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사과 깎기가 어렵다'>
저는 아직도 사과를 제대로 깎지 못합니다. 냉장고에는 거의 항상 사과가 들어있지만 먹을 때는 깎는 것 대신 휴지로 대충 닦아서 껍질채 먹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나 누나 둘이 번갈아 가며 사과를 깎아 주는 바람에 내 스스로 깎는 기회가 없어 이처럼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금이야 옥이야'하고 보살핌을 받은 것은 또 아닙니다. 어머니나 누나들 입장에선 더듬거리는 남동생의 칼질이 답답해서 대신 사과 껍질을 벗겨주었겠지요.
어느 앤틱 쇼에서 아주 요상스런 기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기계는 밑으로 손잡이가 달렸고 손잡이 끝 부분에는 삼지창이 붙어 있습니다. 그 위로 작은 턴테이블이, 그 밑으로는 1회용 면도기 같은 것이 달려있었습니다. 시꺼먼 색깔에 녹도 제법 슬어 있었고요.
저는 처음에 이 기계가 연을 날릴 때 실을 감는 도구인 얼레인 줄 알았습니다. 손잡이를 돌리면 작은 턴테블과 면도기같은 것이 돌아가면서 실을 감지 않을까 짐작했죠. 과연 물질, 기계 문명의 나라답게 얼레도 이렇게 복잡하게 더욱이 무쇠로 만드는구나하고 약간은 감탄했습니다.
제 추측을 확인할 겸 앤틱 쇼 부스 주인에게 이 기계가 도대체 무언지 물어보았습니다. 나의 추측과 기대는 바로 깨어졌습니다. 부스 주인은 손잡이를 돌려가며 이 기계가 지금으로부터 130년도 더 전에 만든 사과 깎는 기계(Apple Peeler)라고 말해 주더군요.
녹슨 무쇠뭉치에 붙어있는 도구들이 어기적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부스 주인도 잠깐은 함께 웃었지만 곧 정색을 하는 바람에 저도 억지로 웃음을 거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앤틱 가게 주인들은 자기 물건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하거든요. 주인에게 미안도 했고 기계가 참으로 괴상하면서 재미가 있어 얼른 샀습니다.
처음 구입 당시만 해도 저는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130여년 전 미국에도 나처럼 사과 깎는데 잼병인 남자가 있었고 그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같은 '애플 필러'를 만들었구나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다면 여러 수천개를 처리했을 텐데 ‘할 일도 어지간히 없는 사람의 짓’이란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또한 애플 필러는 그 시대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되다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퇴진했으리라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추측과 상상은 아주 단세포적인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몇 달 뒤 열린 다른 앤틱 쇼에서 초창기 것보다 한층 진화한 ‘사과 깎기’를 두 개나 더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훨씬 편리해지고 모양도 세련된 수동식, 혹은 전기식 사과 깎기 기계가 백화점 등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같은 가정용품이 있는지 전혀 몰랐던 저는 이후 제가 ‘입양한 녀석’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습니다. 근본을 추적해보니 펜실베니아 랭캐스터에 소재했던 Reading Hardware사가 1877년 탄생시킨 제품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제품은 사과를 못깎아 한이 맺힌 사람이 아니라 리딩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인 Eli Miller와 Chuck Kirkpatrick이 그 필요성을 인정해 고심끝에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이 기계는 그 이듬해에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리딩 하드웨어사는 이 기계를 만들어낸 공을 인정받아 1997년 6월13일 건물이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원조 사과 깎기 만든 이는 인기 얻어 주지사 되기도>
그러나 ‘사과 깎기’는 이보다 13년 전에 먼저 태어난 실질적 원조가 있습니다. 후에 뉴햄프셔 주지사까지 지낸 David Harvey Goodell이 발명해낸 Lighting Apple Parer란 이름의 사과 깎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구델은 부모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명문 브라운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아 2년만에 중퇴하고 부모의 농장으로 돌아와 인근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부모와 함께 농장에 살면서 자연히 사과는 좋아하지만 깎는 것을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기계 발명에 들어간 것입니다.
