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동양의 신사분과 얘기중이니 기다리시오”

인구 731명의 미니 마을 턱시도 파크 주변에만도 앤틱 샵이 4개나

김인규 기자 승인 2024.03.18 14:48 의견 0

23-1. “동양의 신사분과 얘기중이니 기다리시오”

한때 Upper NewYork 소재 Tuxedo Park란 아주 작은 도시에 산 적이 있습니다. Tuxedo Park는 2000년 센서스에서 인구 731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디 작은 마을입니다.

Tuxedo Park는 뉴욕 뉴저지 한인들은 물론 관광차 뉴욕을 들리는 한국인이면 대부분 한번쯤 쇼핑하고 갔을 유명 아울렛몰 ‘우드베리’에서 남쪽으로 수마일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오래된 글러브, 옛날 장난감 등도 앤틱 샵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초미니 타운임에도 턱시도 파크 반경 몇 km내에는 앤틱 샵이 4개나 있습니다. 이 가운데 두 곳은 제가 도착한 이후 'Antique'이라는 네온사인이나 간판만 보여주고 있을 뿐 문을 연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예약 손님에 한정하거나 주인의 기분에 따라서 문을 여는 것같았습니다.

나머지 두 곳은 나름대로 성실하게 문을 열고 장사를 했습니다.

그중 한군데 ‘Tuxedo Antique Center'는 할머니 한분이 정말 열심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끔 다른 볼일로 지나다 보면 “이런 시각까지 문을 열어놓고 있다니”하고 놀랄 정도로 저녁 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인 할머니는 손님을 기다리기 보다는 앤틱 속에 파묻혀 있는 것 자체를 즐기기에 밤늦도록 가게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두를 비롯한 각종 연장, 낚시 릴, 녹슨 무쇠 솥, 양철 기름통 등 창고나 차고 한 켠에 잠자고 있던 물건들도 당당히 앤틱으로 대접받으며 고가에 팔립니다*

값은 꽤나 비싸지만 작품들이 정성스럽게 관리, 진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앤틱들을 파는데는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질 않았습니다. 흥정이라도 할라치면 웃기만 할 뿐 ‘된다’, ‘안된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는 깎아가며 팔진 않겠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번은 앤틱 커피잔 세트를 진열해놓은 받침대가 너무 고풍스럽고 이쁘길래 팔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자신 역시 이를 사왔다며 저에게 그 받침대를 취급하는 곳의 정보를 흔쾌히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타운의 앤틱 샵에 대해서도 자신이 아는 한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줍디다.

또다른 가게인 'Antique Gun'은 저를 두 번 놀라게 했습니다. 한 건물에 'Antique Gun'이란 간판이 걸려 있기에 처음엔 앤틱 총기류만 취급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가게의 겉모습도 초라해 들어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집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어떤 종류의 총기류 앤틱을 취급하는지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갔습니다.

비록 입구는 자그마하고 초라했지만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엄청 비싸고 고급스런 앤틱들이 많았습니다. 총기 가게는 앤틱 스토어와는 별도로 있었습니다. 간판만 함께 있었을 뿐 가게는 두 개였던 것입니다.

*장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조각한 컷글라스는 식기류 가운데 가장 귀한 신분입니다. 미국서는 이처럼 컷글라스와 은식기가 크게 발달했습니다*

(23-2)Warwick 앤틱 샵에서 ‘800’ 찍힌 은 제품 처음 만나

Tuxedo Antique Center 주인 할머니의 추천에 따라 Warwick을 찾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지역 앤틱 샵들의 정확한 주소를 몰라 Warwick 기차역 건너편에 있는 앤틱 샵부터 찾아보라고 추천하더군요.

기차역이라면 제법 규모가 클 것으로 짐작하고 그런 건물을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습니다. 행인에게 물어 도착해보니 너무나 건물이 작아 놀랐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규모가 큰 버스 정류장 정도였습니다.

바로 맞은 편에 앤틱 샵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은 제품을 만나왔지만 모두가 ‘sterling silver’나 ‘925’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샵에서 이론적으로만 알아왔던 ‘800’이 찍힌 은 제품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미국은 초창기 은 제품에 800, 830, 835, 900으로 표기해오다 발티모어, 메릴랜드 지역 은 장인들이 화폐주조국의 지시에 따라 1814~1830년 메이커 데이트 시스팀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은 제품의 순도를 표준화하기 보다는 진짜 혹은 적정 은 함유량을 가진 제품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다 1860년대 이후 은 제품의 표준화를 채택하고 ‘925’ 혹은 ‘sterling silver’를 새겨 넣었습니다.

꼭지는 모두 같지만 스푼 모양은 각각 다른 티스푼 뒤에 ‘80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록 오래돼 색깔이 많이 변했지만 별로 어렵지 않게 광을 낼 것같아 얼른 구입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알아왔던 ‘800’이 찍힌 은 스푼을 직접 보기는 처음입니다. 이는 1860년대 이전에 만들어졌던 은제품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3-3)피자 가게 주인, 손님 기다리게 하고 열심히 길 알려줘

그곳에서 다음 목적지 샵의 주소를 받았습니다. 미국 앤틱 샵들은 자기네 가게를 들렀다 나가는 손님들에게는 인근 샵들도 들러 보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샵들을 경쟁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윈윈 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부담감 없이 다른 앤틱 샵의 위치나 특징 등을 물을 수 있어 좋습니다.

