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되니 산허리에 붉은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삼월나면서 활짝 핀
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니고 나셨도다.
아! 동동다리
三月 나며 開 한
아으 만춘(晩春) 달욋고지여.
나매 브롤 즈슬
디녀 나샷다.
아으 動動다리”
삼월이 나면서 늦 봄 아! 진달래 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니고 나셨도다 아으 동동다리
「고려가사」로 임을 진달래로 비유하여 쓴 연모의 정이 묻어나는 절절한 시(詩)다.
봄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어여쁜 아낙들은 꽃단장하고 산과 들로 나와 꽃을 즐기며 화전을 부치고, 선비들은 시(詩)를 읊으며 흥취를 즐겼는데,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먼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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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윤기(尹愭, 1741~1826)는
“松濤巖瀑滿山颼(송도암폭만산수)솔바람과 폭포 소리 온 산에 가득하고
噴沫空中玉雪浮(분말공중옥설부)물보라가 허공에 눈처럼 날리누나
却摘紅花盈素筥(각적홍화영소거)붉은 꽃 따 담아 흰 광주리 가득하자
更將白粉和淸油(경장백분화청유)쌀가루 반죽하고 맑은 기름 두르네
細吹殘焰初開鼎(세취잔염초개정)남은 불씨 살살 불고 드디어 솥을 열어
團作濃香倐入喉(단작농향수입후)짙은 향의 둥근 화전 얼른 목에 삼키누나
此日勝遊猶有恨(차일승유유한)오늘 유람 훌륭해도 아쉬움이 남으니
柰無從事到靑州(나무종사도청주)흥취 돋울 좋은 술이 없음을 어이하랴”
『무명자집 (無名子集)』
봄날 붉은 진달래를 한 광주리 따 화전을 부쳐 놓고 술[酒]을 청하는 시다.
이 화전을 한궁기자(漢宮棋子) 라고 했다.
중국 명(明)나라 문학가 왕세정 (王世貞, 1526년 ~ 1590년)은 “밀가루 돈[麪錢]에 꽃을 박아서 구어 만든 떡이다.” 했는데, 조선 영조 때 재야 지식인으로 실학의 영역을 개척한 성호( 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이는 지금 세속에서 화전(花煎)이라”했다.
조선후기 대제학을 지낸 문신 몽오(夢梧) 김종수(金鍾秀 1728~1799)의 『몽오집(夢梧集)』을 보면 몽오(夢梧)가 집에서 주자서(朱子書)를 읽고 있었는데 홍자직(洪子直) 씨가 홀연 편지를 보내와 청담(淸潭: 북한산 뒤쪽 인수봉(仁壽峯) 골짜기에 있는 못)에 유람 간다고 알려 왔다. 내가 기뻐서 드디어 몇몇 사람과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나가니, 화산(華山) 즉 지금의 북한산으로 들어가니 백씨(伯氏)가 술을 싣고 와서 칠유암(七遊巖)에서 맞아 주었다. 주머니를 열어 시권(詩卷)을 꺼내서 읽고, 돌판을 불에 달궈 화전(花煎)을 지졌다. 라고 나온다.
물론 몽오(夢梧)가 홍자직(洪子直) 일행과 청담(淸潭)에 갔을 때는 가을이다.
그러나 당시 옛 선비들의 풍류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봄꽃이 만개하여 꽃비가 내리는 지금, 방에서 책만 볼게 아니라 화전(花煎)을 지지며 술 한잔하면서 옛 사람들의 풍류를 따라 하는 것도 나쁠게 없다 하겠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