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앤틱 수집은 일종의 보물찾기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8.10 16:36 | 최종 수정 2022.08.17 09:55 의견 0

어릴적부터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많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사주를 깊이 믿지도, 아주 부정하지도 않지만 내게 역마살이 있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와서 대학을 다녔고 한국일보에 입사했습니다. 기자 시절 취재차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그렇다 치고. 스페인 연수와 브라질 상파울루 상주 중남미 특파원 생활을 마친 뒤에는 한국일보 본사로 복귀한 뒤 대구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이후 뉴욕 - 시카고 - 콜로라도 덴버 - 한국 분당 - 업스테이트 뉴욕의 턱시도 - 다시 시카고에서 살다가 2020년 11월, 20년만에 한국 영월로 영구 귀국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동안 주말이나 공휴일을 집에서 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같습니다. 주말 가운데 미주 한국일보 행사가 있거나 서울서 손님이 오면 어쩔 수 없었지만 나머지 날들은 세상이 두 쪽 나도 앤틱 샵을 찾아 다녔습니다.
신년 초는 물론이고 미국인들이 가장 중요한 명절로 생각하는 추수 감사절(Thanks giving day), 신년초에도 '고물 수집(?)을 하러 헤맸으니까요.

사는 곳을 수시로 옮아다닌 것은 물론이고 주말조차 앤틱을 찾아 팔랑개비처럼 돌아다닌 것은 틀림없이 내 사주에 들어있다는 역마살 탓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이들은 추수 감사절이나 신년 초에는 앤틱 샵이 문을 열지 않는 것으로 알고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날도 고객에게 손짓하는 앤틱 샵과 앤틱 쇼 행사가 있습니다.
신년 초에는 뉴욕 로어 맨하탄에 문을 여는 앤틱 샵이 있습니다. 어퍼(upper) 맨하탄에 가까운 넓은 건물 지하에는 괜찮은 수준의 앤틱 플리마켓도 열립니다. 추수 감사절 경우 주로 고급 호텔 볼룸을 빌려 앤틱 쇼가 진행됩니다. 뉴욕뿐만 아니라 타 지역 역시 마찬가집니다.

만약 누가 시켜서 매 주말 앤틱을 구하러 다니거나 업무로 그렇게 했다면 불평이 컸을지 모릅니다. 때로는 엄청난 눈이 내려, 길에는 제 차만 달릴 때도 많았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닦기 위해 윈도 브러시가 미친듯이 움직여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과 의무적으로 하는 일은 그만치 큰 차이가 나는 모양입니다.

사실 앤틱 수집은 중독성이 무척 강합니다. 도박이나 약물 중독도 치유가 힘들다고 하지만 앤틱에 한번 빠져도 헤어나기 힘듭니다. 앤틱 이벤트장에 가면 걷기도 힘들어 하는 고령자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숨이 차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휠체어에 걸고서까지 앤틱을 구하러 오는 노인들도 가끔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앤틱을 수집하러 다녀야 하는가하고 말입니다. 이제는 이해를 넘어 나도 어쩌면 힘이 남아 있는 한까지는 고물을 찾으러 다니지 않을까하고 속으로 웃곤 합니다.
나는 그래도 중독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게 바로 앤틱 수집이라고 주장합니다. 건전하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몰랐던 세계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구해온 물건들을 닦고 손질할 때 느끼는 행복감이 가장 큽니다.

<소규모의 Antiques Show>

아무리 작은 규모의 앤틱 쇼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류는 너무나 많습니다. 생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희안한 물건들이 눈앞에 나타나곤 합니다. 특히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앤틱은 18~19세기 혹은 20세기 초, 우리 한국인에게는 없었던 문명의 이기류입니다. 카메라, 영사기, 영상물, 플레이어 피아노, 신문, 잡지, 스포츠 용품 등만 보면 가슴이 마구 뜁니다. 그런 것들을 구하고 나면 내용을 좀더 세세하게 살펴보고 싶어 귀가길을 서두르게 됩니다.
보통 하루에 들릴 수 있는 앤틱 쇼는 대부분 한 군데, 많아야 두 군데에 불과합니다. 두 군데 앤틱 쇼를 하루에 소화하려면 우연찮게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행사가 열려야만 가능합니다.

<우연히 발견한 유명 작가의 작품>

어느해 연말 하루는 뉴욕 롱아일랜드 서폭 카운티에서도 동쪽 끝 어느 고교 강당에서 그릇 전문 앤틱 쇼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궂은데다 거리도 멀고 더구나 그릇류만 전시 판매된다기에 큰 흥은 나질 않았습니다.
넓디 넓은 앤틱 쇼장을 몇차례나 돌고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여긴 순간, 생각지도 않았던 작품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학창 시절, 분치기 초치기로 보았던 문제가 시험에 나왔던 것처럼 얼마전 알게 되었던, 작고한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 유명 식기류 작가의 애나멜 커피 팟 작품

그릇에다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장식한 기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작가로 식기류를 몇차원 높은 예술작품으로까지 승화시킨 이의 제품이 말입니다. 유리와 은을 매치한 크고 작은 접시류 7점, 금문양을 가진 길고 둥근 유리병,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애나멜 포트 등. 그 작가의 작품 가운데 친필 사인이 새겨져 있는 것은 수작으로 꼽히는 귀중한 것들입니다.