받은 주소를 GPS에 입력시키고 길을 나섰지만 낭패를 당했습니다. GPS가 안내하는 길로 가려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경찰이 도로를 폐쇄하고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다른 위치로 향하면 수정을 해서 목적지까지 안내해야 할 텐데 제 GPS는 계속 폐쇄된 도로만 제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구입해 쓰고 있는 GPS는 싼 것이라 기능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엉터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후에도 GPS의 ‘열받게 만드는 서비스’ 때문에 자주 고생을 했습니다. 새로 GPS를 구입할 일이 있으면 다시는 'T'모 GPS는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미국서도 그대로 적용되더군요.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을 할 수 없었던 때의 알루미늄 제품은 금이나 은보다 귀한 금속이었습니다. 당시 핸드 해머 방식으로 만든 안경집입니다*

할 수 없이 가까운 피자가게가 보이기에 들어가 묻기로 했습니다. 한국 남자치고 작은 키에 속하는 저보다 더 작은 백인 주인이 저를 맞았습니다.

그는 제가 내미는 주소보다는 앤틱 샵의 이름을 보고는 잘 아는 곳이라며 아주 신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GPS가 알려준 길을 일러줍디다. 그 길은 경찰이 폐쇄를 했기에 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찾기가 꽤 까다롭겠는데”라며 잠시 혼자 고민을 합디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주방 안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주 키가 큰 백인 남자가 들어와 제 뒤에 섭디다. 저는 처음에는 피자 가게 주인이 동네 지도를 찾기 위해 주방 안을 뒤지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줄 백지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피자 가게 주인은 한참 만에 찾아낸 백지를 들고 저에게 다가와 약도를 그려가며 설명을 했습니다.

제 뒤에 와서 섰던 키 큰 남자는 가게 주인의 설명이 지나칠 정도로 길어진다고 여겼던지 주문은 받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제 입장에서는 영업집에 와서 길을 묻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있던 중이라 더더욱 미안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피자 가게 주인의 대답과 태도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키 큰 고객을 부릅뜬 눈으로 쳐다보며 “동양의 신사분에게 길을 가르쳐 드리고 있으니 조금 기다리시오”라는 게 아닙니까. 그는 설명을 다시 하더니 처음에 그린 게 너무 보기 흉하고 복잡하다며 다시 백지를 구해와 나름대로 깔끔하게 약도를 그려주더군요.

이때가 마침 점심시간 대여서 뒤이어 다른 고객들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돈을 벌게 해주는 고객들마저 기다리게 하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이방인에게 성의껏 길을 가르쳐 주는 피자 가게 주인의 태도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설명이 끝날 때까지 제법 긴 시간을 말없이 기다려준 손님들도 참으로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23-4)앤틱 샵 주인, “내 아들은 한국서 입양해왔고 이름은 김정이요. 김정일이 아니라”

피자 주인이 그려준 약도에 따라 두 번째 앤틱 샵 ‘The Warwick House of Antiques’을 찾았습니다.

이 앤틱 샵은 2층 건물로 부부가 거주하고 있으면서 방을 모두 전시, 판매용도로 활용하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또한 동양 앤틱들을 따로 전시하는 공간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미국 영화나 화보 등에서 문자판 옆에 춤추는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시계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시계가 진열돼 있으면서 저의 눈길을 잡아 당겼습니다.

앤틱 샵 주인에게 이 시계를 얼마에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대답 대신 저희를 보고 “코리안이냐”고 물어봅디다. 보통 미국인들은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양인들의 출생국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정확하게 코리안이냐고 묻기에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인 줄 아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는 한국에서 입양해왔다. 그의 이름은 김정이다. 김정일이 아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즉 한국 어린이를 입양해 키워왔기에 동양인 가운데 한국인을 구별할 줄 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저희가 관심을 보인 발레리나 시계를 붙어 있는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그가 이보다는 덜 깎았거나 태그 가격을 그대로 불렀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시계를 살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시계 모양이나 상태 등이 좋은데다 한국 어린이(그 분의 연세로 봐서 아들은 이제 거의 성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들의 나이는 묻지 않았습니다)를 입양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두말 않고 그 시계를 구입한 뒤 몇차례나 뒤돌아 손을 흔들며 가게를 떠났습니다. 이들 부부와 그의 한국인 아들, 또다른 자녀가 있다면 그들 모두 건강과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었습니다. 또한 이 앤틱 샵이 더욱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번성하기를......

참고로 이 앤틱 샵의 주소와 연락처를 밝힙니다. 혹 이 근처를 지나는 분들 가운데 앤틱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들러 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he Warwick House of Antiques’(11 Oakland Ave Warwick, NY 10990. 전화번호 845-986-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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