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은 개구리를 '논에서 나는 닭고기'라고 부르며 개구리를 요리해 즐겨 먹는다.
하마(蛤蟆)는 중국어로 개구리와 두꺼비의 통칭인데, 하마탕에는 알밴 개구리가 통으로 들어가며 보양식이라고 즐겨 먹는다.
간궈뉴와(干锅牛蛙 gānguō niúwā)나 샹궈뉴와(香锅牛蛙)라고 하는 사천식 식용개구리 볶음 요리도 유명하고, 중국식 인도네시아 요리로 스위키(Swikee) 또는 스위크(Swike) 라는 개구리 다리 요리도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도 ‘깽옴꼽’이라는 개구리 카레 요리 등이 있다.
프랑스 역시 개구리 다리 요리(Cuisse de Grenouille)가 고급 요리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개구리 요리의 식용 또는 약용 역사도 오래되었다.
조선 중기 문신인 구적 역할을 한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아들 이민구(李敏求1589~1670)는 더위를 먹어 설사를 하는데, 김주부가 개구리를 요리하여 보내 주면서 설사를 그치게 한다며 적은 시가『동주집(東州集)』제1권 시(詩) 선위록(宣慰錄)에 실려 있다.
“河魚頗攪野夫腸(하어파교야부장)하어증이 시골 사내 배 속 뒤집는데
田蛤新依主簿方(전합신의주부방)개구리 요리는 주부의 새 처방이네
已減十分池上聒(이멸십분지상괄)연못가 시끄러운 소리 충분히 줄어
不愁三起夜中忙(불수삼기야중망)밤중에 다급히 세 번 깰 걱정 없네
何曾食指動嘗黿(하증식지동상원)상식지 움직인다고 자라 맛보랴
適口今知美味存(적구금지미미존)입에 맞으니 맛있는 줄 알겠네
周禮錯應煩牡菊(주례착응번목국)에서 모국만 번거롭게 하였고
鄒書只解重鷄豚(추서지해중계돈)맹자에는 닭과 돼지만 귀히 여겼네
蹩蹩纔分兩股長(별별재분양고장)조심조심 긴 두 다리 잘라내어
靑蘇熬點海椒芳(청소오점해초방)들깨로 볶고 향긋한 해초 더하네
從今僕射陂邊宅(종금복사피변택)이제부터 언덕 가 복야의 집에는
添得先生一味嘗(첨득선생일미상)선생의 맛있는 음식 하나 더하겠네 -이하생략-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이던 서거정(徐居正, 1420∼1488) 등이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지시에 따라 1458년(세조 4) 편찬한 『동국통감(東國通鑑)』32권 ⌜고려기(高麗紀)⌟ 고종(高宗) 33년조에 ‘고려(高麗)의 장성현(長城縣) 사람 서릉(徐稜)이 벼슬하지 않고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정수리에 종기가 나서 의원을 초청하여 보이니, 의원이 말하기를, “개구리를 얻지 못하면 치료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서릉의 생각에 날씨가 매우 추워서 개구리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여기고, 그지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자, 의원이 말하기를, “비록 산 개구리는 없더라도 우선 약을 조제하여 시험해 봅시다.”라고 하고, 나무 밑에서 약을 볶고 있을 때에 나무 위에서 개구리가 솥 안으로 떨어졌는데,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기를, “효성에 감격한 소치이다.”라고 하였다. 약을 조제하여 환부에 붙였더니, 과연 나았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개구리는 이미 약으로 먹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숯불에 구워 먹거나 껍질을 벗기고 세척한 뒤 데쳐 먹기도 하고 국이나 찜으로 요리해 먹기도 했다.
특히 우리는 개구리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만세탕’이라고도 한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