<미국 유명 식기류 작가의 애나멜 커피 팟 작품>

사실 미국 식기류 가운데 제작 예술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대부분 제작사의 로고나 상표만 인쇄돼있을 뿐이지요.
속으로 무척 흥분이 되었지만 가급적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그 샵에 닥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값을 물어 보았습니다. 작가의 유명도에 비해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을 제시합디다. 부르는 가격으로 봐서 샵 주인은 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앤틱 가게 주인이 그렇게 전문 지식 없이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나 하고 이상하게 여겨지지요. 그런데 앤틱 가게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문 지식 외에 의외로 일반 상식조차 다소 모자라는 이들 역시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전설적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상태와 크기가 아주 좋은 스틸 사진을 구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막 돈을 지불하기 직전 나타난 앤틱 샵 주인의 아버지가 귀한 사진이라며 딸에게 팔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몇 년전에는 유명 여배우 브룩 실즈의 아주 젊었을 적 사진을 샀습니다. 지금은 나이 들고 예전에 비해 미모가 바랬지만 사진 속 실즈는 배우로 데뷔하던 무렵이나 직전의 애리애리하고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샵을 지키고 있던 40대 남자 사장이 그 사진을 팔면서 내게 뭐랬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요?”.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사진 속 여자가 예뻐서 산다”고만 말하고 값을 치른 뒤 도망치듯 나와 버렸습니다. 혹, 샵 주인의 마음이 변해, 팔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샵 주인의 '무식'이 내 탓은 아니지만 나 역시 '도둑놈 심보'가 발동됐기에 나름대로 헐값으로 작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요.

<앤틱 쇼장에서 흥정은 폐장 직전이 가장 유리>

식기류 전문 앤틱 쇼에서 만난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결코 쳐다보지 못할 정도가 아닌 가격이 제시되었습니다. 역시 폐장 직전의 흥정은 바이어인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더군요.

이야기가 다소 옆으로 빗나갑니다만 미국 상거래에서는 바이어보다는 셀러 위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 처음와서 이같은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상인들 가운데는 구매자가 당초 가격에서 얼마를 깎자고 하면 오히려 그 차이를 더 붙여 부르는 꼴통들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몇차례 밀고 당기기를 했습니다. 결국 나로서는 만족할 만한 가격을 제시받았습니다. 흥정 중에 혹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구매자가 나타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희귀 서적을 흥정을 다 끝내고 돈을 막 지불하려는 순간 나타난 싸가지없는 인간에게 빼앗긴 뼈아픈 경험도 있습니다. 이 바닥에서는 ‘돈놓고 돈먹기’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1달러라도 더 쳐주는 이에게 물건을 넘기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돈을 지불한 뒤, 샵 주인이 포장을 하고 있는데도 마음이 불안합디다. 한시라도 빨리 물건을 들고 나가야 될 것같아 포장도 거들었습니다. 물건을 싸는 제 손도 가슴만큼이나 떨리더군요.

그전까지 ‘그릇 보기를 돌같이’ 해왔던 저도 이때만큼은 그릇 작품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후 저의 앤틱 수집 방향도 약간은 궤도 수정을 했습니다.

혹자는 앤틱 수집은 돈만 있으면 됐지 공부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들 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평소 관련 전문 서적 등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습득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구한 식기류 작가의 작품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앤틱 수집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쯤 얘기가 흘러오면 이제는 그 유명 작가의 이름을 밝히는 게 순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이름 밝히기를 당분간 유예하고자 합니다.
‘제 밥그릇을, 제 영역을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몸사림’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기우겠지만, 그 작가가 누군지 밝혀져 그에 대한 관심이 혹 지나친 투자로 이어져 부작용이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섭니다. 우리 한국인들 가운데는 한번 “이거다” 싶으면 온통 그쪽으로 쏠려 버리는 경향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의 주관적 판단과 취향에 따라 구매가 이루어진 그 작가의 작품이 쏠림 현상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경우 장기적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도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서는 한국인들의 지나친 '쏠림' 현상을 가끔 목격합니다. 어느 학교가 좋다는 소문만 나면 그 학교는 몇 년내 한국 학생들로 넘쳐납니다. 모 아울렛 몰은 처음 제가 뉴욕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쇼핑객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 현상이 감안돼 일본어 안내 방송과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할인 쿠폰이 제공되고 있더군요.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뒤 한국어와 한국인들도 그같은 대우를 당당히 받게 됐습니다. 한국 관광객들, 뉴욕 한국인들 사이에서 그 아울렛몰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들로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그 아울렛몰 몇몇 특정 매장 경우 가장 많은 고객이 한국인들입니다.

물론 이를 부정적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쏠림 현상이 지나치거나 적잖은 부작용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 저의 졸필로 인해 특정 작가의 작품이 객관적 가치 이상으로 팔리는 현상이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극단적 쏠림 현상만 없다면 저는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앤틱에 관심 갖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지식, 또 다른 세계를 아는 기회도 되지만 건전한 투자 차원도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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