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 건축된‘도시’…“거대한 경이”

대지예술가 마이클 하이저가 50년 바친 역작
길이 1.5마일, 넓이 0.5마일 장대한 스케일
내셔널 모뉴먼트 지정…“기념비적 건축물”

김인규 기자 승인 2022.08.30 09:45 의견 0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초대형 대지예술작품‘도시(City)’는 그 규모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네바다 사막의 아주 외진 곳에 지어진 길이 1.5마일, 넓이 0.5마일의 건축물, 포장도로가 끊기고 한 시간을 더 울퉁불퉁하고 먼지 나는 길을 달려야 나오는 이곳은 총 4,000만달러를 들여 지어졌다. 이름만 도시인‘시티’는 정교하게 손질된 흙더미와 도로, 언덕, 마른 호수바닥처럼 움푹 들어간 분지가 특별한 순서 없이 여러 방향으로 펼쳐져있다. 그리고 양쪽 끝에는 고대 유적같은 기념비적 건축물이 세워져있다. 하이저가 첫 삽을 뜬 지 반세기만에‘시티’가 마침내 방문객들에게 개방된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광경일 테지만 작가는 아직도‘시티’가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난 바보예요, 혼자이구요. 내가 죽고 나면 이곳을 기프트샵과 모텔로 바꿔버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걸작입니다. 혹은 그 비슷한 거죠. 이걸 실제 완성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어요.” 77세로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하이저가 지난봄에 한 말이다.

‘시티’는 수풀이 우거진 가든 밸리 산으로 둘러싸여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곳은 코네티컷의 두배 크기인 링컨 카운티로, 목장 주와 은퇴노인들, 근처 공군기지로 출퇴근하는 몰몬교도 가족들 및 하이웨이 주변의 주유소 직원 등 5,177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하이저를 제외하고는 5,177명의 사람들 중 아무도 가든 밸리에 살지 않는다. 라스베가스에서 북쪽으로 약 3시간 거리를 달리는 동안 마주치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은 ‘시티’의 서곡일 뿐이다.

‘시티’는 묘사가 쉽지 않다. 두 개의 큰 기념물 중 하나인 ‘컴플렉스 원’은 하이저가 맨 처음 건설한 부분으로 거대한 분묘 또는 제단을 떠올리게 한다. ‘45도, 90도, 180도’라고 불리는 또 다른 기념물은 점점 더 거대해지는 삼각형과 직사각형의 여러 선이 모이는 콘크리트 광장으로 구성돼있다. 마치 퍼즐조각과 같아서 결합하면 하나의 거대한 쐐기를 형성한다.

모양과 그림자를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하이저가 특히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전체 모습을 인스타그램 셀카로는 담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동에 따라, 또 빛이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나 지도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단지 공중에서만 우아한 상형문자 같은 전체 레이아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시티’를 위에서 찍은 사진이나 드론 영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발로 직접 걷고 탐험하며 눈높이에서 체험해야한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출신의 하이저는 공학자와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가주 광산부의 수장이었고 친조부는 1880년대 네바다로 이주해 최대의 텅스텐 광산을 운영했다. 부친은 UC버클리 고고학자로서 이집트, 볼리비아, 멕시코 등지의 고대 거석 발굴 전문가였다.

학업성적은 모두 F였지만 광산과 암석학, 고고학적 배경에다 예술적 기질이 뛰어났던 하이저는 1960년대의 다른 뜨내기 대지예술가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는 1969년 네바다의 메사 언덕에 ‘더블 네거티브’(Double Negative)란 대지예술작품을 창조해 일약 유명해졌다. 무려 24만톤의 바위와 흙을 파헤쳐 만든 길이 457미터, 폭 9.1미터, 깊이 15.2미터의 참호 두 개는 ‘네거티브 스페이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칭송받으며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의 다음번 작업은 더 대담한 ‘시티’였다. 아버지를 따라 이집트 탐험에 동행했던 그는 피라미드의 비전을 품고 아트딜러에게서 돈을 빌려 가든 밸리의 땅을 구입했고, 이후 트레일러에서 살면서 ‘컴플렉스 원’의 건축을 시작했다. 그때가 1972년, 하이저 나이 27세 때다.

