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미국 주, 월간지에 남아있는 6.25의 상흔

김인규 기자 승인 2024.08.21 14:40 의견 0

미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앤틱 쇼가 열립니다.

종합적인 품목을 취급하는, 말하자면 뷔페 식당처럼 잡다한 메뉴가 등장하는 앤틱 쇼가 있는가 하면 그릇, 도자기, 린넨, 초창기 문명기기 등 세분화한 전문 품목만 모아서 열리는 쇼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종합 앤틱 쇼를 가장 좋아합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영사기 등 소위 ‘시커먼’ 종류의 앤틱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으니까요. 단일 품목 쇼로는 초창기 문명기기전을 선호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서적 및 우표 전문 쇼도 매력적으로 닥아옵니다.

<서적 우표 앤티크 쇼는 일년에 겨우 한 두차례만 열려>

서적 및 우표 전문 쇼는 그러나 일년에 겨우 한 두차례 밖에 열리지 않아 깜빡 잘못하면 놓치기가 쉽습니다. 더욱이 이 쇼는 소수의 매니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최측은 대중적인 홍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홍보를 하더라도 지역 언론에 아주 조그맣게 한번 밖에 광고를 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이런 쇼를 놓치지 않는 방법은 딱 한가집니다. 가급적 많은 앤틱 샵에 들러 서적 및 우표 쇼가 언제 열리는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하면 혹 알게 될 경우 연락해달라고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남기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서적 앤틱 쇼에 두어 번 정도 방문해 연락처를 남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꼭 소식을 알려 옵니다. 물건을 파는 부스 주인이나 앤틱 쇼 주최측은 단순히 구경삼아 와 매장만 어지럽히는 다수보다는 소수지만 꼭 물건을 사려는 특정 매니아층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뉴욕에서 시카고로 이사한 뒤 앤틱과 관련돼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가까운 샵에 들러 서적 우표 쇼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앤틱 쇼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저희가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 군데 괜찮은 앤틱 샵을 발견했습니다.

도시에 있는 앤틱 샵치고는 규모도 큰 편인데다 취급하는 종류도 다양하고 값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가끔 드나들며 안면을 익혔습니다. 한참 동안은 관련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연말에 한 호텔에서 서적 및 우표 전문 쇼가 열린다는 정보를 저에게 전해 줍디다.

<앤틱 쇼에서 한국전 관련 기사 게재한 잡지 발견>

전날인 금요일에 눈이 억수로 내린데다 토요일 오전에도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마음은 설레기만 했습니다. 앤틱 쇼가 열리는 호텔은 시카고 외곽의 경비행기 공항 근처여서 찾기도 쉬웠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갔지만 호텔 행사장안은 이미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 관련 서적이나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이런 쇼에서는 하루 종일 죽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표든 서적이든 중국, 일본 것들은 따로 분류돼 있어 찾기가 쉽지만 한국은 독립적으로 분류가 돼있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섞여있는 더미나 혹 중국이나 일본 분류 속에 있지나 않은지 꼼꼼이 찾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끈질긴 자에게 복이 있나니’

거의 한나절을 뒤지다 1952년 12월1일자 'LIFE'와 ‘House Beautiful’ 1955년 12월호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영문 주간지 라이프지 표지에는 ‘아이크(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애칭)가 '한국에서 보지 못할 게릴라전’(THE KOREA IKE WON'T SEE GUERRILLA TERROR IN THE HILLS)이라는 제목의 버커 화이트 기자의 르포 기사가 게재돼있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1952년 12월1일자 영문 주간지 라이프지 표지에는 ‘아이크(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애칭)가 한국에서 보지 못할 게릴라전’(THE KOREA IKE WON'T SEE GUERRILLA TERROR IN THE HILLS)이라는 제목의 버커 화이트 기자의 르포 기사가 게재돼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허가없이 이 사진의 무단배포 및 전재를 금합니다>

<빨치산 소탕전, 미 대통령 당선자의 과제 등 한국 특집 기사 게재>

화이트 기자는 북한 게릴라(소위 말하는 빨치산)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는 한국 경찰 토벌대, 부인과 형, 어머니를 만난 전향한 게릴라, 체포된 게릴라들의 재판, 자살한 게릴라의 장례식 등을 사진과 함께 11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잡지는 또 화이트 기자의 기사와는 별도로 찰스 머피 기자가 쓴 '아이크가 한국에서 부닥치게 될 것들’(WHAT IKE FACES IN KOREA)이란 6페이지 분량의 특집 기사도 게재해 놓았습니다.

