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1일 일요일 점심 무렵. 방안에서 웹사이트에 기사를 올리다 배가 고파 영월읍에 있는 ‘맘스 터치’ 햄버거 가게로 갔다. 허기를 해결하기 보단 공허한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기 위해서라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리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게 안에는 오직 나 혼자.
시킨 불고기 버거 맛은 좋았으나 자연스레 현재의 내 모습이 돌아보게 됐다.
아내가 갑작스레 저 세상으로 가기 전이던 시카고 시절. 우리 부부는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시카고 스코키 소재 ‘색 버거’ 가게에 갔다.
버거 2개, 콜라 2잔, 포테이토 한 봉지를 먹곤, 고서랄까 오래된 책을 파는 ‘book sale’ 행사장으로 향했다. 일요일 이같은 일정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년 내내 반복됐다.
아내나 나나 골프를 치지 않는데다 별다른 취미가 없었기에 일요일엔 책이나 앤틱을 구하러 다니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내가 먼저 떠나고 난 뒤 강원도 영월로 영구 귀국한 나에겐 책과 앤틱들이 한편으론 골치 아프고 한편으론 가슴 아프고 또 다른 한편으론 자랑하고픈 무더기 짐으로 남아있다.
맘스 터치에서 처량하게 혼자 햄버거를 먹다보니 시카고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 눈과 머릿속에 들어왔던 장면들이 떠올라 씁쓸하고도 아릿한 생각을 들게 했다.
주말 미국 패스트 푸드 매장에 가면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들이 함께 자리에 앉아 있는 광경을 자주 접하곤 한다. 이들은 해피밀(어린이들이 포함된 가족들에게 제공되는 특별 세트 메뉴)에 따라 나오는 알록달록한 고깔 모자를 쓰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즐기는 광경을 자주 연출하곤 했다.
내 생각엔 어린이들의 부모는 나름대로 중요한 스케줄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조손간에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일부러 빠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손녀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았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핵가족제였으며 한국은 대가족제의 흔적이 남아있다고들 하지만 조손간의 아름다운 풍경은 오히려 한국보다 미국쪽에 더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생각에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이와는 반대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주로 남자 노인이 혼자 신문 등을 옆에 놓고 읽으면서 버거를 먹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기에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혼자 패스트 푸드점을 찾았을 것으로 짐작,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할머니 혼자 맥도널드에 와서 음식을 드는 모습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홀로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패스트 푸드 광경은 한국이나 미국이 거의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강원도 영월에, 아들 내외는 서울에 있고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애교많은 손자, 손녀를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쩌다 함께 만나 외식을 해도 내 옆에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리면서 내가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듯 주변인들은 나를 측은하게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월 맘스 터치에서 맛 뛰어난 버거 세트를 먹긴 했지만 아내와 함께 미국 패스트푸드점에서 안타깝게 바라봤던 광경들이 오버랩되며 내 마음을 후볐다.
그간 나는 10월하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떠오르곤 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10월31일, 10월의 마지막 날, 나는 ‘뜻모를 이야기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린 집사람이 못 견디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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