구델이 만든 기계는 처음엔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다 나중엔 대박을 쳤습니다. 2년간 뉴욕 회사의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단 2,400개만 나갔으나 구델이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일즈한 결과, 한달에 2만4,000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Lighting Apple Parer는 처음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절약해주는 기계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기계 발명으로 구델은 뉴햄프셔에서 저명한 공화당원으로 발돋움했습니다. 1876부터 1879까지는 주 하원의원, 1876~1883년에는 농산물 분과위원으로 활약하다 1889년부터 1891까지는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미국인들이 문명의 이기들을 만들고 발전시킨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거듭 실감납니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다 조금만 불편하다, 이러이러한 게 필요할 것같다 싶으면 일손을 대신할 기계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 뿐 아니라 미국 문명의 특징인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로 이어지게 합니다.
지난번 ‘유리 문명과 도자기 문화’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사과 깎기 기계의 발명 역시 미국 문명의 특징적 측면과도 부합합니다.
만약 사과 주스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이 일일이 사과를 깎는다면 그 생산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 깎기 기계를 수백 수천대 설치해놓으면 사과 껍질을 벗겨내고 하루에 생산해낼 수 있는 사과 주스의 양은 엄청날 것입니다.
사과 깎기 기계는 물론이고 많은 종류의 앤틱을 접하면 종종 ‘참으로 엉뚱한 것을 만들었다’, ‘누군가 장난을 한 게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엉뚱하거나 장난한 것’같은 물건들의 이면에 미국인들의 창조적 마인드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고 이것이 결국은 새로운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것같습니다.
대단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제 주변에서 ‘엉뚱하거나 장난한 것’같지만 ‘발상의 전환’ 혹은 ‘창조적 아이디어’ 측면에서 발견한 사례 몇가지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미국서는 오래된 소잉 머신(재봉틀, 한국서는 그냥 미싱이라 하죠)이 인기있는 앤틱입니다. 물론 온전한 재봉틀은 비싼 값에 팔립니다. 기계 자체가 고장났거나 앤틱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에서처럼 재봉틀 발만 팝니다. 이것까지는 별로 신기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재봉틀에서 떼어낸 서랍이 앤틱 가구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발상의 참신성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특히 입체적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목재 서랍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서랍 한 개가 오히려 재봉틀 값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많습니다. 가치가 없는 재봉틀 본체와 함께 내놓았다면 싸구려로 넘어갔을 서랍을 분리해 오히려 가치를 높인 것입니다.
찌그러져 전혀 못쓰게 된 타자기에서는 무엇을 앤틱으로 활용할까요?. 문자판입니다. 오래된 타자기일수록 문자판의 알파벳이 아주 독특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자판으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듭니다. 모던하면서도 제법 멋져 보입니다.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기 전에 사용됐던 나무로 깎아 만든 시커먼 빨래 집게는 머리핀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솔직히 멋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개성있는 악세사리라고 인정해주기로 했습니다.
병에서 떼어낸 양철 뚜껑도 예술품으로 변합니다. 뚜껑 안쪽에다 실리콘 비슷한 재질을 넣고 말린 뒤 여기에 다양한 그림을 그립니다. 이것을 목걸이나 브롯치로 활용하는 것 역시 기발하다는 생각이 듭디다.
수록곡이 별로 인기가 없는 LP판 경우 열을 가해 쭈그려 뜨려 일종의 접시로 만듭니다. 크게 돋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발상의 전환 측면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내 한국 학생들 가운데는 고교까지는 공부를 아주 잘해 명문대학에 진학했지만 이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는 주로 창조적 사고 능력 부족 탓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초, 중, 고교 때 암기 위주 공부에 치중하다 창조성이나 열린 사고 개발에 소흘한 결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자녀들이 다소 엉뚱한 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도덕적, 법률적 위해 요소가 있지 않는 한 긍정적 시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그것이 참신한 발상에서 비롯됐을 경우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겠지요.
엉뚱한 ‘사과 깎기’를 발명한 덕에 주지사에 오르고 번창한 회사까지 운영했던 구델같은 인물이 보다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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