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방 단숨에 점령한 알루미늄 식기류>
요즘 한국에서 방짜 유기 식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건강에 좋은데다 멋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방문온 몇몇 지인들은 유기 수저 세트 등을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 진가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유기 제품이 얼마나 귀중하고 비싸게 대접받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당시 선물로 주신 분들께 미안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씀을 뒤늦게나마 올립니다.
겉이 스텐레스 스틸로 입혀질 만큼 홀대(?)받았던 유기가 재평가에 이어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는 것은 정말 반가운 현상입니다. 값어치를 제대로 몰랐거나 인정받지 못했던 우리의 전통 문물이 이제서야 평가받게 됐다는 현상 가운데 하나여서 기분이 좋습니다.
미국서도 최근들어 우리의 유기처럼 재평가를 받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알루미늄 식기류, 데코레이션 용품입니다. 우리로서는 잘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유기와 미국의 알루미늄은 두 재질의 값어치, 공정상의 노력, 예술적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비교가 되지 않는 게 사실 아닙니까.
다른 것은 다 제쳐 두더라도 우선 무게의 차이와 외양적인 품위면에서 유기가 월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외 두 금속의 역사성에서도 확연한 비교가 됩니다. 유기는 우리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나 알루미늄이 알려지고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습니다.
알루미늄이 한국에 처음이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는 1950년 6.25전쟁 이후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군대나 마찬 가지겠지만 모든 병사들의 휴대품은 가벼워야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루에도 수십km를 움직여야 하는 군인들 입장에서는 단 몇 kg이라도 가벼운 장비가 반가울 수 밖에요.
미군 병사 등을 통해 한국에 선을 보였던 알루미늄 식기류와 재질은 빠르게 한국 사회, 특히 가정 주부들의 사랑을 단숨에 독점했습니다. 유기에 비해 엄청 가벼운데다 열전도율도 뛰어나고 씻기도 편해 어머니들의 부엌 노동 강도를 상당히 줄여 주었습니다.
값도 비싸지 않은데다 겉모습도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자란 대구 지방에서는 알루미늄류 그릇을 ‘양은’ 혹은 ‘백철’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양은은 ‘서양의 은’, 백철은 ‘하얀 철’이란 의미입니다.
서양, 특히 미국 것은 모든 게 좋다고 여겼던 시절인 만큼 알루미늄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은 반미 성향을 가진 이도 많지만 친미가 대세를 이루고 미국 내지는 미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6.25 이후 시기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모르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장밋빛으로 봐왔고 선망했던 사례 가운데 하나가 ‘베사메 무초’란 노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훤칠한 미남에다 특이한 발성으로 인기를 끌었던 남자 가수 현인씨가 불러 대히트했던 ‘베사메 무초’란 노래 말입니다. 본래 멕시코 노래였던 베사메 무초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해 한국에도 소개됐습니다.
<알루미늄 인기, 미국 것이면 모든 게 좋다고 여겼던 시대적 상황에도 영향받아>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는 ‘나에게 키스를 많이 해달라’란 스페인어입니다. 그런데 현인씨의 노래 베사메 무초에서는 베사메 무초가 여인으로 둔갑합니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 무초,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 무초야 리라꽃같이 귀여운 아가씨. 베사메 무초야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이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 '키스를 많이 해달라'는 의미의 ‘베사메 무초’는 여인이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베사메 무초'는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한 무초 대사의 여동생이라는 소문까지 시중에 돌았습니다. ‘베사메 무초’ 아가씨는 금발에다 너무나 미인이고 착하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까. 그만치 그때는 외국의 문물에 어두웠고 무지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이었던 만큼 미국을 통해 들어온 알루미늄이 얼마나 인기를 끌었을지는 짐작이 가겠지요. 미국에 대한 환상까지 곁들여서 말이지요.
그러나 한국인들의 알루미늄 그릇에 대한 사랑은 열전도율 만큼이나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이후 혜성처럼 등장한 스텐레스 스틸 식기로 인해 전성기를 마쳤습니다. 특히 어떤 근거에서인지 모르나 ‘알루미늄 식기를 오래 사용하면 암에 걸리는 등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이 돌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이같은 소문에다 한때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던 탓에 알루미늄은 한국인들에게 별로 귀하지 않은 금속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알루미늄 제품이 가장 광범위하게 또한 가장 빠르게 보급됐다가 가장 순식간에 밀려난, 대표적인 나라가 아마도 한국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에서도 알루미늄 그릇류는 한동안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파이렉스, 코렐 등 신 제품이 등장하면서 알루미늄 식기류는 찬밥 신세가 됐죠. 미국 아줌마들 역시 새로운 요리 기구가 등장하면 어떡하든 사야 직성이 풀리는 여느 나라 여인네들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한국에서 유기가 재등장한 것처럼 미국서도 얼마전부터는 한동안 관심에서 사라졌던 알루미늄류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장신구는 물론이고 데코레이션 제품, 그릇류에 이르기까지 알루미늄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니아층들이 늘면서 앤틱 알루미늄 전문 쇼까지 열리는 실정입니다.
<알루미늄, 1930~40년대 금 은보다 비싼 귀금속 대접받기도>
사실 알루미늄은 한동안 아주 몸값이 비싼 금속이었습니다. 보크사이트 원광에서 알루미늄을 제대로 추출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루미늄이 얼마나 귀하신 신분이었던가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귀빈에게는 알루미늄 식기를,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으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1914년까지만 해도 알루미늄은 금이나 은보다 비싼 귀금속이었습니다. 당시는 금 은 장신구보다 알루미늄 액세서리로 치장한 귀부인들이 많은 여인네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습니다.