그때 이후 사회적 활동은 점점 줄었고 때로 LA의 모카(MOCA)와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에서 전시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인생은 ‘시티’에 올인 했다. 겨울이면 도로가 끊겨 몇주 동안 트레일러에 갇히기도 하고, 가끔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결국은 모두 떠나고 작업은 그 혼자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1990년 무렵 ‘시티’는 절반도 지어지지 않았다. 하이저는 근근이 이어지는 작품 수주로 낡고 오래된 장비를 수리해가며 이미 지어진 부분을 보강했는데 대부분 짓자마자 곧 침식되기 때문이었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은 작업이었다.

80년대에 잠깐 뉴욕의 디아 센터(Dia Center for the Arts)가 펀드를 대준 적이 있으나 곧 바닥이 났고, 극심한 신경질환으로 작품 수주도 불가능해진 90년대 중반 즈음 하이저는 ‘시티’를 해체하려는 생각도 했다. 바로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디아의 새 관장 마이클 고반이었다. 하이저를 추앙해온 고반은 문화자선가 J. 패트릭 라난 주니어를 ‘시티’의 후원자로 끌어들였고, 덕분에 하이저는 새로 장비를 구입하고 사람들을 고용해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었다.

2015년 이 지역은 내셔널 모뉴먼트로 지정되었다. 바로 이곳을 통과해 핵쓰레기를 운반하려던 계획이 추진됐었으나 하이저와 고반이 네바다 상원의원 해리 라이드를 설득해 오히려 70만4,000에이커를 보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내셔널 모뉴먼트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시티’는 일반 방문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오는 9월초 소프트 오프닝을 앞두고 하이저는 그가 빚진 모든 사람들, 후원자들, 재단들에 감사를 표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클 고반은 2006년 디아를 떠나 LA카운티 뮤지엄(LACMA)의 관장이 된 후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2012년 하이저의 야외 설치작품 ‘공중에 뜬 돌’(Levitated Mass)을 라크마에 유치함으로써 그를 서포트했으며 현재는 ‘시티’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트리플 오트 재단(Triple Aught Foundation)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50년 동안 사용된 4,000만 달러라는 큰 예산은 다른 작품들의 제작비와 쉽게 비교할 수 없다. ‘시티’는 건물 콤플렉스도, 공원도, 인프라 프로젝트도, 혹은 리처드 세라의 조각품도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1969년작 세폭 제단화는 2013년에 그보다 네 배의 금액이 팔리기도 했다. 그 돈은 주로 기부금들이었는데 절반은 패트릭 라난에게서 나왔고, 상당부분이 작가 자신의 돈과 노동력으로 충당되었다. 트리플 오트는 최근 3,000만 달러의 새로운 기부금을 약정했다. 이 기금은 링컨 카운티의 수십가지 건설 관계 잡을 제공하게 되고 오프닝을 앞두고 새로운 일자리들을 창출하게 된다.

‘시티’의 방문 티켓은 곧 트리플 오트의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링컨, 화이트파인, 나이 카운티 주민들은 공짜이지만 나머지는 일인당 150달러다. 입장 수입은 연 130만 달러의 유지비로 사용된다. 사람이 많으면 그 특별한 경험이 희석될까봐 하루에 6장의 티켓만 판매할 예정인데, 그것도 연중 일정 기간 동안에만 허용된다니 엄청나게 기다려야할 것이 분명하다.

방문객들은 네바다주 알라모에 머물면서 주최측의 픽업을 통해 ‘시티’에 들어가 두 세시간 구경할 수 있다. 전기도 없고 셀폰도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므로 가장 멋진 시간인 일출이나 일몰의 광경은 볼 수가 없다. 기프트샵이 없는 것은 물론, 앉아서 쉴 벤치조차 없다.

‘시티’는 무섭고 자유로우며 중독적인 곳이다. 마운트 러시모아와 후버댐에 견줄 수 있는 거대한 경이, 미국 특유의 ‘할 수 있다’ 주의가 발현된 도시다. 열린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는 곳, 특히 돈과 소유물을 넘어서 가치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애틀랜타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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