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이 더 활기찬 삶을 살게 한다”

8년 임기 마친 지미 리 MD 특수산업부 장관
미 진출 기업 대상, 비즈니스 플랫폼 창업
투자·정보·정부 로비·정책 자문 등 통합처리
“한인사회, 변화에 걸맞는 새 리더십 필요”

김인규 기자 승인 2023.02.02 12:13 의견 0

겨울비 내리는 1월의 어느 오후, 1970년대 재즈가 흘러나오는 버지니아의 한 다이너에서 지미 리 전 장관을 만났다. 지난달 18일 새로운 메릴랜드 주지사가 취임하면서 래리 호건 전 주지사와 8년을 함께 일했던 리 장관도 공직에서 물러났다. 13살에 미국에 와서 스포츠카와 재즈기타에 심취했던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버지니아 주 상무부 차관을 거쳐 메릴랜드 주 특수산업부 장관으로 어느덧 10년 넘게 정부에서 일했다. 일부에서는 선거 출마를 예상하기도 했으나 공직에서 벗어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주 정부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래리 호건 전 주지사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다. 그는 기존의 정치인들이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해냈다. 세금인상 없이 정부 재정을 안정시켰으며 공화당이면서도 극단으로 치우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당보다 메릴랜드 주민들이 우선이었다. 메릴랜드의 역사가 그를 평가할 것이다.
또한 유미 호건 여사를 통해 한인사회가 주 정부에 한층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큰 혜택을 받았는지는 앞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호건 전 주지사 부부의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지금은 출마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준비도 부족하고 지금 저의 관심사는 첨단 기술이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배움을 통해 얻는 즐거움, 새로운 도전이 더욱 활기찬 삶을 살게 한다.

-새로운 도전은 무엇인가?
▲항해를 시작하며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로벌 국제화의 바람은 이제 로컬 현지화로 바뀌었다.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생산해야 하고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다. 공장을 설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 유치, 정부 지원 등 현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고 관련 법규나 정책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분야에 걸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 파트너로서 국제적인 플랫폼을 통해 사업 아이템에서부터 빅 데이터를 활용한 관련 정보 제공, 정부 로비 등 미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을 지원하려고 한다.

-현재 진행 상황은?
▲워싱턴 DC에 위치한 로비회사 리빙스턴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또한 전 세계 기업에 빅 데이터를 제공하는 정보업체와도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첨단 기술 기업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을 상대로 사업 아이템과 투자 계획 등을 자문해주고 관련 정책에 대한 정부 로비, 친환경 정책 등 모든 것을 통합해 처리할 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일했고 은행, 투자회사, 정보기술 업체 등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이제 곧 새로운 회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인, 소수계 마이너리티라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다른 누구보다 심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준리 태권도의 설립자 이준구 그랜드마스터가 나의 양아버지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1972년 미국에 왔으나 영어도 못하는 13살 중학생은 주먹으로 학교를 평정했다.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덕분에 당시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강했으며 아시안 학생들을 놀리는 놈들은 가차 없이 두드려 팼다. 수차례 경찰서에 불려갔으며 정학을 맞기도 했지만 그렇게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더욱 강해지는 법을 알게 됐다. 짧은 방황을 끝내고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을 확인했다. 그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회사도 운영하고 정부에서도 일했지만 소수계의 한계는 여전하다. 우리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백인 파워를 조금씩 깨뜨려 나가는 것이다. 흑인 사회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멀었지만 떨어지는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듯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한인사회에 대한 바람이나 조언을 한다면
▲197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한인사회는 놀라울 만큼 성장했다. 간혹 한인단체들의 의견충돌,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이 또한 발전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으면 충돌하지도 않고 그렇게 부딪혀야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단체장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리더십도 다음 세대로 흘러가야 한다. 변화하는 세계에 걸 맞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고 단체의 리더는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과연 지금의 한인단체장들이 성적표를 받는다면 몇 점이나 받을지 궁금하다.

-앞으로의 바람 또는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오는 8월이면 67세가 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후회가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오늘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어려웠던 시절, 후회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러한 과거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후회나 아쉬움 보다는 감사가 먼저다.

나의 바람은 후손들이 나를 ‘좋은 사람’(Good Man)으로 기억해주길 바랄뿐이다. 좋은 일도 삶의 한 부분이고 나쁜 일도 한 부분이다. 겸손하게 배우며 오늘을 살아가자.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깨우치면 앞서 갈 수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먼저 미국 사회를 경험했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먼저 배우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내 또래의 사람들이 은퇴를 준비할 때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욕심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게 좋다.

He is…
1956년생인 지미 리(한국이름 이형모) 전 장관은 13살 때 버지니아 알링턴으로 이민 왔다. 워싱턴-리 고등학교(현 워싱턴-리버티)를 졸업하고 부동산 에이전트,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활동하다 남들보다 2년여 늦게 메릴랜드 대학에 입학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직접 벌었고 전공은 회계학이었지만 당시 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1세대 프로그래머로 IT기업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으며 회계학을 전공한 덕분에 돈의 흐름도 잘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존스홉킨스대, 조지타운대에서 수학했으며 버지니아 주 상무부 차관, 메릴랜드 주 특수산업부 장관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볼티모어에 있는 모건 스테이트대, 로욜라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워싱턴 한국일보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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