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라거스(asparagus)는 남유럽이 원산지인 비짜루목(舊 크론키스트 체계에선 백합목)의 식용식물로 여러 포기를 묶으면 빗자루와 모양이 비슷하다 해 '비짜루'라고도 부른다. 학명이 Asparagus officinalis이며, 그러나 아미노산 중 아스파라긴이 아스파라거스의 녹즙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유의어로는 노순(蘆荀), 석도백(石刀柏), 천문동(天門冬), 천동(天冬)이이라고도 하며 한방에서는 소백부(小百部)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채소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영양소가 풍부한 고급 채소다.

고대 로마에서의 아스파라거스는 주로 왕실과 상류층이 즐겼던 식재료다.

흐드러지게 차린 연회 메뉴 중 하나가 ‘아스파라거스 위에 얹은 참새고기 요리’라고 한다.

아스파라거스의 귀족적 이미지는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가 ‘식품의 왕’이라는 작위를 부여했다는 서사가 더해지며 오랜 시간 공고하게 유지됐다. 그는 궁전에 전용 온실을 만들어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할 정도였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스파라거스를 나르기 위해 함대까지 만들었다니, 황제 채소라고도 부를 만하다.

아스파라거스를 일상에서는 보통 '아스파라(アスパラ)'라고 줄여 부른다.

우리의 절에서 승려들이 오신채를 금기시하듯 정력을 증진시킨다는 속설이 있어 중세 수도원에서 아스파라거스는 금기 식품으로 여겨졌다. 음란한 상상력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19세기 프랑스 여학교에선 아스파라거스 배식을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독일의 소설가는 그의 미식 리스트에 아스파라거스를 자주 언급할만큼 아스파라거스를 좋아 했다.

1776년 초 그의 나이 스물일곱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원 고문으로 영입된다. 그의 바이마르행(行)은 카를 아우구스트 ( 독일어: Karl August , 1757~1828) 대공작의 앙청(仰請)으로 이뤄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간으로 전 유럽에서 이름을 얻은 직후였다.

1776년 5월, 바이마르에 살면서 그가 좋아 하던 한 여인에게 일종의 연애 편지를 쓴다. 이 편지 내용을 보면 아스파라거스를 주제로 삼고 있다.

'처음으로 정원의 온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했습니다. 이 아스파라거스를 다른 것과 함께 섞지 말고, 혼자만 드십시오. 그래야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게 될 테니까요. 제가 당신과 함께 이걸 먹는다면 최고로 맛이 있을 텐데. 오늘 점심때는 어떨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방문해도 좋을까요? 이곳은 여전히 조용합니다. 당신과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아듀. G.'

'아스파라거스 연서'는 그 뒤로도 여러 번 등장한다. 그의 어렸을 적 즐겼던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내용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사포닌이 많아 수확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쓴맛이 생기기 때문에 수확하고 나서 되도록이면 빨리 먹는 것이 좋고 절대로 1주일 이상 보관해서는 않된다. 아스파라거스는 고급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여 요리법이 상당히 다양하다. 머리 부분은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살짝 데쳐서 윗부분의 봉우리만 양념을 살짝 묻혀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루틴이 풍부해 혈압을 낮추는 데도 좋고 신진대사를 촉진해 주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간 해독 기능에 큰 도움을 줘서 연쇄적으로 피로 회복, 노폐물 배출, 피부 개선 등 수많은 효과로 이어진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