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작 〈썬더볼〉의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는 맥기니스의 작품을 잘 보여준다. 이미지 제공: 헤리티지 옥션스
1976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지미 카터가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 훨씬 전부터, 로버트 맥기니스는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그림 속에 욕망을 담아왔다.
카터가 이런 놀라운 고백으로 정치인이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뒤,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를 꺾고 미국 제39대 대통령이 된 것처럼, 맥기니스도 곡선미 넘치는 반쯤 옷을 걸친 팜므 파탈과 관능적인 영화 포스터 덕분에 일러스트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인기 있는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1926년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남부 농촌에서 자란 그는 1940~50년대 미국 일러스트의 황금기에 성장했다. 2024년 3월,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그는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렸다. 그의 초기작을 돋보이게 한 것은 여성 묘사였다.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 덕에, 그가 그린 유혹적인 여성상은 업계에서 단일 고유명사로 ‘맥기니스 우먼(The McGinnis Woman)’이라 불렸다.
이 로버트 맥기니스 오리지널 일러스트(12.5 x 7.75인치)는 1959년 델 출판의 할 마서 소설 『You Can't Live Forever』 표지에 사용되었으며, 경매에서 12,500달러에 낙찰됐다. 이미지 제공: 헤리티지 옥션스.
펄프 소설의 전성기였던 시절, 그는 1,200점 이상의 페이퍼백 표지를 제작했으며, 주인공은 언제나 미스터리하고 늘씬하며 도발적인 여성들이었다. 최소한의 옷만 걸쳤지만, 작품 속 여성들은 시대적으로 드물게도 힘 있고 주도적인 인물로 묘사됐다.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맥기니스 우먼’은 유혹자이자 사냥꾼이었다.
그는 『Built for Trouble』, 『Kill Now, Pay Later』, 『So Rich, So Lovely, and So Dead』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펄프 소설 표지로 명성을 쌓았지만, 오늘날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포스터다.
그 대표작이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포스터로, 고양이를 어깨에 올린 채 긴 담배 홀더를 문 오드리 헵번이 블랙 새틴 드레스와 오페라 글러브를 착용하고, 목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1968년 SF 코미디 영화 〈바바렐라〉에서는 빨간·흰색 비키니 차림의 제인 폰다가 신비한 행성 위에서 미래형 총을 들고 서 있는 장면을 그렸다. 2년 후 〈Cotton Comes to Harlem〉에서는 주황, 보라, 초록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거리 장면 속에 총을 든 남자들과 비키니 차림의 무희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맥기니스의 영화사적 명성을 굳힌 것은 1965년작 제임스 본드 영화 〈썬더볼〉을 시작으로 한 본드 시리즈 포스터 작업이었다. 이후 그는 『007 두 번 산다』(1967), 『여왕 폐하 대작전』(1969),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 『죽느냐 사느냐』(1973),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 그리고 패러디 영화 『카지노 로얄』(1967) 등 다수의 본드 영화 포스터를 맡았다.
2002년 DVD판 〈카지노 로얄〉 포스터용 대형 원화(23.5 x 30.5인치)는 2017년 헤리티지 옥션스에서 47,500달러에 낙찰됐다.
제작자 바버라 브로콜리는 맥기니스가 “몇 번의 붓질만으로 본드의 재치, 스릴, 모험을 포착했다”고 평했다.
원본 영화 포스터 원화는 대부분 영화사에서 사용 후 폐기됐기 때문에 매우 희귀하다. 그중 〈썬더볼〉 원화 두 점이 최근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며 그의 변치 않는 인기를 증명했다. 2024년, 숀 코너리가 잠수복을 입고 한 손에는 작살총, 다른 한 손에는 칵테일을 든 장면과 배경에 네 명의 비키니 차림 본드걸이 있는 8.5 x 16인치 유화·구아슈 작품이 33만5,500달러에 팔렸다. 2022년에는 비슷한 크기의 또 다른 〈썬더볼〉 원화가 27만5,000달러에 낙찰됐다.
그의 펄프 표지 원화도 제목에 따라 5,000달러에서 최고 2만4,000달러까지 거래된다. 사망 이후 그의 작품이 더 많이 경매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맥기니스의 여성상은 오늘날의 감각과는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프랭크 프라제타 같은 동시대 거장의 SF 일러스트처럼, 자세히 보면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니다. 그는 2017년 『배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지성과 완벽한 포즈나 몸매를 결합하고 싶었다. 그것이 존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여성들은 관능적이고 옷을 거의 걸치지 않았지만, 피해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Robert McGinnis: Painting the Last Rose of Summer〉의 감독 폴 질버트는 “그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남성보다 더 강하고 세련되고 지적으로 그렸다. 다른 표지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이었다”고 평했다.
〈The Art of Robert E. McGinnis〉 작품집은 그의 예술 세계의 폭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배니티 페어』의 칼럼니스트 컬런 머피는 “맥기니스 우먼은 시대의 족쇄를 벗어던졌다. 1920~80년대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여성상은 시대에 묶여 있지만, 맥기니스 우먼은 오늘날 뉴욕·런던·파리의 거리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배우 라켈 웰치는 자신의 영화 〈The Biggest Bundle of Them All〉 포스터 속 맥기니스의 그림을 보고 “그 그림 속 내 모습의 절반만큼만 예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 견습생 제안을 받을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이후 상선(머천트 마린) 복무를 마치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3년간 순수미술을 공부하며 미식축구팀의 1944년 무패 시즌에 왼쪽 태클로 활약했다.
대학 연인 펀 미첼과 결혼해 74년을 함께했고(아내는 2023년 작고), 뉴욕으로 이주해 일러스트레이터로 도전했다. 맨해튼에서 델 출판사의 아트 디렉터를 소개받아 4권의 표지를 권당 200달러에 맡게 된 것이 1950년대 후반이었다.
그는 1993년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서부극 장면의 회화, 종교 잡지 『가이드포스트』 삽화, 픽사 영화 〈인크레더블〉 포스터도 제작했다.
말년에 그는 “계획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생계를 위해 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플레이보이』에서 ‘바르가스 걸’의 후계자로 제안받았으나, “토끼꼬리나 여성 취급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다”며 거절했다.
曲선을 그려 생계를 유지한 화가였지만, 여성에 대한 자신의 선을 지키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