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의 6.25일기, 후대 위해 영문판으로 냈어요”

VA 김기봉 박사, ‘역사 앞에서’ 영문판 발간
사학자 김성칠의 한국전쟁 일기 한국어판 나온 후 29년 만에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6.24 11:30 의견 0
한국어판 ‘역사 앞에서’와 영문판 ‘A Korean War Diary: A Historian in a War’. 원내 사진은 김기봉 박사.

우주 항공 공학자인 김기봉 박사(77, 맥클린 거주)가 부친의 6.25 일기를 묶은 책을 영문판 ‘A Korean War Diary: A Historian in a War’로 펴냈다. 부친인 김성칠 선생의 일기를 엮은 유고집 ‘역사 앞에서’(창비 간)의 번역본이다. ‘역사 앞에서’는 1993년 초판 1쇄가 나온 후 15쇄(2007년)까지 찍어낼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이번 영문판은 김 박사가 지난 4년간의 번역 작업에 몰두한 결과의 산물로 한국어판 출간 29년 만이다.

김 박사는 “아버지의 일기책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두 딸과 후세대를 위해서였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자신의 뿌리가 궁금해질 때 답을 얻길 바라는 마음, 한국의 현대사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한국전이 터진 1950년 6월25일부터 1951년 4월8일까지의 기록을 담은 ‘역사 앞에서’는 기존의 저서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한국전쟁을 조명했다. 6.25전쟁이라는 가혹하고 양극화된 환경 속에서 중도주의적 지식인이 쓴 일기다. 전쟁의 고통과 좌절 속에서 객관적이고 양심적인 마음을 가진 한 사학자의 생생한 삶이 적혀 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을 잔잔한 언어로 묘사하며 극도의 좌우 대립과 동시에 전쟁의 참상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드러냈다.

전쟁이 났을 때 5세 꼬마였던 김기봉 박사는 “너무 어려 자세한 기억은 없으나 식구끼리 온기를 나누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번역하는 4년간은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한 유년시절로의 시간여행이었으나 아버지의 신산한 삶이 느껴져 가슴 아프고 참 쓸쓸하기도 했다”고 되돌아봤다.
역사학자 정병준은 “이 일기는 1950년 6월부터 12월까지, 서울과 정릉이라는 서울 교외에서, 서울대 교수라는 최고 엘리트 집단에서, 중도파이거나 늘 회의하는 지성인의 입장에서, 가솔 4명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겪는 한국전쟁 전반기를 그리고 있다.”고 평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지나간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기억들을 간직해야 할까. 전쟁은 이념적 이분법을 강제한다. 우리 안에 도사리는 적개심을 부추기며, 결국 생각과 삶을 모두 파괴하고 만다. 이 책이 안겨주는 기억의 사회학적 메시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선 평화에의 염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졸업 후 1969년 유학으로 도미해 버클리 대에서 엔지니어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기봉 박사는 미 국방부에서 근무했다. 80년대 중반에 한국의 KAIS(현 카이스트)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초창기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에서 총무 등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버지니아 비엔나의 컨설팅 회사 ‘어드밴스드 에너제틱스 리서치’ 대표로 있다.
책은 아마존에서 하드 카피와 킨들(kindle)로 판매되고 있다.
문의 (703)727-4396
kkim.a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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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선생(1913-1951)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대구고보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소위 ‘대구학생 비밀결사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1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역사학을 전공한 사학자로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조선역사’, ‘동양사개설’과 역서로 ‘용비어천가’ ‘열하일기’, 펄 벅의 ‘대지’ 등을 냈다. 1951년 38세에 타계했다.

<워싱턴 한국일보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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