알루미늄은 1852년만해도 파운드당 무려 545달러에 달했습니다.
알루미늄이 이렇게 비싸다 보니 수많은 과학자,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1914년 이후 원광석을 전기분해로 알루미늄을 아주 싸게 추출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당연히 알루미늄 값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파운드당 2.25달러까지 추락합니다.
알루미늄의 가치 하락은 도매 내지는 일부 산업 분야에서 그렇다는 얘기지 시중에서는 한동안 여전히 값비싼 귀금속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한국의 일부 농산물 가격과 비슷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지 가격은 폭락을 거듭, 농민들은 울상을 짓는데 반해 일반 소비자들은 엄청나게 비싼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하는 과일 채소류에서 보여주는 현상과 같다고나 할까요.
저렴한 알루미늄 추출 방법을 알아낸 당시만 해도 미국은 통신과 교통망이 지금처럼 선진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알루미늄의 가치 하락은 시중으로 바로 적용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후 알루미늄 값이 소비자들에게도 조금씩 떨어지는 현상이 빚어지자 업자들은 장신구에서 그릇류로 제품 생산을 변경,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알루미늄을 장신구 대신 그릇류 소재로 활용하고 이를 가장 많이 생산한 대표적 회사는 Aluminum Manufacturing Company입니다. 1895년 출범했다 추후 Aluminum Goods Manufacturing Company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1913년 mirro란 상표를 도입한 뒤 1917년 전국적으로 광고에 나섭니다.
덩달아 다른 회사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알루미늄 그릇은 미국 주방을 점령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1924년에는 적어도 40개 회사가 제품을 생산했으며 1950년대는 거의 모든 가정의 부엌에 컵, 글라스, 커피포트, 요리용품, 압력솥, 양념통, 향신료 통, 컵 받침 등이 은처럼 반짝이는 알루미늄 제품으로 대체됐습니다.
<알루미늄 리바이벌 사랑, 미국 경제 상황과 관계 있는 듯>
하지만 장신구에 이어 그릇류를 점령했던 알루미늄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점차 잊혀지는 소재가 됐습니다. 그러다 최근 들면서 알루미늄에 대한 리바이벌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알루미늄 그릇류는 집안 및 업소에서 인테리어 및 장식용품으로, 장신구는 희귀 골동품 대접을 받으며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현재의 미국 경제 상황과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침체돼있던 경제 상황에다 코로나 펜데믹까지 겹쳐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으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만 회고조에 잠기는 경향도 있는 것같습니다. 미국인들이 이제 다시 식기 뿐아니라 데코레이션, 장신구 등 알루미늄 제품을 찾는 것도 이같은 현상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30, 40, 50년대에도 미국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했습니다. 1929년 경제 대공황, 2차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누구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였습니다. 모든 것에서 절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알루미늄 식기는 조리를 아주 빨리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린 배를 가장 빨리 채워줄 수 있었던데다 연료비도 많이 줄여주었던 고마웠던 식기였습니다.
또한 가난했던 시절, 허한 가슴을 채우기 위해 초대했던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메인 디시(상차림에서의 대표 음식)를 담아 내놓았던 카세롤(caserole) 등은 가슴 아릿한 향수를 안겨주는 듯합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옛 알루미늄 제품들이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괜찮은 알루미늄 제품을 구하기는 쉽지 않는 것같습니다. 알루미늄은 부식이 잘 되는데다 가볍고 약한 만큼 많은 제품들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노장년층을 주 대상으로, 이들에게서 옛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앤틱 알루미늄 수집은 이제 만만치 않은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알루미늄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손으로 두드려 작품을 만드는 회사로 미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웬델 오거스트 포즈(Wendell August Forge)사가 2010년 3월7일 대형 화재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알루미늄 제품들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나온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수집의 대상이 되고 앤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것입니다. 통칭 핸드 메이드(hand made)라고 불리나 제품에 따라 만드는 방식의 표기가 hand hammer, hand wrought, hand forged 등으로 달라집니다.
1923년 펜실베니아 Jefferson County에서 설립됐다 이후 Grove City로 옮아간 Wendell August Forge사는 회사 이름에서처럼 hand forged 방식을 가장 먼저 도입했습니다. 회사를 설립한 Wendell August는 알루미늄은 물론 주석, 스테일레스 스틸, 스털링 실버, 동, 구리 제품을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이 방식의 창시자입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Wendell August Forge사는 단순한 그릇 생산 회사가 아니라 미국 민속 공예품의 역사라는 칭송과 함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포지 제품 2개는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돼있습니다. 또한 1979년 제2차 전략무기 제한 협정 조인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등 조인식에 참가한 12명에게 전달된 기념 접시도 이 회사가 특별 제작한 것입니다.
이런 회사가 라커칠을 하다 발생한 화재로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된 2만5,000스퀘어피트 건물의 뒤쪽 반이 내려 앉았습니다. 자국 민속 예술품 사랑이 유별한 미국인들, 특히 ‘포즈드’ 제품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한 구석도 왕창 내려앉은 것입니다. Wendell August Forge의 재앙은 미국인들의 성향으로 보아 어쩌면 앤틱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사랑의 강도를 한층 더 높아지게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뒷 골방이나 집 한 구석에 옛 알루미늄 제품들을 버려 두었던 분들은 다시 한번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혹시 ‘보물’로 변한 ‘양은’이나 ‘백철’이 숨어있을지 압니까. 만약 그런 보물들을 발견하게 되면 미국으로 여행갈 때 갖고 가십시오. 알루미늄 제품은 가볍고 부피도 그렇게 크질 안잖습니까. 알루미늄 앤틱 쇼에 가셔서 팔게되면 여행 경비 정도는 빠지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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