시 현역 시장을 지지했지만 백인 가운데 상당수는 준 최 쪽으로 돌아섰다.
결국 준 최가 승리한 것이다. 예비선거에서의 예상외 승리가 에디슨 시장 선거 본선 승리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은 흔히 한인을 비롯한 소수계는 미국 사회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백인들 중에는 피부색, 출신국, 빈부의 정도를 뛰어넘는 언행으로 인류 보편적 양심을 지키는 이도 많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준 최의 당선은 이같은 백인들의 표가 상당수 들어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 한국인은 우리보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하위에 있다고 보는 다문화 외국인들을 제대로 인간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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