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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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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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반기는 살구꽃은 복숭아꽃과 함께 고향을 상징하는 관상수다. 주로 과수로 재배되지만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이 참 아름답다.
살구 과실을 행실(杏實)이라고 하는데, 비타민 C가 적은 편이지만, 비타민 A의 공급원이 되는 베타카로틴의 함량이 많은 편으로 자당, 과당, 소르비톨과 사과산, 구연산과 같은 유기산이 함유되어 있다.
살구 씨의 껍데기 속 알맹이를 행인(杏仁) 또는 행핵(杏核)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평안도, 함길도 토산으로 나오고 행인(杏仁)을 약재로 사용한다고 나온다.
조선 14대 왕 선조(宣祖)는 “의관을 보내 진맥하게 하고 살구 씨를 가미한 오미자탕(五味子湯)을 의논해 들여 보내라.”고 전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선조 20년(1587) 10월 18일
조선시대 살구 씨는 감기에도 쓰여 진 것 같다. 영조(英祖)의 강력한 지지자인 대왕대비 인원왕후(仁元王后)가 감기에 걸리자 대왕대비전에 의녀가 입진하고 물러 나온 뒤에 즉시 여러 어의들과 반복해서 상의하는데, 모두들 말하기를, ‘두통과 요통의 증후가 조금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더 나아지지는 않았고, 후통의 경우 아직도 줄어드는 기세가 없으며 땀도 더 나오지 않고 있으니, 탕제 올리기를 계속해서 정지할 수는 없다고 하며. 삼소음(蔘蘇飮) 원래의 처방에다 행인(杏仁 살구씨)을 밀기울과 함께 볶은 것 7푼(分)과 죽여(竹茹) 5푼을 더하여 연이어 세 첩을 드시게 함으로써 감기 기운을 낫게 하고 기를 소통시키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 하였다. 영조 즉위년(1724) 9월 3일
중국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동봉(董奉)이 여산(廬山)에 은거해 살면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였는데, 치료비 대신 중한 병을 치료받은 자는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게 하고 가벼운 병을 치료받은 자는 한 그루를 심게 하였으므로, 몇 년 뒤에는 살구나무가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신선전(神仙傳)』 여기서 동봉(董奉)을 행인(杏人) 즉 어진 의원(醫員)을 일컷는데, 살구씨를 말하기도 한다.
행인(杏仁)은 기침을 멈추게 하고 가래를 삭여 주는 작용을 하는 아미그달린이 약 3%가 있고 ㆍ변비(便秘) 치료는 물론 피부를 하얗게 하고 윤기가 나도록 도와주는 지방산이 50% 정도로 다량 함유되어 있다.
중국 북송의 문인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6~1101)소식의 시 ‘[次韻田國博部夫南京見寄二絶(차운전국박부부남경견기이절)]에 “火冷餳稀杏粥稠 青裙縞袂餉田頭(화냉당희행죽조 청군호몌향전두)불은 식어 당락 묽고 살구씨죽 뻑뻑한데, 푸른 치마 흰 소매 차림으로 밭가에서 먹도다.”라고 하였다. 당락은 조청의 일종이다. 『고금사문류취(古今事文類聚)』전집(前集) 8권(卷)8 [청명사신화(清明賜新火)]
행인죽은 행인(杏仁)을 넣어서 쑨 죽을 말하는데, 옛날에 한식일(寒食日)이면 이 죽중국 양(梁)나라의 종늠(宗懍)이 중국 남방 형초지방(荊楚地方)의 세시풍물(歲時風物)과 고사를 적은『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한식에는 3일간 불을 금하므로 당대맥죽(餳大麥粥, 엿보리죽)을 쑨다.”고 나오고, 진(晉)나라 육홰 (陸翽)가 편찬한『업중기(鄴中記)』에도“한식(寒食)을 하는 3일 동안에는 단술[醴]과 낙죽[酪]을 만들어 먹는다. 또 찹쌀과 보리쌀을 끓여서 낙죽을 만들고, 살구씨[杏仁]를 빻은 다음 이를 끓여 죽을 만들어 먹는다.” 하였으며, 『옥촉보전(玉燭寶典)』에는 “한식날에는 보리죽[大麥]을 끓여서 죽을 만들고, 살구 속씨를 갈아 낙죽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별도로 엿[餳]을 만들어 먹는다.” 하였다.『지산집(芝山集)』
조선 후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년~1826년)는 한식날 고사〔寒食日〕을 장률로 적었다. 그 일부를 소개하자면
“楡羹杏粥靑精飢(유갱행죽청정기)느릅나무국과 살구씨죽 청정신반 만들었고 餳酪棗餻白水芹(당락조고백수근)당락과 대추떡과 백수근을 만들었네” 『무명자집(無名子集)』
‘양공이 행락을 보내준 데 사례하다〔謝楊公杏酪〕’
“楊家杏酪勝牛乳(양가행락승우유)양공 집의 행락은 우유보다 맛있는데 玉椀盛來雪色浮(옥완성래설색부)옥그릇에 담아 오니 눈처럼 하얗구나. 若道神仙造大藥만약 신선이 대약을 만든다고 하면 馨香此外更何求향긋한 이것 두고 무엇을 다시 구하랴 /
『용주유고(龍洲遺稿)』
행락탕(杏酪湯)은 행인(杏仁) 석냥 반을 팔팔 끓는 백비탕에 담가 뚜껑을 덮어 완전히 식을 때를 기다린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 하고 나서 껍질 끝을 꺼내어 버리고 사기동이에 넣어 곱게 간다. 그리고 좋은 꿀 1근을 두어 번 끓도록 졸여, 반쯤 식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행인(杏仁) 간 것 즉 행니(杏泥)에 붓거나 또는 갈아서 고루 섞는다.『산림경제(山林經濟)』
조선 후기 김진수(金進洙 1797~1865)의『벽로별집(碧蘆集)』에 ‘紅鍋肉臭(홍과육취)붉은 솥에는 고기 냄새 나고’라는 시(詩)에 ‘안주거리’가 나온다.
“紅鍋肉臭酒鱗鱗(홍과육취주린린)붉은 솥에는 고기 냄새 나고 술은 찰랑이는데 肴核樽前替幾廵(효핵준전체기순)술통 앞 안주거리 몇 번이나 바뀌었나 苽菓謂言藏有術(과과위언장유술)과실은 저장하는 방법이 있다 하니 非時節物簇生新(비시절물족생신)제철 물건 아닌데도 떨기마다 싱싱하고 새롭네”
이 시(詩)의 자주(自註)에 모든 술자리에는 반드시 먼저 안주거리를 내오니 곧 과인(瓜仁 오이씨)과 행인(杏仁 살구씨)의 등속이라 고하였다.
『의방유취(醫方類聚)』[수친양로신서(壽親養老新書)]에 ‘노인은 행탕(杏湯 살구 달인 물)을 항상 복용해야 한다. 살구씨[杏仁板兒]ㆍ완전히 볶은 삼씨[麻子]ㆍ참깨[芝麻]로 탕(湯)을 만들어 복용해도 몸속을 소통시킬 수 있다.’고 나온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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