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실버 홀릭 만드는 마법의 숫자 925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8.25 18:34 | 최종 수정 2022.08.25 21:28 의견 0
유리에 은으로 무늬를 넣은 접시

미국 앤틱 쇼, 앤틱 플리마켓, 앤틱 샵에 가게되면 보석 감정용 확대경과 자석을 휴대하는 게 좋습니다. 특정 보석이 진품인지 여부는 물론이고 앤틱에 새겨진 아주 작은 글씨 혹은 마크 등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보석 감정용 확대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석 감정용 확대경이라고 해서 뭐 그리 대단한 물건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도수높은 볼록렌즈를 고리 안에 집어넣고 있다 특정 물건을 자세히 볼 때는 볼록 렌즈를 빼낸 뒤 이 자리에 검지를 끼울 수 있도록 된 물건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돋보기로도 앤틱을 관찰할 수 있지만 이는 '초짜 앤틱 수집가' 혹은 '촌티나는 앤틱 콜렉터'로 우습게 보이게 되므로 피해야 할 행동입니다.

그러나 제 경우, 감정용 확대경을 가지고 다니지만 앤틱 판매장에서는 금이나 다이아몬드 등 고가 귀금속류는 가급적 구입하지 않습니다. 보석류는 값도 비싸지만 제가 진위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석은 가끔 앤틱이 금속제인지 아니면 금속을 흉내낸 비철금속제인지를 판별해야할 때 필요하므로 휴대하는 것을 강추합니다.

반면 진주 제품은 천연인지 인조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기에 천연인 것은 별로 주저하지 않고 구입하는 편입니다. 구별법은 간단하며 정확도가 거의 100%라고 봅니다. 진주 제품은 부스 주인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재빠르게 이빨로 슬쩍 긁어 봅니다. 물론 진주에 흠집이 생기거나 상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지만 번개처럼 행동해야지요.

이빨과 마찰할 때 아주 매끄러운 촉감이 나면 인조 진주입니다. 약간의 저항과 함께 까끌하다는 느낌을 주면 천연 진줍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금속 앤틱은 바로 은제품입니다. 은은 금에 비해 값이 훨씬 싸지만 세심하게 닦고나면 아주 매력적이고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특히 ‘925’ 혹은 ‘스털링 실버’(Sterling Silver)란 마크가 새겨져 있으면 그 은 제품에 대한 애정은 한층 배가됩니다.

<20세기 초반부터 국제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은 인증 숫자>

사실 ‘925’나 ‘sterling silver’는 단순한 숫자와 단어에 불과하지만 은 제품에 새겨진 이들 마크는 저를 포함한 매니아들에게 매번 마법을 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이들 마크를 확인하고 싶은 잠재적 욕망 때문에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니지만 은 제품을 보면 사족을 못쓰는 ‘실버 홀릭’(Silver Holic)이 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925’는 특정 제품에 은 성분이 92.5% 함유돼있다는 표시이며 ‘스털링 실버’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925마크는 1720년 아일랜드가 가장 먼저 사용했으며 영국이 뒤를 이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은 925 인증제 전에 제품에 950를 찍은 것도 있으나 이는 무척 드물며 ‘잉글랜드 실버’로 불립니다. 미국서는 은 제품에 800, 830, 835, 900으로 표기하다 발티모어, 메릴랜드 지역 은 장인들이 화폐주조국의 지시에 따라 1814~1830년 메이커 데이트 시스팀을 도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1860년대 이후 925를 대부분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국제적인 인증제가 통용되기 전에는 나라마다 표기하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예전 제품에 84, 88, 91이란 숫자나 아주 희귀하게 '페벌제이'(Fabergé)로 표시돼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숫자는 은의 순도를 의미합니다. 반면 페벌제이는 계란 껍질에 화려하게 금을 장식한 부활절 달걀(Easter Eggs) 만들기로 유명한 Peter Carl(1846~1920)이란 금세공 기술자 겸 보석디자이너가 제조했다는 의미로 이 표시가 들어간 은 제품을 구하면 이는 로또에 당첨된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유럽 국가들은 1920년까지 830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반도국들은 1927년 덴마크가 925를 수용하기까지 830을 고집했으며 이보다 은 함유율이 높았음에도 고율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830마크를 찍었습니다.

유럽 은 제품 가운데 '916', ‘H’, '916H'로 표기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는 핀란드 산으로 역시 숫자는 순도를 의미하며 그 나라 말로 은을 뜻하는 Hopea란 단어의 첫 글자입니다.

가끔 코인 실버(Coin Silver)라고 표시된 것은 은 90%, 구리 10%로 되어 있는 은 합금을 의미합니다.

가장 자주 발견되는 실버 플레이트(Silver Plate)는 니켈 혹은 동에다 얇은 은박을 입힌 것을 의미합니다. 가끔 콰드러플(Quadruple)이나 트리플(Triple)이 쓰여져 있는 것 역시 실버 플레이트입니다.

실버 플레이트는 925에 비해 아주 쌉니다. 그러나 같은 실버 플레이트 제품이라도 EPNS(ElectroPlated Nickkel Silver) 혹은 EPWM(ElectroPlated White Metal)이라는 마크가 찍힌 것은 대접을 달리 해주어야 합니다. 이는 영국 세필드(Sheffield)에서 만든 독특한 실버 플레이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품들은 세공 기술자가 직접 손으로 평평하게 편 은을 구리에 입힌 독창적 스타일로 세필드 실버 혹은 올드 세필드 플레이트로 불리며 콜렉터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실버 인증 마크와 숫자인 sterling silver, 925


<영국 식민시절 미국은 은제품을 재산 보존 수단으로 삼아>

미국이 은 제품 생산을 시작한 것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입니다. 영국에서 은 세공 기술을 배운 리차드 샌더슨(1608~1693)이 1638년 신천지 미국에 온 뒤 존 헐(1624~1683)과 함께 은 세공 사업에 뛰어듭니다. 특히 존 헐은 보스턴에서 화폐 주조를 하면서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당시 영국은 미국에서 화폐 주조를 금지했으나 1652년 매사추세츠 주의회가 독자적인 은화 주조를 의결해 헐은 지금도 유명한 파인 트리 실링을 도안하고 만들었습니다.