라이프지가 이같이 한국전 관련 기사를 대거 게재한 것은 1952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전 종식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그해 12월12일 한국을 방문하기로 돼있음에 따라 특집으로 꾸민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두 개의 특집 기사와 함께 곁들여진 사진들은 6.25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빨치산 토벌에 나선 경찰들이 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무장 경찰들이 대나무 발 뒤에서 개활지가 된 논을 바라보며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작전에 나서기 전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찰 토벌대장과 사살당한 빨치산 시체 및 포로들.
작전을 마친 경찰 토벌 대장이 지역 유지로 보이는 주민들과의 주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향한 빨치산이 부인과 아들 그리고 형을 만나고 있습니다(위). 형은 왜 총부리를 대한민국에 겨눈 세력에 가담했느냐며 회한에 찬 표정으로 동생을 꾸짖고 있습니다(아래)

빨치산에서 전향해 살아돌아온 아들을 만난 노모는 믿을 수 없다며 아들을 껴안고 연신 눈물을 흘립니다.
체포된 여자 빨치산들. 왼쪽 위는 부상당한 국군 3명을 치료해준 공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군들이 얼어붙은 땅을 파며 교통호를 만들고 있습니다.

<파격적 건축가 라이트 특집 기사 실린 ‘House Beautiful’에 일단 관심>

라이프지 기사가 6.25 당시의 전쟁 상황을 게재한 것이라면 월간지 ‘House Beautiful’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 어려움에 처한 한국 어린이들을 돕자는 캠페인 사고 기사를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캠페인 사고는 책 표지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아주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자칫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당초 제가 이 월간지를 주목하게 된 것은 어릴 때 사진으로 본 뒤 기억 속에 남았던, 파격적인 저택을 지었던 건축가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특집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1936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베어 런의 에드가 카우프만의 저택 ‘Falling Water’는 이름 그대로 작은 폭포를 살리고 그 위에다 집을 지어놓았습니다. 이 집을 설계한 이가 바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입니다.

처음 이 집 사진을 본 저는 나중에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이 집을 찾아가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현시키지 못하고 단지 시카고에 있는 라이트의 기념관만 방문한 것으로 일단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필자가 보고 매혹됐던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걸작 저택 falling water.
하우스 뷰티플 잡지가 특집으로 게재한 건축가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사진과 기사. 이 잡지에 한국 전쟁고아들을 돕자는 캠페인 사고가 게재돼 있습니다.

<‘House Beautiful’에 한쪽 다리 잃은 한국 전쟁 고아 사진 실려>

‘House Beautiful’은 233페이지부터 380페이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 특집 기사를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또 부스 주인의 눈치도 봐야 했으므로 대충 사진과 기사를 보면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328페이지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을 짚고 서있는 한국 어린이의 사진이 들어있는 캠페인 사고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내 동생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Am I my brother's keeper?)라는 제목의 사고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왼쪽 다리를 잃은 ‘상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는 직접 만든 목발을 짚고 서울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집도 가족도 학교도 없습니다.

선하고 똑똑하게 생긴 그의 장래는 당신 관심 밖입니까. 내가 왜 목발을 짚은 소년에게, 고통에, 굶주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미국에서 태어난 것을 단순히 행운으로 여기면 그뿐입니까. 한국에는 3만5,000명의 집없는 어린이들이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성 사고는 세계적 구호단체 Christian Children's Fund가 냈으며 한달에 10달러면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며 성금을 보낼 연락처와 구좌번호 등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우스 뷰티플 월간지에 게재된 한국 전쟁 고아들을 돕자는 캠페인 사고. 여기에 등장한 소년은 한쪽 다리를 잃은 고아 소년 '상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House Beautiful’은 집안을 예쁘게 꾸미는 장식품, 가구, 아름다운 저택 등을 소개하는 전문 월간지입니다. 내용이 그렇다보니 각 페이지는 화려한 사진과 행복함이 넘쳐나는 표정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같은 책 한 곳에 다리 잃은 한국 소년이 등장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저 역시 전쟁의 후유증으로 빚어진 경제적 피폐, 사회적 혼돈, 문화적 빈곤을 직접 겪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만큼 6.25가 얼마나 많은 개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는지를 짐작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를 보는 순간, 상기라는 소년(물론 실제 나이는 저보다 위입니다)의 비극적 처지가 바로 가슴속으로 전해 왔습니다. 가족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않았을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과연 생존하고는 있을지 등등.

이같은 기사와 사진들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한국이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가 놀라워할 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기적같은 발전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제는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 비록 미흡하지만 다른 나라나 타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번영의 기틀을 다지고 또한번의 도약을 이루려는 찰라에 야만적인 북한 지도자란 자들이 도발을 감행하려 한다는 사실이 치떨리게 합니다.

저는 이런 북한의 소위 '지도자'란 자들을 보면서 나쁜 형제는 나쁜 이웃 보다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작권자 ⓒ 해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