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방 음식이라고요?
요즘 진주는 교방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일부 서적에서는 기생을 양성했던 관아 기관인 '교방'의 기생들이 음식을 만들었다며 이것을 교방음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진주비빔밥, 진주냉면도 교방음식이라고 주장 한다. 과연 그럴까?
진주 감영(監營)의 교방청(敎坊廳)은 고려·조선시대 기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이다.
교방(敎坊)은 지방 관아(官衙)에 부속된 건물로 대개는 관문 밖 객사 주변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에서 지방의 기녀들이 악기·노래·춤 등 각종 예기를 익혀 각종 공적인 연회에 불려 다녔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교방청, 동래관아 교방청, 여수 좌수영수군통제영 교방청, 전주 전라감영 교방청 등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교방청(敎坊廳)에서 음식을 준비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악기·노래·춤 등 기예 학습과 걸음걸이와 인사하는 법, 앉는 법, 말하는 법, 옷 입는 법 등 예의범절을 가르쳐 줄 뿐 음식 만드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이렇듯 교방청(敎坊廳)은 기생들에게 기예(妓藝)를 가르치는 장소지 연회(宴會) 장소도 아니다.
감영(監營)에서 잔치를 할 때 교방청(敎坊廳)에 있던 기생들이 출장을 나와 연회에 참여할 뿐이다.
진주 감영(監營)의 교방청(敎坊廳) 연회(宴會)에 대한 기록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가사 그런 기록이 있다 한들 교방청(敎坊廳)에서 기생들이 연회음식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기대하기 힘들다.
다만 1884년 전라감영을 최초로 방문한 미국 해군이자 외교관 조지포크(George C. Foulk)의 기록을 참고해 보자. 전라감사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은 1884년 11월 10일 오후 12시 10분 전주 풍남문(豐南門)에 도착한 포크를 맞는다.
감사는 포크와의 첫 만남에서 고구마, 밤, 감, 얇게 썬 쇠고기, 국수 등을 올린 면상(麵床)으로 대접을 한다.
그리고 연회가 열린 장소는 선화당(宣化堂)으로 이곳에 연회 음식상이 차려지고 교방청(敎坊廳)에서 출장 나온 기생들의 북춤을 관람하게 된다.
이날 콩이 섞인 쌀밥, 무를 썰어 넣은 소고기 계란국, 구운 닭, 돼지요리, 소고기조각, 김치, 붉은 고추가 들어 있는 동치미거나 깍두기, 계란을 입힌 소고기 산적, 숙주나물 무침, 조개젓과 굴젓, 무를 넣은 오리고깃국, 숯불불고기, 계란조림, 생선알과 마른생선, 간장 등이 올라 왔다.
이 음식들은 모두 교방청(敎坊廳)이 아닌 관아(官衙)의 부엌인 관주(官廚)에서 마련한 것들이다.
대부분 관아(官衙)에서는 연회가 있는 날에는 외부에 있는 감상칼자[監床刀尺]나 칼자(刀尺)를 불러 관아(官衙)에 소속 된 원두한(園頭汗), 주노(廚奴)와 포노(庖奴), 급수비(汲水婢), 반비(飯婢) 등과 함께 연회음식들을 준비한다.
거창가(居昌歌)에 이런 구절이 있다.“우리 거창 큰 읍인데도 칼자 감상 없다 하여 전주 감영 통지하여 감상 칼자 세를 내어 끌어오니”이렇듯 감영(監營)에 잔치가 있을 때는 관아(官衙)에 소속 된 숙수(熟手)들 보다 외부에 있는 요리 전문기술을 갖춘 감상칼자[監床刀尺]나 칼자(刀尺)를 불러 요리를 준비하게 된다.
조선시대 감영(監營)이나 부(府), 현(縣) 등에는 관청(官廳), 관주(官廚), 주방(廚房)으로 불리는 부엌이 있어 수령에게는 매일 이곳에서 식사를 제공하였고, 빈번하게 관아(官衙)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베푸는 식사나 연회도 이곳에서 제공된다.
교방청(敎坊廳)은 관기(官妓)들이 기예를 익히며 거주하는 곳일 뿐 연회(宴會)를 베풀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곳은 아니다. 그러니 교방음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다 하겠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