이후 1645년, 미국서 태어난 인물로는 첫 번째 은 세공기술자가 된 제레미 두머가 실버 비즈니스를 이끌며 미국에서 은 제품 전성기를 견인해갑니다. 당시 미국은 식민시대로 치안도 썩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돈을 간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절도범들이 쉽게 들고 나가지 못하는 은괘나 큰 티팟, 보울, 서빙용 접시 등을 갖는 게 돈을 숨기는 것보다 낫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은 제품이 생산됐습니다. 심지어는 포도송이 따기도 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초 재산적 가치 차원에서 대형 위주로 만들어졌던 은 제품들은 이후 양념통, 작은 잔, 우유 컵, 스푼, 기념품 등으로 다양해집니다. 은 제품 가운데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한 것은 스푼입니다. 실버 스푼은 처음에는 기술 부족으로 보울 부분과 핸들 부분이 따로 만들어 붙여졌다가 1800년 이후에야 하나로 제작됐습니다. 핸들은 당초 일직선이던 것이 1730년 이후 요즘 모습처럼 휘어졌습니다.

스푼과 함께 짝을 이루는 포크는 13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뒤 16세기 이탈리아, 17세기 영국으로 소개됐습니다. 포크는 당초 두 개의 날만 갖고 서브할 때만 사용되다 개인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630년 영국에서 입니다.

미국 앤틱 그릇류 가운데 은 제품이 유럽에 비해 질과 양적으로 앞서는 것은 이처럼 식민시대 때부터 이어진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이외에 자베즈 고람(Jabez Gorham),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라는 탁월한 은 제품 비즈니스맨들이 등장한 것도 미국 관련 산업이 크게 번성하는 결정적 원인이 됐습니다.

고람은 부모로부터 은 세공 기술을 배운 뒤 1818년 Gorham &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Gorham Manufacturing Company로 이름 바꾸면서 은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첫 번째 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이 회사는 19세기 중반까지 접시, 내프킨 링 같은 실버 플레이트 제품을 주로 생산하다 남북전쟁(1861~1865) 이후 판매망을 미 전역으로 넓힙니다. 고람사는 1900년대 초반부터는 기술자들이 직접 해머로 두드려 제품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으며 이는 1930년대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몇몇 패턴은 유사한 핸드 메이드 방식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그러나 1982년 Texton에 팔렸습니다.

<티파니사, 팬시 회사로 출발했다 세계적 보석 메이커로>

은 제품 뿐아니라 고급 보석을 제조,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 ‘티파니’사는 당초 팬시 및 문구용품 회사로 출발했습니다. Charles Lewis Tiffany 와 James B. Young이 1837년 회사를 설립했으나 16년 뒤 티파니가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Tiffany & CO.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당시 티파니 앤 컴퍼니는 타사의 고급 금, 은 등 보석과 데코레이션 제품을 팔면서 변신을 시도합니다. 고객들도 아브라함 링컨, 마크 트웨인, 반드빌트가, 윌리암 랜돌프 허스트 등 정치, 경제, 문화계의 쟁쟁한 유명인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티파니 앤 컴퍼니가 자체 브랜드를 제작, 판매한 것은 1848년부터이며 1870년대 일본 스타일이 인기를 끌자 1871년부터 비슷한 이미지의 오더번(Audubon) 패턴을 처음 만들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오더번은 자연주의자이자 새들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John James(1785~1851)를 말합니다.

그러다 창업자의 아들로 능력있는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Lewis Comfort Tiffany가 회사를 물려받은 뒤 몇 단계 더 도약합니다. 지금도 경매 등에서 엄청난 액수로 팔리는 램프, 도자기, 은제품 등으로 제품을 다양화했으며 1902년부터는 보석 디자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오늘날과 같은 최고급 브랜드로 성장하는 밑바탕을 마련했습니다.

티파니사 역시 고람처럼 주인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 이름은 전 세계인들 특히 보석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외에서 은으로된 악세사리를 구입할 일이 있으면 꼭 925나 스털링 실버라는 표시가 되어있는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체크; 미국은 모든 상거래가 체크(수표)로 이루어집니다. 은행에서 구좌를 개설하면 은행은 개인 이름이 인쇄된 체크 북을 발행해 줍니다. 어떤 물건을 사거나 남에게 줄 돈이 있으면 현금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체크에 액수를 기재하고 그밑에 자신의 사인을 합니다. 체크를 받은 사람은 그날이든 며칠 뒤든 이 체크를 자신의 은행 구좌에 집어 넣습니다. 그러면 체크를 받은 사람의 은행 구좌는 발행자의 구좌에서 돈을 가져오게 됩니다. 물론 체크를 발행할 때는 그만큼의 잔고가 남아 있어야 겠지요. 만약 잔고가 없어 체크가 승인되지 않으면(이를 바운스난다고 합니다) 체크 발행자의 신용(크레딧)에 금이 갑니다. 미국서는 크레딧이 나쁘면 사회생활 하는데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므로 크레딧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신경을 씁니다.

[출처] <IX>실버 홀릭 만드는 마법의 숫자 925|작성자 ikhisto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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