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앤틱 쇼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유명 작가의 그릇 작품들을 운좋게 구했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앤틱 수집은 보물찾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앤틱 쇼에서는 항상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쓴 웃음을 지을 때도 있습니다.
그릇 전문 앤틱 쇼에서도 동구권 작품들은 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작심하고 찾아보기도 했지만 쉽사리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동구권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크리스탈 제품은 자타공인 체코 것이 최상급이므로 인근 동구권 국가의 크리스탈, 도자기류도 상당한 수준일 것이라는 판단에서 였습니다. 이외 공산국가의 작품들은 과연 어떨까하는 단순한 호기심도 작용했습니다.
열심히 싸돌아다닌 덕에 몇몇 동구권 소품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독 것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오래전이지만 한동안 유럽에서 마이센(Meissen)이라는 최고급 도자기 제품을 생산해냈던 나라가 독일입니다. 서독과 단일국가였다가 철의 장막 속에서 60여년간 독자 노선을 걸었던 동독 제품들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졌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독 그릇류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자료도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하여간 한 앤틱 쇼에서 동독 것을 발견했습니다.
심상찮은 그릇을 발견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뒤집어 밑바닥 상표부터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무늬가 어떤지 어디 흠이 있지나 않은지를 체크했습니다. 동독 대표 선수 그릇의 바닥 상표를 보는 순간,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개의 화살이 서로 교차하는 상표!. 바로 ‘칼크 자기’(Kalk Porcelein)였습니다. 자그마한 몸매에 화려한 색깔. 나는 두말 않고 구입했습니다. 값도 생각보다 저렴했습니다. 좀 거창하게 얘기한다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드디어 현실화했다고 좋아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날 입양(?)한 애들을 정성껏 닦고 치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앤틱 족보를 꺼집어 냈습니다.
귀하게 구한 그 족보에는 이름꽤나 있다는 전세계 유명 앤틱 상표가 대부분 들어있습니다. 족보 속의 상표와 이날 산 칼크(Kalk) 커피잔의 밑바닥 상표는 유사했지만 분명히 달랐습니다.
진품 칼크 도자기의 상표는 두 개의 화살이 서로 교차하되 각각의 화살은 화살깃 3개는 위에, 화살촉은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밑에는 한 자리 내지 두 자리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짜 Kalk 도자기 상표
그러나 이날 구입한 Kalk는 화살이 서로 교차하는 것까지는 같았습니다. 그러나 화살깃이 4개씩 이었습니다. 더우기 화살 밑에 새겨진 숫자는 4자리였습니다. 한 마디로 칼크의 적통 집안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Kalk가 세계 최일류급 그릇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비싼 제품도 아닌만큼 짝퉁을 만들어도 큰 이득을 취할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회사 제품 가운데 각기 다른 종류의 상표가 찍힌 것들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앤틱 족보를 비롯 여러 자료를 조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마지막 갸냘픈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한 자료에는 There are a lot of designer knockoffs in the market.(시중에 가짜 명품이 많이 돌고 있다)는 주의 사항까지 붙어있는 걸로 봐서 짝퉁임이 명백해졌습니다.
내가 구입한 작품은 동독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50년대 독일, 일본 혹은 대만에서 제작돼 미국 등지로 팔려나간 가짜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아르나트는 칼크의 변형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명 메이커 마이센의 '교차 검' 마크, 로얄 빈 도자기에 사용된 '벌집' 마크 버전도 사용했습니다.
이 회사는 독일의 M.I. 험멜(Hummel) 수녀가 만든, 같은 종류의 제품들 가운데는 단연 최고인 벽걸이 장식용 접시, 피구린까지 짝퉁 제품을 만들어 팔았음이 밝혀졌습니다.
험멜 도자기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앤틱이므로 다음 기회에 이것만 특별히 한번 다루어 볼 생각입니다.
<앤틱 쇼의 불문율. '현 상태 그대로', '반품 교환 불가', '진위 여부는 구입자 책임'>
자,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그 물건을 팔았던 샵 주인을 만나 거칠게 항의라도 하고는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샵 주인이 유명 앤틱을 모르고 우리에게 팔았다가 뒤늦게 그 진가를 알았다고 우리에게 그 차액을 더 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착각하고 샀던 상품을 가지고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 앤틱 상거래에는 명문법이 아닌 관행이 존재합니다. 이 관행을 깨는 언행을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고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as is, no return, no guarantee가 바로 그것입니다.
‘as is’는 앤틱을 돈을 지불하고 샀으면 그만이지 살 때 못 보았던 흠집에 대해 뒤늦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의밉니다. 그러니 구입할 때 철저히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no return’은 어떤 이유가 돼서든 물건을 반납하고 돈을 되돌려받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앤틱과 교환을 요구할 수도 없다는 얘깁니다.
‘no guarantee’는 앤틱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판매자가 결코 보증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번 판 물건은 설사 그것이 진품이 아니라 할지라도 특별하게 사술을 동원하지 않는 한 판매자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풍토에서 내 스스로가 판단해 희희락락하며 구입했던 칼크 커피잔 세트에 대해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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