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食醯)는 우리나라 전통 음료이다. 엿기름을 우린 웃물에 쌀밥을 말아 독에 넣어 더운 방에 삭히면 밥알이 뜨는데, 거기에 설탕을 넣고 끓여 차게 식혀 먹는다.

『한서(漢書)』36권(卷36) 초원왕전(楚元王傳)에‘한(漢)나라의 초원왕(楚元王)이 현인인 목생(穆生)과 백생(白生)과 신공(申公)을 초치하여 중대부(中大夫)로 삼았는데, 목생이 술을 좋아하지 않자 연회 때마다 그를 위하여 특별히 단술을 빚어 대접하도록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수로왕의 제사에 감주를 올렸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나오는 ‘행당맥락杏餳麥酪’의 ‘맥락(麥酪)’을 식혜로 보는 견해에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식혜를 만들기 시작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이후 1740년경, 조선 영조 때 『소문사설(謏聞事說)』에 식혜를 언급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매산집(梅山集)』에 ‘《상례비요(喪禮備要)》 〈제찬도(祭饌圖)〉에서 말한 ‘해(醢)’는 식혜(食醯)인 듯하나 식혜는 예(禮)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옹(尤翁 송시열(宋時烈))이 또한 말씀하기를, “식혜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풍속이고 예가(禮家)에서 말하는 ‘해(醢)’는 바로 해물을 소금에 절인 것이니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해도 무방할 듯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당시에도 해(醢)와 (醯)가 헷갈렸던 것 같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식혜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멥쌀이나 찹쌀 등으로 밥을 되게 지은 후 이 밥을 엿기름을 끓인 물에 풀어두어 밥을 삭힌다. 밥알이 삭혀지면 꿀이나 백설탕을 넣고 다시 끓이거나 꿀이나 백설탕을 물에 타서 붓는다. 이 과정에서 생강 저민 것이나, 유자를 넣거나 잣이나 대추채, 실백이나 석류 등을 넣기도 한다. 찹쌀로 만든 식혜가 보기에는 깔끔하지만 식혜의 맛은 멥쌀 식혜가 더 낫다고 기록되어 있다. 급하게 식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밥을 할 때 엿기름 가루를 넣고 밥을 한 후에 식히고 여기에다 냉수에 탄 꿀을 넣으면 간단하게 식혜를 만들 수도 있다.

식혜

아밀레이스는 엿기름에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어 이 엿기름을 말린 뒤 분쇄하여 맥아분(麥芽粉)을 물에 담가놓으면 아밀레이스가 물에 녹아내린다. 그 물을 탄수화물(밥)에 섞어서 따뜻한 곳에서 삭히면 다당류인 탄수화물이 이당류인 엿당으로 분해되어 이것이 식혜의 단맛을 내는 주요 성분이 된다. 건더기를 짜내 졸이면 조청이 되며, 더 졸여 굳히면 엿이 된다.

안동식혜(安東食醯)는 찹쌀 고두밥에 고운 고춧가루, 무채, 밤채, 생강채를 넣고 고루 섞은 다음 엿기름물을 따라 붓고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켜 만든 음료로 무식혜라고도 한다.

안동식혜

식혜(食醯)는 밥을 엿기름을 삭혀 당화시킨 음료이고, 식해(食醢)는 밥에 생선과 양념을 넣어 삭힌 반찬이다.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거나 넣을 생선이 마땅치 않을 때 밥과 무, 갖은 채소를 버무려 삭힌 것을 따로 소식해(蔬食醢)라고 부르며 해 먹는 경우도있다.

안동식혜는 식혜와 소식해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음식으로 고춧가루를 풀어 넣어 매콤하지만 설탕이 좀 들어가 달콤하다. 잘게 썬 무가 씹히지만 밥알이 동동 떠 같이 씹히는 음식인 것이다.

안동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난 후 소화를 돕는 후식으로, 혹은 손님맞이 음료로 이 안동식혜를 꾸준히 만들어 먹어왔다.

잘 볶은 땅콩을 몇 알 띄워 먹는 안동식혜의 알싸한 맛은 독특한 음청류이기 때문에 시큼한 맛과 함께 약간의 매운맛 그리고 입 끝에 남는 단맛의 독특함이 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