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새 것보다는 손 때 묻은 거 고쳐 쓰는 게 좋지요”

뉴저지 모리스 타운 앤틱 쇼-다양한 수선 샵들 인기 최고

김인규 기자 승인 2022.10.12 17:05 | 최종 수정 2022.10.12 17:46 의견 0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든 미국인들의 소비 행태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오래된 물건을 고쳐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최근들어서는 우리도 중고 물품을 고쳐쓰거나 일부러 찾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같은 소비형태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을 뿐 아니라 그 범위가 훨씬 넓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로서는 아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바로 유리, 도자기 제품 등을 수리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 앤틱 플리마켓이나 쇼 장 가운데서 이처럼 오래된 물건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또한 신기하게 수선하는 곳을 들라면 뉴저지 Morristown 앤틱 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스타운은 미국이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벌일 당시 미국의 전쟁 수도 역할을 한 곳입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탓인지 모리스타운 앤틱 쇼가 단골로 열리는 곳은 Morristown Armory(병기공장)입니다. 지금은 병기공장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주 방위군이 건물을 관리하며 앤틱 쇼처럼 대규모 실내 행사가 열리면 대관해주기도 하는 곳입니다.

내부 기둥 하나 없는 그 큰 건물에 100여 앤틱 부스가 들어서 규모나 내용면에서 미국내 앤틱 쇼 가운데 A급에 속합니다. 그런만치 앤틱 값도 상당히 비쌉니다. 어떤 물건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표에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수양이 들 됐는지 마음이 요상해선지 모르나 앤틱 쇼에서는 이중 심리가 종종 생깁니다. 마음에 드는 앤틱을 발견했으나 속으로 예상했던 가격보다 싸면 갑자기 그 물건이 시시하게 변해 보이거나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 생각 외로 값이 비싸면 더 좋아 보이고, 갖고 싶은 욕심이 커져 다부지게 밀고 당기곤 합니다.

앤틱 쇼를 수십년간 다니다보니 이제는 흥정에 대한 노하우나 경험도 생겨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꽤 됩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잘 하지 못하는 영어를 때에 따라서는 더욱 형편없이 개깁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특정 앤틱의 쓰임새를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 하며 접근하기도 합니다.

앤틱 거래에서는 ‘상대성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므로 제가 부쩍 달아 있다거나 앤틱의 가치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태도는 거래할 때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리스타운 병기고에서 열리고 있는 앤틱 쇼. 100여 부스가 참가해 양과 질적으로 우수한 앤틱들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앤틱 쇼에 비해 물건값이 너무 비싼 것이 흠입니다.

<녹슨 쇠창살이 500달러,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가격>

한번은 모리스타운 앤틱 쇼에 가로 약 70cm, 세로 40cm의 녹슨 쇠창살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 가격이 얼마인지 짐작하십니까. 무려 500달러였습니다. 비슷한 부류로 나온 환기구를 막는 철망도 같은 값이었습니다.

두 개를 한꺼번에 사면 좀 깎아 준다고 하더군요. 이들은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모르나 생긴 폼이 특색이 있습디다. 쇠창살이 아주 굵고 연조도 오래돼보였습니다. 모양도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철물점에 가서 똑같은 모양으로 주문 제작을 하거나 아니면 비슷한 새 것이라도 이 가격보다 훨씬 싸게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앤틱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녹슨 철물들은 쓰레기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앤틱 쇼에 온 많은 매니아들이 이 철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흥정을 하곤 했습니다. 과연 이 작품이 팔렸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철제 벤치 왼쪽 뒷편에 보이는 것이 500달러짜리 녹슨 쇠창살입니다. 철제 벤치 오른쪽 뒤에 사각형 틀이 환기구를 막는 철망입니다.

소위 이것이 바로 앤틱의 ‘상대성 원리’라고 저는 나름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에겐 한없이 비싸고 귀하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쓰레기나 마찬가진 것이 앤틱입니다.

모리스타운 앤틱 쇼는 괜찮다 싶은 물건의 가격이 너무 비싸 상대성 원리를 동원해 흥정을 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입디다. 이럴 때는 눈 높이를 높이는 계기로 삼거나 공부에 목적을 두는 게 맞습니다.

나름대로 괜찮은 전과라면 실버 앤 다이아몬드 시계 두 개를 손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실버 앤 다이아몬드라 해서 아주 비싼 사치품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고가도 아니지만 아주 싸구려도 아닌 그저 고만고만한 가격이었습니다.

모리스타운 앤틱 쇼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앤틱 수리 전문가들이 대거 출동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유리, 도자기, 금은 액서사리, 가구, 린넨 등 모두 5종류의 전문 수리상들 수십명이 각각 부스를 열고 고객들을 맞습니다. 이들은 모리스타운 인근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펜실베니아에서 원정온 전문가들입니다.

먼저 유리 제품 수리 상황부터 설명하고 싶습니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갖가지 글라스 웨어를 들고 수리를 맡기러 옵니다. 제가 보기엔 별 것 아닌 유리 잔, 마개 부분이 약간 깨어진 평범해 보이는 큰 병 등등을 들고오는 주부들이 줄을 잇습니다.

