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17-엉뚱하게 역학 고수가 된 여자

김인규 기자 승인 2021.08.06 14:03 | 최종 수정 2021.08.09 00:13 의견 0

교사직과 홈 패션 사업을 포기한 것 외에 아내는 물론이고 나 역시도 추후 후회가 됐던 아내의 중도 포기 직종이 또 하나 있다. 너무 엉뚱한 분야라 할 수 있는 역학 연구였다.

아내는 어느날 정다운 스님이 쓴 책을 구입해보고 나서 역학에 맹렬한 관심을 보였다. 관련 전문 서적들을 몇 권씩 구입해 아주 진지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쉽게 그치지 않았다.

나는 가톨릭 교인이 그런 미신에 빠져들면 어떡하냐고 놀림반 진지함반으로 아내를 만류했다. 그러나 아내는 끄떡도 안했다. 오히려 역학은 미신이 아니라 통계를 바탕으로 한 과학이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시간이 꽤 지나자 아내의 역학은 제법 상당한 수준에 오른 듯했다. 먼저 우리 집안 식구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주를 내게 들려주곤 했다. 처음엔 아내의 사주 해석을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날이 갈수록 묘하게 끌려 들어가는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집안 식구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사주 해석은 점차 범위를 넓혀 동네 사람 등 지인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사주 풀이를 하거나 아무에게나 사주를 봐주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돈을 받으며 영업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시누이들과 전화로 얘기하다 자신도 모르게 불쑥 사주 얘기가 몇차례 나오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까지 알게 됐다.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큰 며느리가 사주보는 무속인(아내가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아버지는 사주 풀이 역시 신들린 무당이 하는 행위로 알았다)이 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아내가 자주 우울해하고 몸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욱 아내의 역학 공부를 단속했다.

“네 몸이 안 좋아진 것도 다 그것 때문이다. 사람이 천기누설을 하게 되면 반드시 몸을 상하게 된다. 앞으로는 절대로 사주를 보지 말아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래도 워낙 역학의 매력에 빠진 아내는 아버지는 물론이고 나몰래 관련 책을 구입, 자주 연구하는 듯했다. 아버지도 이런 사정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대구에 계셔서 더 이상 단속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1989년 내가 스페인 연수를 떠나게 되자 아버지는 전격적으로 상경, 우리집에 있던 사주 관련 책들을 몽땅 압수해 버렸다. 워낙 전격적으로 우리집에 오셨기에 아내는 이 책들을 숨길 수도 없이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다.

물론 역학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이를 맹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미신으로 치부해버리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역학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사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했다.

책자 압수 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역학을 멀리했던 아내는 IMF가 터지고 난 뒤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일보 대구 경북 취재본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경산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던 역학 전문가 김경환 교수를 알게 됐다. 어느날 우연히 아내에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됐다고 얘기하자 아내가 김 교수와 꼭 좀 통화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별 뜻없이 두 사람을 전화로 연결시켜 주었더니 그때부터 수시로 의견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특히 김 교수는 아내의 사주 풀이 실력이 상당히 고수라며 일반 시중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윗길이라고 놀라워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한 두 단계만 더 공부하면 완전한 고수가 될 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더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아내가 더 이상 사주에 빠져들지 않도록 단도리를 한데다 내가 한국일보 브라질 상파울루 특파원으로 가는 바람에 사주와도 인연이 끊어졌다.

나는 사주가 사람의 운명을 100% 정확하게 예측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신에 불과할 뿐 아니라 영 터무니없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일부는 머리에 새겨두었다가 나름대로 방책을 마련해두는 것 역시 현명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소름끼치는 예를 들어보면. 나의 두 누나들이 생각보다 일찍 매형들과 사별할 것이란 예측을 아내로부터 몇차례나 들었다.

“당신 쓸데없이 재수없는 말 함부로 하지마. 특히 누나들한테 이런 소리가 들어가면 그때는 나는 가만 안 있을테니 그리 알아”.

“내가 당신외에 누구한테 이런 소릴해요. 그렇다는 건데......”

몇 년 뒤 우리가 뉴욕으로 오고난 얼마 뒤 두 매형들이 갑작스레 차례로 돌아가셨다. 큰 매형은 고대 경영학과 59학번, 둘째 매형은 고대 교육학과 65학번이어서 형이 없는 내게 두 매형은 대학 선배이기 전에 친근한 형이자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두 매형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는 차라리 누나들에게 집사람이 했던 걱정반의 예언을 귀뜸해 미리 대비책을 세울 수는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브라질 특파원으로 있을 동안 아내는 “영화(아들) 초년 운에는 당신하고 이별 수가 나와요. 이 이별수를 피해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라고 걱정스레 말하곤 했다.

그러다 귀국후 얼마 있다 뉴욕 한국일보에서 근무하기 위해 나와 아내는 뉴욕으로 왔다. 반면 아들은 당시 서울 가톨릭의대 학생이어서 미국 의대로 편입이 안돼 우리와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와 아들의 ‘안좋은 이별수’는 브라질 거주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뉴욕과 서울 거주라는 결과로 절묘하게 대체해 나간 셈이다.

꽤 오래전 아내는 농담하듯이 내게 이렇게 슬쩍 말한 적도 있었다.

“말년에 당신 상처할 운이 있어요”

당시 나는 이 말을 자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시험하거나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말도 안돼는 소리마시오. 나는 당신이 어찌 잘못되면 바로 다음날 새장가 들거니까. 그러니 그런 방정맞은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마시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반응에 아내는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펄쩍 뛰면서 “당신이 잘못되면 나도 바로 당신 뒤따라 갈거니까”라고 아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당시로서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잔인한 농담으로 받아넘긴 나의 무신경이 이제 와서 가슴을 치게 한다.

아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내게 한 그말이 어느정도 현실화할 것인지를 짐작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나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던진 일종의 농담 성격의 말이었을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차라리 아내가 역학을 더 깊이 공부하도록 놔두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역학의 고수가 되어 자신의 떠남을 극복하거나 비켜갈 수 있는 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수도 있지나 않았을런지.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얌전하면서도 때로는 이와 딴판으로 독특한 사고와 방향 제시로 나를 울게 웃게 했던 아내. 그 팔색조 매력을 언제 다시 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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