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의기(義妓)

김인규 기자 승인 2021.10.02 14:34 | 최종 수정 2021.10.02 14:40 의견 0
매국노를 꾸짖은 진주 기생 산홍(山紅).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민속학자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 진주 기생에 대한 기록들이 보인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란 뜻이다.
역대 진주 기생으로는 승이교(勝二喬)· 계향(桂香). 매화(梅花), 옥선(玉仙)등 빼어난 명기(名妓)들이 있었다.
월정화(月精花)는 기록상 나타나는 진주 최초의 기녀다.
『고려사』권71권 악지에 “月精花 晋州妓也 司錄魏齊萬惑之 令夫人憂恚而死 邑人追言 夫人在時 不相親愛 以刺其狂惑也(월정화 진주기야 사록위재만혹지 영부인우에이사 읍인추언 부인재시 불상친애 이자기광옥야) 진주 기녀이다. 사록 위제만이 그에게 매혹되었다. 그래서 그의 부인이 울분으로 병이 나서 그만 죽었다. 진주 고을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 부인이 살았을 때 서로 친애하지 않았던 사실을 들어 사록이 여색에 미친 듯이 미혹됨을 풍자한 것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당시 진주 사록(司錄) 벼슬에 있던 위제만(魏齊萬)을 유혹해 그의 부인을 결국 울화병으로 죽게 만든 것이다.
진주 사람들이 위제만의 부인을 추모하고 위제만의 방탕한 생활을 풍자하기 위해 불렀다는 '월정화'라는 고려가요의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진주난봉가'의 내용과 월정화의 이야기가 설화적 배경이 유사하다.
『고려사』의 ‘월정화’이야기는 이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임하필기(林下筆記)』 등 조선시대 기록들에도 나타난다.
또 다른 이야기로 강혼과 기녀의 로맨스가 있다.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은 젊은 시절 한때 아리따운 관기와 깊은 사랑을 불태운 일이 있다. 강혼이 기녀와의 사랑에 빠져 있을 무렵, 공교롭게도 진주목사가 부임해왔다. 강혼의 연인이 목사의 눈에 들어 수청을 들게 되었다. 강혼은 사랑하는 기녀를 속절없이 빼앗기게 되었다. 더욱이 관기였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강혼은 북받쳐 오르는 분함과 연정을 주체할 수 없어 수청을 들러 가는 기녀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한 수의 시를 소매에 써주었다. 기녀의 소맷자락에 쓰인 시를 발견한 목사는 그 연유를 물었다. 시의 작자가 누구냐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기녀는 밝히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는 잡아들이라는 호통이 떨어졌다. 강혼이 붙들려 왔다. 수청 기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전들은 큰 변이 일어났다며 몸둘 바를 몰라 하는데, 사또는 뜻밖에도 주안상을 준비케 하고 백면서생 강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사또는 기생의 소맷자락에 쓰인 시를 보고 그의 글재주와 호기에 마음이 끌려 한 잔 술은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수청을 들뻔한 기생도 되돌려 주고자 작정한 것이다. 목사가 멋지다.
진주 남강 변에서 1919년 3월 19일
1919년 3월 19일 한금화(韓錦花)를 비롯한 진주기생들이 태극기를 선두로 촉석루를 향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일본 경찰이 진주기생 6인을 붙잡아 구금하였는데 한금화는 손가락을 깨물어 흰 명주자락에 “기쁘다, 삼천리강산에 다시 무궁화 피누나”라는 가사를 혈서로 썼다고 전해온다.
진주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기생이 있다.
바로 매국노를 꾸짖은 진주 기생 산홍(山紅)이다
구한말의 시인 ·학자 ·우국지사인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의『매천야록(梅泉野錄)』 에 “진주 기생 산홍(山紅)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도 잘하였다. 이때 을사오적의 하나로 지목되는 매국노 이지용(李址鎔)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산홍은 사양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5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첩이 비록 천한 기생이긴 하지만 사람 구실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이지용이 크게 노하여 산홍을 때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진주 출신 작곡가 이재호씨(1919-1960)는 노래로써 산홍을 애타게 찾기도 하였다. 

산-홍아 너만-가-고 나는 혼자-버-리-기-냐 
너---없는 내가-슴-은 눈오는 벌판이다 
달없는 사막이-다 불 꺼진 항---구-다 

이재호씨 가 1940년 태평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세세년년’이란 대중 가요의 일절이다. 가수 진방남이 구수하게 불렀을 이 노래 가사 중, 나를 혼자 버리고 무정하게 떠난 산홍이 도대체 누구길래 너없는 내 가슴은 눈오는 벌판이요, 달없는 사막이요, 불꺼진 항구라고까지 말했다.
글도 잘 쓰고 얼굴도 예쁜 진주 기생 산홍이 이지용의 첩이되길 거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으며 기생들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일이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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