가격은 나름대로 룰이 있습디다. 테두리 부분에 이빨이 나간 컷 글라스 컵 수리를 맡기자 지름이 3.5인치므로 인치 당 약 15달러씩 해서 53달러를 매깁디다. 제가 보기에 그 비용이거나 여기에 조금 더 보태면 그것과 같은 새 컷 글라스를 살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컷 글라스 등 유리제품들을 수리하는 곳입니다. 앤틱 쇼장 안이 아니라 바깥 공간에 마련돼있음에도 수선을 의뢰하러 오는 주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프레스 패턴 글라스 제품이 매니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종 동제품과 나무 노들이 부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는 분야입니다.

도자기 제품 수리는 한마디로 예술입디다. 칠이 벗겨지고 마모된 부분은 연마 기구로 갈아낸 뒤 원색과 꼭같은 색으로 다시 칠을 하고 그 위에 윤기를 내는 것같았습니다.

도자기를 수리하고 있는 장인. 고쳐놓은 도자기류를 보니 '또다른 예술'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금 은 액서사리나 가구 수리 전문가들 역시 기술이 뛰어났지만 그렇게 신기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의류 수선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온 수선품은 오래된 커턴, 테이블보, 손수건, 낡은 파티 드레스나 옷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수선하기 보다는 버리고 비슷한 새 것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 수선 전문가는 세탁소 등 일반적인 수선점과는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천 자체만 봐도 연륜이 묻어있거나 특징이 있고 디자인 등도 특이한 점을 그대로 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커턴, 테이블보, 손수건, 낡은 파티 드레스나 옷 등을 고치기 위해 수선전문가 앞에서 줄지어 있는 미국인들.

미국인들이 앤틱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물건들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모리스타운에서 본 것처럼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인들의 이같은 특성은 아마도 역사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됐든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서든 신대륙으로 건너온 유럽인들에게는 모든 물자가 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네 나라에서 갖고온 물건이 수명을 다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화물선이나 비행기로 물건을 부쳐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물건을 최대한 아끼고 웬만큼 낡은 것들은 고치고 수선해서 쓰는 게 일상화했습니다. 이같은 전통이 대대로 이어지면서 요즘처럼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도 손때묻은 물건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같습니다.

이들은 또 자기가 간직하다 남에게 넘기는 물건에도 여전히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피 잔 세트라든지 유리 그릇류 등 깨지기 쉬운 물건을 팔 때는 돈을 받았으면 그만이지 싶은데도 새 주인이 온전히 갖고 갈 수 있는지에 까지 관심을 보입니다. 때로는 구입자보다 더 정성스레 포장을 해주는 판매자도 많습니다.

<앤틱 쇼에서 한국인이 낸 부스와 만나기는 처음>

모리스타운 앤틱 쇼에서는 특별한 만남도 있었습니다.

수십년간 미국 앤틱 쇼를 다니면서 한국인이 낸 부스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부스를 낸 경우도 못 봤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의 골동품들은 한국의 것들과는 달리 앤틱 쇼에 많이 나타납니다. 인기도 꽤 좋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일본 사람이 부스를 운영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동양인이 낸 부스를 만난 적은 딱 한번 있었습니다. 몇년전 콜로라도 덴버에서 티베트인이 불화와 자기네 토속 물건을 가지고 앤틱 쇼장 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티베트인 부부나 우리는 백인들만 우글거리는 쇼 장에서 비슷한 얼굴 모양, 피부색을 가진 사람끼리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워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아시안들이 앤틱 쇼에 부스를 내는 예가 극히 드물었지만 모리스타운 앤틱 쇼에서 처음으로 한국 골동품을 갖고 한국인이 낸 부스와 만났습니다.

넓은 앤틱 쇼장을 3분의1 정도 돌아보다 정말 반갑게도 한국 병풍을 쳐놓고 한국 골동품을 전시해놓은 부스를 발견했습니다. 부스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부스를 낸 사람은 한국인은 아닐테고 지한파 아니면 한국에 살면서 앤틱을 수집한 미국인이겠지”, “한국 풍물을 소개해주다니 참 고마운 사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 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돌아보니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닥아서기에 “한국분이세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한국인이라고 하더군요.

한국 부스 주인도 “지금까지 많은 앤틱 쇼에 참가했지만 한국인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하고 반가워합디다. 저 역시 “앤틱 쇼에서 한국인이 낸 부스는 물론이고 한국인 역시 처음 봅니다”하고 놀라면서도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그 분은 뉴욕 모 대학 교수이면서 특별한 목적이 있어 앤틱 쇼에 참가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온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영어 학습 기금 등 공익적 사업을 하는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앤틱 쇼에 참가한다고 하더군요.

국가나 기업 등이 하지 않는 일을 그 분과 몇몇 뜻맞는 분들이 헌신적으로 노력, 봉사하는 점이 우러러 보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좋은 뜻이 저의 글로 인해 혹시라도 왜곡되거나 엉뚱하게 피해가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앞으로 그 분들의 앤틱 쇼 참가가 왕성하게 이루어져 뜻하는 바가 더욱 잘 되는 한편 한국 앤틱이 미국인들에게 보다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병풍을 배경으로 작은 함, 소반, 도자기 등을 소박하게 전시해놓은 한국 골동품 부스. 중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던 탓인지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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