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앤틱 쇼에서는 항상 로또만 잡는 게 아닙니다(1)에 이어>
칼크 상표를 단 이 커피잔 세트는 Arnart Importing Inc와 Homco라는 일본 회사가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제품이었습니다. 특히 이 회사는 칼크라고 새겨진 상표 위에 아르나트 혹은 홈코라는 종이 라벨을 붙여 놓았고 그 라벨은 아주 쉽게 떼어질 수 있게 해놓았다는 겁니다. 작심하고 짝퉁을 만들었다는 얘기지요. 화가 났습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대체로 미움의 대상 쪽입니다. 더욱이 도자기에 관한한 한참 후발 주자인 유럽 국가 동독의 카피본을 만들어 팔았다는 점에서 일본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겹쳐 들었습니다.
아마도 2차 대전 후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을 시절, 돈에 눈이 어두워 이같은 짓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말의 동정심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대체 어쩌다 일본이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팽개친 짓을 했는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유럽이 동양 도자기를 보물처럼 모셔갈 초창기 때 그 도자기의 명칭은 생산지나 수출항구 이름을 딴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 진출한 초창기 도자기는 대부분 중국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즉 조선 이름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시 조선은 해외와 교류를 하지 않은 '은둔국'인 탓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이름은 딱 하나지만 등장합니다. 바로 이마리(Imari)입니다.
미국 그릇류, 도자기 앤틱 쇼에서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 한국 도자기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일본 이마리 도자기는 알고 있다는 미국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로서는 아주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고려청자, 이조백자의 독창성, 예술성이 일본 도자기보다는 한참 윗길로 우리는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18세기 상당수 유럽인들로부터 중국 도자기보다 오히려 더 높게 평가받았던 이마리는 조선 도공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슬프면서도 자랑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도자기 주산지는 아리타 지역이었습니다. 아리타는 규슈 북부 사가현에 위치해 있으며, 규슈 3대 도자기 마을인 가라쓰, 아리타, 이마리 가운데 하납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일본에서는 ‘아리타-야키’로 불렸으나 유럽인들은 이마리 도자기라고 칭했습니다. 도자기 수출항 이름을 따 그냥 이마리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마리 도자기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납치돼갔던 조선인 도공 이삼평과 일가족 180명이 기틀을 세우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동양 도자기를 만든 화란 델프트 가마나 영국의 크라운 더비 자기(Crown Derby porcelain)도 이마리를 흉내냈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비록 조선인 도공이 주인공이었지만 이런 찬란한 도자기 역사를 가진 일본이 동독 짝퉁을 만들었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질 않고 같은 도자기 문화권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빚어진 것은 지적 재산권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미 17세기 초엽에 영국을 중심으로 지적 재산권이 확립됐습니다. 반면 동양권인 일본 등에서는 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재산권 위반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풍토가 후발 주자 즉 동독 자기도 마구잡이로, 베끼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찬란한 문명의 여명기인 20세기 중반에 이같은 짓이 자행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영국은 1617년에 이미 특허권 인정>
영국은 1617년에 이미 새 발명품에 처음으로 특허권을 인정했으며 1852년까지 1만4,359개의 특허를 내주었습니다. 1842년에는 도자기를 비롯해 글라스웨어, 나무, 금속, 종이, 직물 등의 새로운 형태, 색깔, 패턴 등에 대해 등록제를 실시했습니다. 1852년부터는 매년 특허 숫자를 발표, 개인 및 단체에게 지적 재산권의 존재를 확고히 심어주었습니다.
영국이 자신들은 중국 도자기를 모방했으면서도 자국내에서는 지적 재산권을 확립해온 것은 자칫 이율배반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남의 것에 대해서는 지적 재산권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특허권을 도입한 것은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 보호 차원에서는 평가받을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물에 대한 판단 기준은 그 사물과 연관된 개인 및 단체의 이해 여부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알리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허권의 인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썩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에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물건이나 기술이 특허에 부쳐져 있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이용하려면 보다 많은 비용도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만 본다면 특허권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처럼 판단되지요. 그러나 이같은 특허권은 특허 소유자에게 재정적 이득을 안겨주게 돼 새로운 기술이나 물질 개발을 촉진시킬 것이 자명합니다. 제3자도 이를 참고로 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서도록 해 사회 전반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선조들은 특허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신기술, 새 발명품에 대해 공개적으로 독점적 소유권을 인정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라진 고려청자의 제조비법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이 다 알고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특허권이 확립된 것을 계기로 도자기류 식기에는 특허와는 또달리 다양한 성질과 상태를 알리는 표현들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원산지 표시제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1891년 미국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도자기, 금속, 가죽에 원산지를 반드시 표기토록 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이 제도는 영국이 이보다 4년 앞서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확고하게 다져진 것은 1915년 이후입니다. 이로 미루어 미국에 들어와 있는 도자기 가운데 원산지 즉 나라 이름이 없이 오래된 것은 1891년 혹은 1915년 이전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원산지 표시가 없지만 비교적 새 제품은 당시의 것이 아니라 종이 라벨이 보편화한 뒤 수입된,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어디에 등록돼있다는 의미의 reg, rd, registered 등의 표기는 역시 영국이 1884년 도입했습니다. limited란 단어는 1861년부터 사용했고 incorporated 는 이보다 한참 뒤인 1940년부터 등장합니다.
특허권이 이미 확립됐지만 특허 사실을 알리는 patented 표기는 1900년부터 제품에 표기됐습니다. 특허 출원중이라는 patent applied for는 1902년, patent pending은 1940년부터 쓰였습니다.
made exclusively for는 1927년, hand painted는 1937년, hand made는 1962년이 각각 사용 기점입니다.
다양한 조리용기의 등장으로 도기 식기류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붙습니다. refrigerator ware는 1938년부터 사용되다가 1952년 이후는 잘 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oven proof는 1934년, oven tested는 이보다 1년뒤, freezer-oven-table은 1960년, oven-to-table은 1978년에 등장합니다.
그릇의 색깔이 변치 않는다고 자랑하는 permanent color는 1960년, microwave safe는 1970년에 나타났습니다.
건강에 더욱 많은 관심이 생겨난 현상의 하나로 납 성분이 없다는 lead free는 1990년대부터 등장했습니다.
식기류 도자기 등에 들어있는 이같은 글귀에서 그것의 나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기에 참고로 적었습니다.
앤틱 쇼에 가시거든 로또 당첨도 기대해보지만 짝퉁에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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