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총리, “여야 모두 국민 신뢰 잃어…내 책임 다하겠다”

귀국 앞두고 워싱턴 한국일보와 특별 인터뷰

김인규 기자 승인 2023.05.18 11:58 | 최종 수정 2023.05.18 12:08 의견 0

귀국을 앞두고 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사진)가 “(한국의) 어느 정당이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대에서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6월 귀국하는 이낙연 전 총리는 16일 워싱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전 총리는 “한국의 정치는 길을 잃고 국민은 마음 둘 곳을 잃었다”며 “이러한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데에는 저의 책임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간 한국 정치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온 이 전 총리는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며 “과감한 혁신, 알을 깨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면서 “국가 위기 앞에서 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의 이 언급은 귀국 후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하며 민주당의 혁신에 나설 뜻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이 전 총리는 또 북핵문제 해법에 대해 미국의 선제적 북미수교 제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가장 최근의 북미정상회담이자 사실상 유일한 북미정상 합의인 싱가포르 회담의 골자를 언급하며 “북미수교,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교환이 다시 시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워싱턴에 온 이 전 총리는 지난 2월 조지워싱턴대 공개강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16차례 강연을 했다.
이 전 총리는 다음 달 초 독일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며 독일 튀빙겐대, 베를린대에서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미중 경쟁 상황서 북미 수교는 ‘게임 체인저’”

이낙연 전 총리가 16일 워싱턴 한국일보에서 ‘대한민국 생존과 번영의 길’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尹 외교정책은 적군과 아군을 지나치게 구분
북핵문제 해법, 미 선제적 북미수교 제안이 대안
한반도 문제, 이해당사국인 우리가 책임져야
치열하게 사는 동포들 만나 많은 깨우침

다시 혼돈이다. 동아시아에 신 냉전의 냉기가 싸늘하다. 미국은 몸집 커진 중국 견제에 골몰하고 윤석열 정부는 야심만만한 길을 택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체제의 한 축으로 편입신고를 했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역으로 북중미의 결착력을 높이고 있다. 북한은 남쪽의 같은 민족을 향해 핵 위협도 서슴지 않고 있다. 평화가 흔들린다. 이 전례 없는 위기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갈 길은 어디인가. 워싱턴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최근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낙연의 구상'을 출간했다.

오는 26일(금)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북 콘서트를 갖는 이 전 총리를 만나 신 냉전 체제에서의 한국의 생존전략에 대해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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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서울대 법대 졸업 ▲동아일보 주일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2000년, 16대 국회 등원 이래 17대, 18대, 19대, 21대 국회의원 ▲국회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 ▲제37대 전남 지사 ▲제45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현 상임고문)

-먼저 한미정상회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바이든 대통령은 대북 확장억제 강화를 요지로 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이 북핵 위협과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불신이 커진 한국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다고 보나?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구체화돼 핵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그룹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그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실패로 안보불안이 고조되고 독자 핵무장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억제전략과 동시에 긴장을 관리하고 완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선의 여지없이 아무런 성과도 없었으며 회담 직전 불거진 도청문제도 미국이 인정하고 사과했음에도 굴종적인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은 적군과 아군을 지나치게 구분하고 있다. 미소 냉전 이후 한반도가 미중 신 냉전의 최전선이 되는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도 중요하지만 북중러에 대한 생각과 고려가 부족하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가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이는 북중미의 결착과 맞물려 동아시아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3국 군사협력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인가?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주변국과 적대관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설적인 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북한과도 상시적 대화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한반도가 신 냉전의 최전선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만 문제가 강 건너 불구경 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은 중국과 대만이 무력 충돌한다면 한국과 일본 등은 전쟁 수행 지원이 됐든, 무역과 경제 교역 중단이 됐든 개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중국과의 중차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텐데 한국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도 한국의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인접한 중국과 대만이 충돌하게 될 경우 한국은 더욱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미국이 어느 정도 개입할지, 애매한 상황에서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있어 한국은 일본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들과 상황이 다르다. 한반도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고 미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점증하는 북핵 위협이 최대 관심사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정책 흐름을 보면 북한 비핵화에 진정성과 열의가 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미 간에는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은 도발을 멈추고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기도 했으나 결국 다시 사흘에 한번 꼴로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미국이 그간 아무 것도 안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어떤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제안이라 북한이 퇴짜를 놓았다고 들었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미국에 대한 기대도 없고 미련도 식었다.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중경쟁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미국, 미국만 바라보는 한국일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미국의 협력 없이 한반도의 평화는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해법이 있나?
▲2018년 6월 싱가포르 합의는 사실상 유일한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물이다. 합의의 골자는 북미수교,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비핵화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북한이 비핵화 교환마저 흥미를 잃은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미국이 선제적으로 수교를 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를 비롯해 댄 리프 전 태평양사령부 부사령관은 “평화 체제 구축이 비핵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제재와 압박, 고립 등 기존의 방식이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핵개발을 가속화시켰으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높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을까. 미중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북미수교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며 한반도 전략의 새로운 출구가 될 것이다. 과거 클린턴 정부에서도 적성 국가였던 베트남과 수교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던 전례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북은 체제보장 시에 정말 핵을 포기할 진심이 있다고 보나?
▲1999년 페리 보고서에서 나온 ‘상호위협감축’을 인용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 미국이 선제적으로 수교를 제안하고 다시 비핵화 교환을 시도한다면 북한도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국민의 70%가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나쁜 선택인가, 아니면 불가피하게 걸어가야 할 길인가?
▲한국의 안보불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자체 핵무장은 비용 문제 등 감수해야할 문제가 많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결론을 내고 논쟁을 벌이는 소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안보현실을 직시한 다음 몇 가지 대안을 놓고 함께 로드맵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는 미국도 참여해야 한다.

-한국에서 바라보던 한반도와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바라본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나 변화가 있었나?
▲미국 정부나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미 행정부에서 인식하는 한국의 존재감이 얼마나 작은지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 결국 우리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일방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한반도 문제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이해 당사국으로서 우리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동맹은 도와줄 뿐 우리를 대신해 결정해주지 않는다.

-미국에 1년 체류하며 어떤 정치인보다 동포들과 가까이 지낸 분으로 기억된다. 미주 동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치열하게 살고 계신 동포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셨다. 지금처럼 열심히 그리고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자랑스럽고 당당한 여러분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120여년전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당 69센트를 받으면 일했던 한인 이민 선조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국에 독립자금을 보냈으며 안중근 의사의 변호사 비용도 부담했다. 선조들의 희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국에 계신 한인들 모두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귀국 후 활동계획은?
▲여야 모두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정치는 길을 잃고 국민은 마음 둘 곳을 잃었다.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저의 책임도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과감한 혁신, 알을 깨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지금 하는걸 보면 국민 신뢰를 되찾는데 부족하다. 국가 위기 앞에서 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담 워싱턴 한국일보 이종국 국장, 정리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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